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도시의 대중음악
박정경_한국외대 아프리카학부 교수
아프리카는 20세기 후반부터 급격한 도시화를 경험했다. 1960년대 초, 아프리카 대륙의 거주지 대부분이 촌락 지역이었고, 도시 인구 비중은 12% 미만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아프리카 인구의 45% 이상이 도시에 거주하고, 2050년경에는 인구의 60%가 도시로 몰릴 것으로 예상된다. 기본적으로 인구증가율이 높은 데다가 청년층 위주의 도시 유입이 이어지면서 아프리카에서 도시 과밀이 심화되고 있다. 재정 상황이 어려운 아프리카 각국의 정부는 도시 혼잡에 대처하는 데 대체로 실패했으며, 인구 밀집은 슬럼화를 유발하고 도시 빈곤층의 생계에 악영향을 미쳤다.
아프리카 대도시의 중심부에는 경제 성장에 힘입은 빌딩 숲이 자리 잡고 있지만, 다른 편에는 불법 건축물과 열악한 기반 시설이 아무렇게나 들어선 슬럼이 공존한다. 동아프리카 최대 도시 케냐 나이로비의 키베라(Kibera)와 마다레(Mathare), 서아프리카 최대 도시 나이지리아 라고스의 마코코(Makoko)와 아제군레(Ajegunle), 남아프리카 최대 도시 요하네스버그의 소웨토(Soweto) 등지가 아프리카 대도시의 대표적인 슬럼이다. 이 대도시 주민의 대략 60~70% 정도가 저소득층으로서 주로 슬럼에 거주한다. 비포장도로 주변에 얼기설기 늘어선 판잣집들, 쓰레기 더미로 가득한 공터, 삼삼오오 모여 있는 무직자 청년들이 아프리카의 슬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일자리가 부족한 현실에서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는 슬럼의 청년들은 빈부격차, 부정부패, 인권탄압 등의 사회적 어려움 속에서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실업, 범죄, 빈곤 등이 만연한 아프리카 슬럼 지역을 중심으로 대중음악, 특히 힙합은 소외된 도시 청년들이 현실을 인식하고 즉각적인 관심사를 표명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제공한다. 미국 뉴욕의 슬럼가에서 태동한 음악 장르인 힙합은 지난 수십 년에 걸쳐 글로벌 음악 산업의 성장으로 인해 대중화되고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아프리카의 도시에서 좌절을 겪은 청년들은 자신의 정체성을 강화하고 억압된 열망을 표출할 수 있는 문화 행위로서 힙합 음악을 즐기고 있다. 아프리카 도시에서 힙합의 부상은 주목할 만한 문화 트렌드다. 아프리카 청년들은 미국의 힙합을 답습한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익숙한 음악과 토착어를 활용함으로써 아프리카 고유의 힙합 스타일을 구축했다. 여기서는 케냐의 겡게(genge), 가나의 힙라이프(hiplife), 탄자니아의 봉고플라바(bongo flava) 등의 예를 통해 아프리카 도시의 대중음악을 소개하고자 한다.
겡게는 케냐의 수도 나이로비 동쪽 단도라(Dandora)에서 태동한 힙합 음악이다. 식민지 시절부터 저소득층 아프리카인 거주 구역으로 알려진 이스트랜즈(Eastlands) 외곽에 위치한 단도라는 쓰레기 매립장 근처에 있는, 범죄와 빈곤으로 악명 높은 슬럼 지역이다. 힙합과 랩 위주의 겡게 음악에는 자메이카 레게 리듬과 아프리카 전통 음악의 요소가 가미되어 있다. 이 음악 장르의 명칭인 ‘겡게’는 ‘범죄조직,’ ‘패거리’ 등을 뜻하는 영어 ‘gang’의 쉥(Sheng)식 발음이다. 쉥은 케냐의 도시 청년들 사이에 쓰이는 속어로서 스와힐리어와 영어 기반에 기쿠유어(Gikuyu), 루오어(Luo), 루야어(Luhya), 캄바어(Kamba) 등등 케냐의 다양한 토착어로부터 차용된 단어로 이루어져 있다. 겡게의 가사는 쉥으로 창작되고 있으며, 주로 도시 청년의 빈곤과 소외에 저항하는 내용이다. 초기 겡게 그룹으로 여겨지는 칼라마샤카(Kalamashaka)가 1997년에 발표한 ‘이걸 설명해(Tafsiri hii)’라는 곡에는 “단도라에서의 삶이 너무 거칠어서 울고 싶을 때 마이크를 잡는다”라는 가사가 등장한다. 이 밖에도 주아 칼리(Jua Cali), 노니니(Nonini), 메자(Mejja) 등 대표적인 겡게 가수들의 노래는 젊은 세대의 사회적 불만, 기성세대와 기존 질서에 반하는 투쟁의 목소리를 담고 있다. 겡게는 자신의 권력을 남용하고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민을 분열시키려는 정치 지도자를 거부하라고 촉구하는 등 청년들이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고 변화를 선동하는 플랫폼을 제공하기도 한다.
