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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어도 통역이 될까요?

강인욱_경희대 사학과 교수

타임머신이나 타임슬립을 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우리 주변에 매우 흔하다. 현대식 무장을 한 한국 군인이 임진왜란에 투입되어서 왜군을 통쾌하게 무찌르기도 하고, 또 고대의 공주나 왕자와 아름다운 사랑을 나누기도 한다. 현실에서 일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는 클리셰지만, 의외로 사람들은 쉽게 몰입하며 이런 창작물을 좋아한다. 그만큼 현대에서는 평범하게 살면서 흔하게 여기는 기술을 가지고 고대에서 신나게 활약할 수 있다는 설정은 매력적이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하나 있다. 어쩌면 고고학을 전공하는 사람의 투정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과연 현대인이 갑자기 과거로 뚝 떨어지면 제대로 말이 통할까 하는 생각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관련 전공 학자들은 영화나 드라마에서처럼 서로 전혀 무리 없이 말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유튜브상에 공개된 100여 년 전 일제강점기에 녹음된 한글의 육성을 들으면 금방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얼마 전 원로 국문학자는 15세기 훈민정음을 원발음으로 복원해서 공개한 적도 있는데, 자막이 없다면 아마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견해가 태반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고대로 간다면 큰 불편 없이 말이 통하는 시대는 언제까지일까? 아쉽게도 여기에는 명확한 답이 없다. 사실 고대 언어의 발음을 복원하여 고고학 자료와 연구하는 경우는 주로 인도-유럽어를 중심으로 꽤 일찍부터 발달했다. 심지어 6천 년 전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유럽 언어를 복원하는 연구는 적지 않다. 반면에 한국은 워낙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다. 훈민정음 창제 이전의 고려, 나아가서 삼국시대의 언어는 한문으로 표기된 몇몇 지명이나 인명이 전부이니 학자들로서도 어쩔 수 없다. 상황이 이러니 학자들 사이에도 고려시대나 삼국시대로 돌아가면 고대 사람들과 말이 통할까 하는 질문에 대해서는 일반인뿐 아니라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다. 남아있는 자료가 적다 보니 고대 발음을 복원하는 것은 더 어렵다. 설사 몇몇 발음을 복원해도 당시와 똑같다고 하는 보장이 없다. 과거의 발음을 복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방법이다. 한글의 경우 한자에 음차된 것을 이용하고 여러 언어도 고대어가 잘 남아있는 지역의 사투리 등 글자 그대로 얼마 안 되는 자료를 쥐어짜 내서 연구하는 상황이다. 이런 역사 언어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갈수록 고대어와의 괴리도 줄어들고 있다. 그럼에도 녹음된 테이프가 아니기 때문에 어떻게 발음했는지는 여전히 상상의 영역이 많을 수밖에 없다.

설사 완벽하게 고대어를 복원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언어에는 억양, 성조, 발성 버릇 등 개인의 버릇들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런 것을 개인의 영역을 제외하고 복원을 한다면 실제와 달리 아주 어색하게 들릴 것이다. 현대 한국어를 읽어주는 컴퓨터 음성을 떠올리면 될 것이다. 최근 요즘은 AI의 발달로 너무나 사람과 비슷한 음성이 넘치고 있지만, 초창기 기계 음성은 문법이나 발성이 완벽하지만, 무척 어색하게 들렸다. 하물며 우리가 지금 고대어의 발음을 복원했다고해도, 그것이 실제 당시에 사용되는 언어와 똑같았다고 쉽게 단정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고대어를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한국만 해도 삼국시대에 각국이 서로 말이 통할지 상상해보는 것도 즐겁다. 2011년에 인기를 끌었던 영화 ‘평양성’은 그 상상이 실제 영화로 이루어진 것이다. 김유신, 연개소문, 계백 등 쟁쟁한 삼국시대의 영웅들이 걸쭉한 각 나라 사투리로 언쟁을 벌이며 싸우는 식이다. 물론, 지금의 사투리와 당시는 매우 다를 것이다. 실제로 사서에서 전하는 고구려어는 신라-가야어와 사뭇 다르다. 하지만 통역이 필요했을 것 같지는 않다. 사람들은 단어별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문맥과 상황으로 주로 언어를 이해하기 때문이다.

내 개인적인 경험을 말하자면 장인 장모님은 부산 토박이이신데 각각 부산의 서쪽과 동쪽 출신이라서 언어 억양이 아주 달랐다. 게다가 ‘천지빼까리(엄청나게 많은)’이나 ‘그지 끌베이(거렁뱅이)’ 같은 처음 듣는 단어들도 자연스럽게 구사하신다. 나도 처음에는 좀 어색했지만 금방 적응이 되었고 이해하는 데에 불편하지 않았다. 만약 후대 역사 언어학자들이 그 단어들을 하나씩 끊어서 책에 써놓고 연구하고 발음을 복원한다면 마치 외계어처럼 들릴 것이다. 언어는 사람 사이에 서로 눈을 보고 소통하면서 이어가면서 발달했는데 그것을 텍스트로 옮기면서 착시현상도 무시할 수 없다는 뜻이다.

어쨌든 우리가 유튜브나 옛날 축음기의 음성을 들어보면 100년 전으로만 가도 너무나 어색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고대인들과 우리는 소통을 못 하는 다른 언어를 사용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현대 우리는 국가 차원에서 표준화된 말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지금 ‘표준어’의 시대에 살고 있다. 나라별로 교육과 자본을 투자해서 말을 통일하고 균일화시키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지금은 ‘영어’, ‘프랑스어’라는 식으로 하나의 언어로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이러한 표준화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표준화가 되지 않았다면 고대로 갈 것도 없이 우리 사이에도 서로 말이 안 통했을 것이다. 최근까지도 함경도나 제주도 방언은 외국어라고 할 정도로 불통이었다. 표준화가 진행된 현대의 잣대로 과거 사람들을 보면 현대어뿐 아니라 각 지역의 말도 서로 다른 것처럼 들릴 것이다.

표준어가 발달하지 않았던 과거 우리 조상들은 서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것이 일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역사를 보면 사람들 사이에 언어의 불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같은 외적의 침입에 지역에 상관없이 하나로 맞섰고, 삼국시대에는 고구려, 백제, 신라가 서로 소통했지만, 통역이 중간에 끼었다는 이야기는 거의 없었다. 고대인을 이야기하면서 난 실크로드 이야기를 종종 비유하곤 한다. 한국은 비교할 수 없게 수십 개의 언어와 민족이 살던 고대 중앙아시아의 실크로드는 그러한 언어의 장벽에도 불구하고 말이 안 통해서 물건을 못 팔았다는 경우는 거의 없다.

표준어의 교육이 없어도 사람들은 소통했고 또 외국어를 배워왔다. 고대어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국가적인 표준어에 길든 현대인의 편견으로 과거를 이해하는 것은 아닐까. 서로 말이 안 통하는 사람도 조금 지나면 다들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었다. 자~ 그러니 우리 이제 타임머신을 꿈꿔도 되지 않을까. 우리의 조상들을 만나도 처음에는 서로 잘 말이 안 통해서 어색해도 허탈하게 몇 번 웃으면 금방 통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