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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 역사와 문화가 빚어낸 다른 언어

조민성_사이버한국외대 베트남•인도네시아학부 교수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는 최근 아세안(ASEAN) 공용어로 각각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를 채택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말레이시아는 말레이어가 아세안의 역사적, 문화적 통합을 반영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인도네시아는 인도네시아어가 가장 많은 화자를 보유한 언어로서 공용어로 더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논쟁은 두 나라의 문화적, 정치적 이해관계가 얽힌 중요한 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같은 뿌리지만, 두 언어는 각각의 문화, 역사, 정치 맥락에 따라 다른 길을 걸어왔다.

이 두 언어, 즉 말레이시아에서 사용되는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에서 사용되는 인도네시아어는 기본 문법, 음운론, 형태론 그리고 상당수의 기본 어휘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두 언어는 현지 상황에 따라 발전하면서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7세기부터 수마트라와 말레이반도 지역에서 사용된 고대 말레이어에서 기원했다. 스리위자야(Sriwijaya) 해상왕국 시기에 고대 말레이어는 이슬람 전파, 무역, 외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며, 군도의 링구아 프랑카(Lingua Franca) 역할을 수행했다.

말레이어는 그 단순함과 배우기 쉬운 특성 덕분에 동남아시아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는 언어로 발전했다. 이 언어는 산스크리트어, 아랍어, 포르투갈어, 네덜란드어 등 다양한 외국어의 영향을 받았다. 17세기 네덜란드가 인도네시아를 식민지로 지배하면서, 네덜란드는 군도 지역에서 말레이어를 소통 언어로 사용했다. 이 시기의 말레이어는 현지 언어 및 네덜란드어와의 상호작용을 통해 변화했다. 당시 말레이어는 학교 교육과 식민지 정부에서 사용되었으나, 인도네시아 현지 지역어인 자바어, 순다어, 미낭카바우어는 여전히 인도네시아 사람들 사이에서 많이 사용되고 있었다. 1928년 청년 서약(Sumpah Pemuda)을 통해 인도네시아 국민들은 인도네시아어를 통일의 언어로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인도네시아어는 말레이어에서 파생되었지만, 더 넓은 인도네시아 사회와 정치적 현실에 맞게 수정되었다. 1945년 인도네시아의 독립 선언 이후, 인도네시아어는 공식적으로 국가 언어로 지정되었으며, 이는 인도네시아 헌법 제36조에 명시되어 있다. 반면, 말레이어는 말레이시아(싱가포르와 브루나이를 포함한)에서 국가의 공식 언어로 발전했다. 말레이시아에서는 말레이어를 ‘말레이시아어(Bahasa Malaysia)’라고도 부르지만, 더 정확하게는 ‘말레이어(Bahasa Melayu)’이다. 말레이어는 국가 정체성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브루나이와 싱가포르에서도 말레이어는 국어의 지위를 여전히 가지고 있지만, 현재 싱가포르에서는 영어와 만다린이 더 널리 사용되고 있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문법, 음운 체계, 그리고 기본 어휘에서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두 언어 모두 간단한 문법 구조를 사용하며, 동사 변화가 없고 대명사에 성별 구분이 없다. 음운 체계 역시 모음과 자음의 발음 규칙이 같다. 그러나 두 언어는 각각의 식민 지배 시기에 따른 외국어의 영향을 받으면서 차이점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인도네시아어는 네덜란드 식민지 지배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말레이시아의 말레이어는 아랍어와 영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로 인해 두 언어의 어휘에서 차이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말레이어에서 ‘약국’은 영어 ‘Pharmacy’의 영향을 받아 ‘Farmasi’라고 하며, 인도네시아어에서는 네덜란드어 ‘Apotheek’의 영향을 받아 ‘Apotek’이라고 한다. 1972년 인도네시아에서 완성된 표기법(EYD)이 도입되기 전까지 두 언어의 표기법에는 차이가 있었다. 예를 들어, 인도네시아어에서 ‘oe’로 표기되었던 것이 ‘u’로 변경되어 ‘uang’으로 표기된 반면, 말레이어에서는 ‘wang’으로 표기되었다.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에서 말레이어는 교육, 공식 업무, 대중 매체에서 공식적으로 사용된다. 그러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에서는 영국 식민 지배 영향으로 영어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반면, 인도네시아에서는 인도네시아어가 교육, 정부, 대중 매체 등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으로 사용된다. 두 언어는 발음과 억양에서도 차이가 있다. 인도네시아어는 모음을 더 명확하게 발음하며 전체적으로 정확한 발음을 유지하는 반면, 말레이시아에서는 마지막 모음이 짧게 발음되는 경향이 있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각 국가의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영향으로 인해 서로 다른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인도네시아어는 기술, 미디어, 교육을 통해 외부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빠르게 발전하고 있으며, 말레이어는 여전히 더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요소를 유지하고 있다.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는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지만, 지리적, 정치적, 문화적 차이로 인해 두 언어는 각자의 고유한 흐름에 따라 발전해 왔다. 인도네시아어는 더 많은 외부 영향을 흡수하며 역동적으로 발전했지만, 말레이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의 말레이어는 더 보수적으로 발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언어는 여전히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중요한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