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인의 인사 문화
이인섭_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아과 교수
레바논을 제외한 대부분의 아랍 지역에는 사막과 광야가 넓게 펼쳐져 있다. 오늘날 많은 아랍인은 더 이상 유목민이 아니라 할지라도, 이들의 기본 정서는 사뭇 유목적이다. 그 이유는 아직도 친지들이 전통적인 유목 생활을 고수하기도 하고, 정착 유목민으로 살더라도 유목민의 관습을 지키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또, 아랍 고전 문학은 대부분이 시인데, 그 시의 도입 부분에서 시인은 연인 가족이 살던 장막(텐트) 터에 올라 떠나간 연인을 그리워하는 내용으로 시를 시작한다. 이러한 고전 시를 줄줄이 암기하는 아랍인들이기에 오늘날 도시민으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유목적인 사고방식이 지배적이다.
이처럼 유목민의 정서를 잘 보여주는 아랍인의 인사법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있다.
첫째,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먼저 인사한다.
물과 가축 먹이를 쫓아서 이동하는 유목사회에서는 피아식별이 중요하다. 다가오는 사람이 자신에게 적대적인지 호의적인지를 구분해야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약한 사람이 강한 사람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것은 피아 구분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강한 사람이 평화와 호의를 나타내야 호의적인 관계를 유지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오늘까지도 강한 사람이 약한 사람에게 먼저 인사하는 것이 아랍인의 절대적인 인사 원칙이다.
차를 타고 있는 사람이나 말을 탄 사람이 걸어가는 사람보다 기동력이 좋으므로 강한 사람이다. 서 있는 사람이 앉아 있는 사람보다 더 기동력이 있으므로 강한 사람이다. 칼을 지니고 있는 사람은 맨 손인 사람보다 강한 사람이다. 언덕을 내려오는 사람이 오르는 사람보다 힘을 더 비축하고 있기에 강한 사람이다. 이처럼 강한 사람과 약한 사람의 구분은 아랍 세계에서 인사를 건네는데 고려되어야 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부끄럽게도 필자는 요르단 유학 시절에 오랫동안 교수님들과 악수해 본 기억이 없다. 교수님을 만날 때 연장자인 교수님이 악수를 청해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버르장머리 없는’ 동료 학생들은 교수님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하는 것이 아닌가! 이후 한참이 지나서야 젊은 학생이 나이 드신 교수님보다 강한 사람이기 때문에 먼저 악수를 청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둘째, 인사를 받은 사람이 건넨 사람에게 같은 말이나 더 나은 말로 답한다.
코란 4장 86절에서는 ‘인사를 받으면 그 인사말보다 더 좋은 말이나 같은 말로 답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이슬람교의 인사 원칙이지만, 유목 사회의 인사 원칙과도 다르지 않다. 하디스(무함마드 언행록)에서 무함마드에게 오는 사람이 ‘그 평화가 당신들 위에 있기를’이라는 인사말을 건네면 ‘열’이라고 답하고, 다음 사람이 와서 인사말을 건네면, ‘스물’이라고 답하고, 또 다른 사람이 와서 인사말을 건네면, ‘서른’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이때 무함마드의 ‘10’, ‘20’, ‘30’은 자신에게 인사를 건넨 사람들에게 받은 인사말의 10배, 20배, 30배 좋은 것으로 답을 한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더 나은 인사말 대답은 오늘날 구어체 인사말에서도 많이 사용되는데, 보통 받은 인사말을 양수(2배)나 복수 형태로 바꾸어서 답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marḥaba(넓은 곳을)이라는 인사를 받으면 양수인 marḥabatein(넓은 2곳), 또는 복수인 mara:ḥib(넓은 곳들)이라고 대답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셋째, 동성 간 볼 키스(비쥬)를 할 때 상대의 입 냄새를 맡으면 안 되며, 상대방이 들을 수 있도록 입으로 가볍게 ‘쪽’ 소리를 내는 것이 예의이다.
볼 키스는 공식적으로 양 볼에 한 번씩 하게 되어 있지만, 세 번이나 그 이상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때 상대와 가깝다는 표시로 마지막 ‘쪽’ 소리는 길고 크게 내기도 한다.
넷째, 이성 간에는 악수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일부 여성은 남성과 인사조차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항 같은 곳에서 남녀가 볼 키스를 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런 경우는 ‘maḥram’ 관계일 때만 허용된다. maḥram이란 코란 4장 22~23절에 언급된 대로 이슬람에서 결혼할 수 없는 3촌 이내의 관계를 말한다.
아랍 세계에서는 인사를 길고 정성스럽게 한다. 긴 인사말과 긴 안부가 두 사람의 관계를 반증하기 때문이다. 국제전화를 할 때도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인사와 안부를 길게 나눈다. 우리나라 문화에서는 인사와 안부의 차이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지만, 아랍 세계에서는 두 가지가 순서대로 해야 한다. 먼저 ‘좋은 아침’, ‘넓은 장소’, ‘그 평화가 당신들 위에 함께 하기를’, ‘많이 보고 싶다’ 등과 같은 인사를 길게 건네고, ‘쓸데없는’ 안부는 더 길게 묻는다. ‘잘 지내니?’, ‘공부는 잘하고 있니?’, ‘건강은 어떠니?’, ‘거기 날씨는 어떠니?’, ‘직장 생활은 잘하고 있니?’… 그리고 나면 가까운 친구나 가족의 안부를 묻기 시작한다. 본론에 들어가기까지 적어도 5분은 인사와 안부에 정성을 쏟는다.
바쁜 세상에 살면서 그렇게 긴 인사와 안부가 비경제적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그러나 가까운 사람일수록 인사와 안부가 길어짐에 익숙해져야 한다. 그러므로 아랍인과 대화할 때는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길게 인사하는 것이 예의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물론 대화가 끝날 때도 정성스러운 인사와 안부는 기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