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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 이방인일지도 모른다

김은희 작가

요즈음 티브이나 인터넷을 보아하니, 한국에 호감을 느끼는 외국인들이 정말 많은 모양이더라. 호감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열광 수준이더라고. 유사 이래, 한국이 좋아 죽겠다는 것을 이토록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이방인들을 원 없이 구경하던 시절이 있었던가 싶어.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지. 한국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구나. 좋아해 주니 아주 고맙네. 그럼, 그럼, 한국도 이제 선진국인걸. 그렇게 이 놀라운 변화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였어.

사실은, 속으로, 너희가 뭘 알겠니. 잠깐 보면 다 좋아 보인다니까. 왕년에 해외여행 한 번 안 다녀본 사람이 어디 있다고. 사람 사는 데가 다 거기서 거기지. 프랑스에 가 봤는데 별거 없던데. 참, 공원이고 도로고 개똥 하나는 끝내주더라. 없는 데가 없더라고. 유럽도 별수 없다는 뜻 아니겠어. 물론 프랑스가 유럽 전부는 아니지만 말이야. 소문 들어보니, 미국의 어느 시골 소도시는 의료 수준이 아프리카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고 하더라. 믿을 수 없겠지만, 나는 그것이 가감 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해.

한국에 열광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워하는 사람들도 그 수만큼 있겠지. 그런 사람들이 일본에도 있고 중국에도 있다고 들었어. 그럼, 미워할 수 있지. 미움받을 용기라는 말이 괜히 나왔겠어? 한국이라고 뭐가 다르겠어? 한국인들처럼 인종차별에 적극적인 민족이 어딨다고. 이게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려면 상당한 수준의 근거 자료가 있어야 할 것이야.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많이 늘었다고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땅의 대부분은 한국인들로 채워져 있음을 인정해야 할 거야. 하지만 한 나라를 좋아하는 일은 한 사람을 좋아하는 것과 닮았잖아. 이유는 없고, 주장만 있다니까.

그런데 문제는, 허구한 날 예쁘고 잘생긴 김이박 아무개를 좋아하느라 얼굴에 열꽃이 피는 것도 모를 지경이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나타나 내가 미치도록 좋아 죽겠다며 꽁무니를 졸졸 쫓아다니는 거야. 대체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냔 말이지. 어렵다, 어려워. 나도 한국인이니, 그렇게 태어났으니, 머리로는 한국이 잘되었으면 좋겠다 싶지만, 더 많은 이방인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한국을 좋아해 줬으면 하지만, 한국을 바라보는 내 근원적 시선은 시니컬함이 절반 이상이야. 나는 한국인들의 지독함이 몹시 끔찍하거든. 그런데 그 끔찍함이 만들어낸 것들이 정말 기가 막히게 멋지단 말이야. 한국인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마다 스스로를 끊임없이 녹여내고 긁어대는 것 같아. 웬만큼 해서는 표시도 잘 안나.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FA시장에 나온 것 같아. 끊임없이 서로의 몸값을 매겨대고 있지. 쓸모가 있다면 쓰일 것이고, 쓸모가 없다면 버려질 테지, 하는 생각. 한국인으로 산다는 것, 참 쉽지 않은 일인데, 우리는 서로서로 다 잘 이해하는데, 바깥에다 대고 설명하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라니까. 한국인들의 지독함은 이제 기본값이 되어 버린 것 같아. 뭐 하나 수월한 구석이 없는 대단한 대한민국이다, 이 말이야.

자, 질문 들어간다. 들어봐, 한국을 사랑하는 이방인 씨. “이런 나라여도 정말 괜찮은 거야? 계속 좋아할 수 있겠어?” 너희는 별것도 아닌 일에 깜짝깜짝 놀라더라.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것도 신기해하고, 화장실 변기에 올려진 비데도 신기해하고, 손만 닿으면 열리는 유리 자동문도 신기해하고, 고깃집 연기 흡입기도 신기해하고, 편의점 치킨에도 신기해하더라. 우리는 그것이 그냥 일상인데 말이지. 카페 테이블 위에 핸드폰 놔두고 화장실 가는 것도 신기해하고, 현금 가득 든 지갑을 아무도 손대지 않는 것도 신기해하고, 공원 벤치 옆에 놔둔 캐리어가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도 그대로 있는 것에 신기해하더라.

그거 알아? 한국에 CCTV가 얼마나 많은지? 맞아. 한국은 기술적으로 나무랄 데가 없는 아주 괜찮은 나라야. 하지만, 이 같은 비약적인 기술 성장 이전에 태어난 나는 이런 게 좀 불편해. 이게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를 자주 고민하지. 물론 이 놀라운 기술적 성취를 나 또한 아주 잘 이용하고 있어. 좋은 점도 많고. 가끔은, 이런 기술이 없었더라면 어떡할 뻔했어, 그러기도 해. 나는 한국인들의 높은 도덕성이 CCTV 때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그게 어디야? 그렇게라도 도덕적이면 되는 거지. 안 그래? 그래서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나같이 삐딱한 사람 말고, 한국을 정말로 좋아하는 사람들로 이 나라를 가득 채우면 어떨까? 하고.

인도와 이란에서 온 남자를 유튜브에서 봤는데, 정말 열심히 살더라. 여기서 열심히 산다는 말은 정말 열심히 일한다는 뜻이야. 와, 와, 그러면서 봤어. 그리고 그들은 하나같이 같은 말을 했어.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한국은 정말 기회의 나라라고. 열심히 하는 만큼 상응하는 대가를 지불한다고 말이야. 우리와 이제는 우리가 되어 버린 그들 사이에 놓인 간극의 실체는 무엇일까? 그들이 붙잡은 기회의 얼굴을 살피고 또 살펴봤지. 마치 워킹홀리데이로 외국에 나간 한국인들이 지독한 성실함으로, 어떡하든 기회를 낚아채는 영민함으로, 기어이 한 나라에 뿌리를 내리고야 만 것과 궤를 같이하더라고. 그들은 행운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었고, 분명 조력자들이 있었겠지만, 세상에 빚진 게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어. 하늘을 감동하게 한 이들이었다고나 할까.

그래, 잊고 있었어. 열심히 산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우리가 해낸 놀라운 성취들에 우쭐해서, 그래 이만하면 되었어, 그러지는 않았는지. 그래서 질문을 조금만 다듬어 볼게. 한국에 사는 것을 기회라고 여기는 사람들로 이 나라를 가득 채우면 어떨까? 암만 봐도 그들한테 주인의 자격이 있는 것 같은데. 나 같은 어정쩡한 이방인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