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인들의 단테(Dante Alighieri) 사랑
이상엽_한국외대 이탈리아어통번역학과 교수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를 포괄한 라티움(Latium, 현재의 라치오 Lazio) 지역 사람들이 사용하던 언어인 라틴어는 로마의 성장으로 제국의 공식적인 언어가 되어 이탈리아 반도를 넘어 전 유럽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476년 서로마제국의 붕괴 이후 침체 속의 반도에서는 종교적 팽창 이외에는 아무런 발전이 없었고, 보통 사람들의 삶은 매우 피폐하였다. 이후 700년쯤 지나 이탈리아의 여러 지역에서 경제적 여건이 눈에 띄게 좋아지기 시작하였고 1200년대에는 여러 도시 국가들이 상당한 부를 축적하였는데 이들 중 하나가 피렌체였다. 훗날 르네상스의 발상지가 될 피렌체의 유명한 건축물 대부분이 13세기에 지어지기 시작하거나 완성되었으니 당시의 부를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시기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단테(1265-1321)는 라틴어를 근간으로 자신의 고향 피렌체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던 구어(口語)를 갈고 닦아 『신곡(Divina Commedia)』을 완성(1321)하였다. 위대한 이 작품을 통해 피렌체어는 이탈리아어가 되었고, 단테는 이탈리아어의 아버지라 칭송받는다. 이탈리아인들은 자신들이 매일 매일 사용하는 언어의 아버지가 단테라는 것에 그 누구도 토를 달지 않는다.
도메니코 디 미켈리노(Domenico di Michelino, 1417-1491)의 1465년 작품. “신곡은 피렌체를 밝히다”. (피렌체의 대성당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에 소장)
12~14세기는 여전히 라틴어가 지속적으로 명예를 누리며 귀족, 성직자, 지식인 그리고 문인들의 언어로 사랑받던 시대였다. 이러한 사회계층에 속하는 사람들은 생계를 위해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로 많은 시간을 들여 라틴어를 배우고 라틴 고전 작품들을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일반인들은 라틴어를 공부할 시간도 여유도 없었기에 거의 모두 문맹이었다. — 이 부분에서 나는 꼭 우리의 세종대왕을 떠올리게 되며 외국인들이 한국어의 우수성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된다. — 단테는 바로 이러한 고향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구어를 가지고 작품을 써서 민중들도 읽을 수 있게 하였다.
단테는 라틴어가 아닌 이탈리아어에 놀라운 발전 속도를 부여하여 언어적으로 풍요롭게 했으며, 인간 영혼이 생각하고 경험하며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주제와 세세한 부분들을 표현할 수 있게 하였다. 이로써 단테는 자기 작품 속에서 속어인 이탈리아어가 라틴어에 비하여 결코 부족함이 없는 언어가 되게 하였다. 단테는 이러한 시도와 탁월한 역량을 그의 작품 『신곡』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덕분에 이탈리아의 모든 문인은 아무런 언어적 한계를 느끼지 않고 이탈리아어로 활발한 문학 활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피렌체의 산타 크로체 성당 앞에 모인 대중에게 신곡을 암송하며 또 해석하는 로베르토 베니니(Roberto Begnini)
“이탈리아인은 성인, 시인, 항해사의 민족”이라는 말이 있다.
이탈리아는 가톨릭 국가로 수많은 성인과 교황을 배출하였고 콜럼버스와 같은 위대한 항해사를 보유한 나라다. 이탈리아인들은 음식과 패션에서도 다양하고 독창적인 표현을 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들은 언어표현에도 매우 예민하고 섬세하여 상황과 자신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하려는 노력이 대단하다. 그래서 이탈리아인은 모두 최고의 시인인 단테처럼 표현하고 싶어 한다는 말이 있다. 어려서부터 읽고 또 읽은 작품 속 단테의 문장을 정말 많이 기억하고 적당한 때에 그 표현을 활용한다.
학식 있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누구나 순간에 가장 적합한 표현을 위해 새로운 합성어나 어순, 문장을 만들어 자신이 가장 만족스러운 그러나 본인도 처음 쓰는 표현을 구사하는 경우가 참 많다. 이러한 덕분에 이탈리아어의 역사적 변천은 많은 서양어 중에서 적은 언어 중 하나이다. 그래서 힘은 들지만 나 같은 외국인도 1300년대에 쓰인 단테의 작품을 사전과 씨름하면서 읽을 수도 있고 원전 비평 연구판(교정판, edizione critica)으로는 훨씬 수월하게 즐길 수 있다.
이탈리아인의 단테에 대한 사랑은 놀랍다. 사실 『신곡』은 14,233행으로 된 서사시로 매우 길다고 할 수 있는데, 유명한 영화배우가 이 작품을 국영방송에서 단 한 군데의 막힘도 없이 빠른 속도로 암송하는 것을 본 적이 있고, 피렌체 인근의 한 식당 주인도 이 시집을 모두 암송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거리에서도 가끔 단테의 복장을 하고 행인들을 상대로 시를 낭송하고 또 설명해 주는 사람도 있다.
사실 『신곡』은 누구에게나 읽고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700년간 연구되고 있으나 아직도 불확실한 부분이 적지 않아 논쟁 중이기도 하며 가끔 뜻밖의 새로운 발견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탈리아 사람들은 단테를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접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만화로도 만들고 유소년용의 비교적 간단한 판본도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3년에 걸쳐 지옥, 연옥, 천국 편을 각각 한 학년 동안 가르친다. 뿐만이 아니다. 이탈리아의 수많은 오래된 도시에서는 단테가 작품 속에서 언급한 그 도시나 인물, 유적 등등에 대하여 노래한 시구를 관련된 지점의 대리석 벽에 새겨놓고 기억한다. ‘단테’라는 이름을 가진 거리는 이탈리아의 모든 도시에 있으며, 단테가 잠시라도 머문 도시에는 단테 광장이 있고 그 중심에 그의 동상이 자리한다.
어린이를 위해 만화로 만든 『신곡』
최근 이탈리아 외무부가 밝힌 자료에 의하면 놀랍게도 이탈리아어는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에 이어 세계에서 네 번째로 많은 사람이 공부하는 언어라고 한다. 놀랍게도 중국어, 러시아어, 아랍어보다 더 많은 세계인이 공부하는 언어인 것이다. 사실 이탈리아는 앞선 세 나라에 비해 식민지를 가지고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러한 인기는 어디서 오는 것일까? 그것은 이탈리아인들이 자신들의 다양한 분야의 문화를 자신의 언어로 표현하고 기록해 놓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이탈리아인들은 오랜 세월 속에서 이탈리아 문화의 다양한 부분들을 풍요로우면서도 잘 다듬어 명품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아이들도 어려서부터 도레미파를 부르며 자라고 커서는 오페라를 즐긴다. 피자나 스파게티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이렇듯 이탈리아는 음식, 다양한 먹거리, 예술, 건축, 문학, 영화, 과학자들, 명품 패션 브랜드, 자동차 산업 분야에서 최상위를 달린다. 세계인들이 이탈리아어를 공부하려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어쩌면 오늘도 피렌체의 어떤 거리에서는 단테의 시를 암송하며 자랑스러워하는 이탈리아인들을 이해하려는 마음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