힙라이프는 가나 젊은이들 사이에서 인기 있는 대중음악으로서, 미국 힙합에 아프리카 전통 음악인 하이라이프(highlife)가 혼합되어 탄생했다. 하이라이프는 1920년대부터 가나와 시에라리온의 해안 지역에서 유행한 음악 장르인데, 서아프리카의 다양한 음악에 영향을 미쳤다. 가나에서 하이라이프는 기성세대 사이에서 여전히 인기 있는 음악이며, 재즈 호른이나 기타 등 서양 악기로 연주되지만, 전통적인 아칸족(Akan) 음악의 멜로디와 리듬을 담고 있다. 힙라이프 가사는 영어와 더불어 트위(Twi), 가(Ga), 에웨(Ewe) 등 가나의 토착어가 사용되기도 한다.
힙라이프는 가나의 수도 아크라 인근 노동자 계층의 거주 지역인 코콤렘레(Kokomlemle)에서 1990년대에 태동했다. 1992년 군사 정권이 몰락하고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 대중매체는 정부의 통제에서 벗어났다. 이때부터 가나 전역에 여러 FM 라디오 방송국이 설립되기 시작하여 현재 약 150개의 방송국이 운영되고 있는데, 이 라디오 방송이 힙라이프 음악을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힙라이프를 즐기는 청년들은 자신이 처한 상황의 불합리성을 음악으로 표현한다. 높은 실업률과 부패한 정치권 등에 대한 불만, 사회 변화에 대한 젊은이들의 열망이 힙라이프 가사에 담겨있다.
봉고플라바는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동아프리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힙합 음악이다. ‘봉고(bongo)’는 스와힐리어로 ‘두뇌(brain)’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젊은이들 사이의 속어로 탄자니아에서 제일 큰 도시인 다르에스살람(Dar es Salaam)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플라바(flava)’는 영어 ‘flavor’의 스와힐리어식 발음으로, ‘풍미,’ ‘정취,’ ‘스타일’ 등의 뜻을 지닌다. 따라서 ‘봉고플라바’라는 장르 명칭은 다르에스살람 스타일이라는 의미와 함께 도시에서 생존하기 위한, 영민한 두뇌에서 나온 음악이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
봉고플라바는 1990년대 초반, 탄자니아의 젊은 음악가들이 힙합과 R&B, 레게, 그리고 전통 탄자니아 음악을 결합하여 독특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면서 시작되었다. 당시 탄자니아는 정치·경제적 변화의 시기를 겪었고, 젊은이들은 이러한 변화 속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현할 새로운 방식을 찾고 있었다. 다르에스살람의 만제세(Manzese) 슬럼에서 태동한 봉고플라바는 도시에서 삶의 희로애락을 스와힐리어 가사로 표현한다.
아프리카 도시의 힙합 음악에는 젊은이들의 현실에 대한 분노가 표출되고 있다. 겡게, 힙라이프, 봉고플라바 등의 아프리카 힙합에 청년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사회적 이슈를 비판하려는 욕구가 드러난다. 열악한 환경에서 좌절을 경험한 아프리카의 도시 청년들에게 힙합은 새롭고 접근하기 쉬운 예술 형식으로 자리 잡았다. 대중음악을 통해 젊은이들의 삶을 피폐하게 만드는 사회문제를 공유함으로써 아프리카의 청년들은 가혹한 현실에 대한 집단적 좌절감과 연대 의식을 고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