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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1등만 기억하소서

김은희 작가

이것은 부동산 이야기다. 아니다. 여행 이야기다. 아니다. 부산 이야기다. 아니다. 이것은 관광산업에 관한 이야기다. 야놀자 리서치에서 발표한 <여행자 감성 평가 기반 한국 관광지 500>이 지역에 작은 파란을 일으켰다. 여기서 지역이란 필자가 거주하고 있는 부산 수영구를 의미한다. 아니다. 그것은 지나친 축소와 왜곡이다. 부산 전체가 제법 떠들썩했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티브이에서 연일 보도를 해댔기 때문이다. 부산에서 부산뉴스란, 중앙에서 내보내는 별 시답잖은 뉴스를 끝까지 참고 견디다 보면, 마침내 만나게 되는 빛나는 부록 같은 것이다.

말하자면, 거의 끝나가는 뉴스 말미에 부산의 양대 해수욕장 소식을 접한 것이다. 뉴스는 했던 얘기를 또 하고 했던 얘기를 또 하고 있었다. 가장 비슷한 분위기의 뉴스를 꼽으라면 대한민국 양궁팀이 올림픽에서 메달을 싹쓸이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아무튼, 500개의 관광지 중 1위, 2위가 나란히 부산 광안리 해수욕장과 해운대 해수욕장이었다. 정말 깜짝 놀랄만한 뉴스가 아닌가. 하지만 겨우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약간의 뇌피셜을 보태보자면, 바깥에서 보기에는 ‘1위, 2위가 모두 부산이네!’ 혹은 ‘부산, 좋지’ 혹은 ‘뭐 그 정도는 아니지 않나’ 대략 이 정도의 반응이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그것은 뭘 잘 모르는 말씀이시다. 그러니 다 같이 한 걸음 더 들어가 보자. 광안리 해수욕장은 부산 수영구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운대 해수욕장은 부산 해운대구에 있다. 혹시 3~5위가 궁금하지 않은가. 서울과 경기도의 롯데월드, 에버랜드, 경복궁 순이다.

그렇다. 부산 시민의 마음속에는 ‘와, 부산이 서울과 경기도를 이겼네’라는 내적 승리감이 새겨진 것이다. 거봐라, 우리가 얼마나 좋은 곳에 사는지. 가끔 인스타그램이나 쓰레드에서 ‘광안리나 해운대에서 사는 거 어때요? 한달살이해 보고 싶은데, 경험자분들 조언 부탁드려요’ 류의 포스팅을 보곤 한다. 필자도 그랬었다. 포르투갈의 리스보아와 레바논의 베이루트가 그렇게 좋아 보였다. 최근에 본 숙박 어플 광고도 맥락을 같이 한다. 하루만 머물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1년을 머물게 되었다, 뭐 그런 스토리텔링이었다. 이해한다. 다 이해한다. 그렇게 누군가는 행복을 벌고, 경험을 벌고, 돈을 벌고, 뭐 그런 게 이 세상이니까. 아무튼, 부산의 양대 해수욕장이 세간의 주목을 크게 받았다.

필자에게 두 해수욕장 중 어디를 더 좋아하느냐 묻는다면, ‘저는 송정해수욕장을 가장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참고로 송정해수욕장은 59위다. 제발 더 위로 올라가지 않기를 바란다. 하지만 송정으로 오시라. 나름 서퍼들의 천국이다. 양양에 왜 가나. 가까운 송정을 놔두고 말이지. 그러니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송정으로 오시라. 잊었을까 봐 다시 얘기한다. 필자는 현재 부산의 수영구에 거주하고 있다. 무려 34년째다. 우리 구는 이번 일을 조금 더 끈적끈적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왜냐하면 광안리 해수욕장이 수영구 관할이기 때문이다.

해운대와 광안리는 결이 상당히 다르다. 십수 년 전 지인의 미국인 지인이 광안리 바닷가에서 디제잉 파티를 기획했었다. 그는 광안리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는데, 당시 필자는 그저 어리둥절한 따름이었다. 아니, 이 촌 동네 바닷가에 뭐 볼 게 있다고, 라며 대꾸했던 기억이 난다. 조금 더 뻔뻔한 얘기를 해보겠다. 혹자는 해운대 바닷가를 마이애미나 말리부에 비교한다. 필자는 미국 땅 그 어디에도 아직 가본 적이 없기 때문에 뭐라고 얘기하지 못하겠다. 아무튼 동일인인 그 혹자는 해운대가 마이애미나 말리부보다 훌륭하다고 했고, 광안리가 해운대보다 낭만적이라고 했다. 그렇다. 그녀는 정확하게 낭만적이라고 했다. 낭만은 모든 걸 이겨버린다.

부동산 얘기를 아주 조금 해야겠다. 해수동은 부산의 노른자위이다. 해수동이 무엇인고 하니, 해운대구, 수영구, 동래구를 한꺼번에 묶어 일컫는 표현이다. 해운대구와 수영구는 미묘한 경쟁 관계에 놓여 있는데, 그 미묘함이란 어디가 더 살기 좋은 곳인가라는 느낌적인 느낌이다. 사실, 이것은 필자의 표현이고, 세상 사람들은 어느 구에 있는 아파트에 사는 게 내게 더 금전적으로 이로울까이다. 개인적으로는 동래구를 아주 좋아한다. 이번 야놀자 리서치의 결과는 수영구 관내 곳곳에서 현수막과 관보의 형식으로 대서특필되었다. 경사도 이런 경사가 없고, 야단도 이런 야단이 없지 않은가. 표면적으로는 수영구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살기 좋은 곳, 더 깊숙한 속내는 해운대보다 살기 좋은 곳이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다고 생각한다.

여름휴가 기간에는 광안리보다 해운대에 더 많은 인파가 몰려든다. 하지만 일 년 열두 달을 골고루 펼쳐놓으면 광안리에 더 많은 인파가 모여든다고 한다. 그러니 1위를 했겠지. 광안리의 히트 콘텐츠는 불꽃축제와 토요일마다 선보이는 드론 라이트쇼이다. 아직도 그 쇼를 못 봤다면 당신만 못 본 것이니, 부디 서두르시라. 고로, 광안리가 얼마나 좋으면 일 년 내내 사람이 모여들까, 광안리는 수영구에 있으니까 수영구는 대체 얼마나 살기 좋은 곳이길래, 뭐 이런 해석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야놀자 리서치를 꼼꼼히 살펴봤다. 대한민국에 이렇게 가볼 만한 곳이 많다는 사실에 우선 놀랐고, 순위와 상관없이 하나같이 모두 매력적인 곳이어서 괜히 신났다. 도장 깨기를 하듯 하나하나 다 가봐야겠다는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우리 이제 웬만큼 알지 않는가. 외국 유명 관광지도 막상 가보면 그리 대단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집에서 멀면 멀수록 도파민이 터진다면 취향에 맞게 그리하시면 된다. 80일 만에 해냈다는 세계 일주가 이제 더는 매력이 없다. 대한민국만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하지만 급하게 서두르지 않을 것이다. 생애 전체를 평평하게 펼쳐놓고, 나고 자란 이 땅을 천천히 음미해 볼 생각이다. 그런데 말이다. 부산 해운대구는 좀 분발하셔야겠다. 500개 리스트 중 무려 5곳이 해운대구더라. 수영구는 딱 1곳만 리스트에 올랐는데. 그것도 1등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