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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한국어의 느낌

김은희 작가

이것은 일종의 취미생활이다. 더욱 정확하게는 봉사활동이다. 그것이 무엇인고 하니, 내가 속한 봉사단체에서 행하는 일들에 관한 얘기이다. 단체는 꽤 오랫동안 한국과 한국어를 해외에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한국의 유명 방송 프로그램인 ‘도전 골든벨’에서 형식을 가져와, 현지 중·고등학생과 대학생을 대상으로 퀴즈쇼를 진행하고 있다. 몽골의 경우, 퀴즈쇼의 대상은 중·고등학생이며, 전체 쇼는 몽골어로 진행되고 있다. 한국과 인연이 깊고, 한국어에 대단히 능한 몽골인이 퀴즈쇼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있으며, 역사가 무려 10년을 넘어섰다. 처음에는 도시 한 곳에서 퀴즈쇼를 진행했는데, 현재는 반응이 좋아 도시 세 곳에서 쇼를 진행하고 있다. 수상자에게는 포상이 주어지는데, 단체에서 항공편과 체류 비용을 제공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서 체류 비용의 제공이라 함은 단체에서 숙박과 각종 체험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뜻이다. 우리의, 혹은 나의 역할은 체험 활동을 함께 이끌어가는 것이다.

라오스의 경우, 한국어 퀴즈쇼를 3년째 진행하고 있다. 대상은 현지 대학교 한국어학과 대학생들이다. 최근에는 단체에서 대학교 내 한국어 수업을 위한 강의동을 건립해서 전달하기도 했다. 이 일은 한두 사람의 통 큰 쾌척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뜻을 이해한 사람들의 십시일반이 모여 이뤄낸 일이다. 그리고 태국의 경우, 올해가 퀴즈쇼 진행 원년이었다. 하지만 해당 학교가 태국 최초로 한국어학과를 개설한 유서 깊은 대학이고, 현재 졸업생들은 한국어 능력을 요구하는 다양한 분야에서 직업인의 길을 걷고 있다. 예를 들면, 중·고등학교에서 한국어 교사를 하거나, 여행사에서 한국어 가이드를 하거나, 무역회사에서 한국 기업과의 거래를 담당하거나 등등이다. 참고로, 태국은 현재 한국어학과가 15개쯤 된다. 해당 대학은 태국 대입 시험에서 한국어 시험문제를 출제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원격 회의를 진행하기도 했는데, 학과 담당자들의 관심이 아주 대단했다. 진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몽골과 달리 라오스와 태국은 퀴즈쇼 대상이 한국어학과 대학생이며, 수상자에게 주어지는 포상은 몽골과 동일하며, 우리 혹은 나의 역할 또한 동일하다. 퀴즈쇼는 해당 국가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생생한 현장감을 느낄 기회는 없었다. 대신, 문제 출제에 관여하거나, 출제된 문제를 살펴볼 기회가 있어 퀴즈쇼의 대략적인 분위기는 가늠이 가능했다. 물론, 현장 사진과 쇼를 녹화한 동영상을 보기는 했다. 한국에서는 고등학생들이 퀴즈쇼에 출연하는데, 라오스와 태국은 대학생들이 출연하는 것이 이색적이었다. 대학생들이 오히려 앳되어 보이다니, 그랬다. 한국에서 성실하게 의무교육을 마친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의 문제를 거뜬히 맞힐 수 있는 수준이라 생각은 하지만, 한국인이라고 해서 한글과 한국어를 다 잘 아는 것은 아니니, 국적이 뭐 그리 중요한가 말이다. 문제는 한글을 창제한 왕의 이름을 묻거나, 춘향전의 장르를 묻거나, 상황에 걸맞은 의성어와 의태어를 찾아내는 등등이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아주 잠깐 해봤다.

그리고 마침내 지난달 태국에서 온 우승자들을 만났다. 현지에서 오랫동안 한국어를 가르쳐 온 한국인 교수님이 인솔자로 함께 오셨는데, 나는 그 분에 관한 얘기를 아주 조금 하고 싶다. 수상자들은 대략 일주일 여의 시간을 대단히 빡빡한 스케줄로 움직였다. 전체 일정에 관여하지는 못했지만, 수상자 3인과 함께 한 시간을 잠깐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것은 어느 하루의 일이다. 우선, 오전에 한국음식 만들기 체험을 했는데, 메뉴는 연근전과 김밥이었다. 음식이라는 것이 그렇다. 재료 손질이 5할 이상을 차지하는 법인데, 체험의 특성상 그 번거로운 과정은 죄다 생략되었다. 요리 선생님이 앞서 시범을 보여주었고, 한국의 여대생들이라고 해서 더 잘 해낼 것으로 생각되지 않는 일련의 과정을 태국의 여대생들이 제법 능숙하게 해냈다. 들어보니, 대학에서 꽤 여러 차례 김밥을 만들어 봤다고 했다. 만들어본 음식이 김밥만도 아니었다. 언어와 문화는 새의 양 날개 같은 것이니, 한글도 배우고 김밥도 말아봐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영어영문학과에서 피쉬앤칩스를 만들지 않고, 불어불문학과에서 바게트를 만들지 않고, 독어독문학과에서 맥주를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치고 지나갔다. 얇게 썬 연근 사이에 양념한 으깬 두부를 넣고 팬에 노릇노릇 구웠다. 그러나 막상 학생들은 채소보다 고기를 더욱 좋아한다고 했다. 한식에는 채소가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도 했다. 그래서 자신들이 만든 음식 대부분을 먹지 않고 남겼다. 그렇게 오전 시간을 보낸 다음, 국립부산국악원으로 가 김천 금릉빗내농악보존회의 빗내농악을 감상했다. 해설이 곁들여진 공연이었는데, 객석에 꽤 많은 외국인들이 보였다. 우리가 우리의 것을 소홀히 하는 틈을 외국인들이 메우고 있었다. 공연 시간이 1시간을 넘어서자 슬슬 지루한 기색이 엿보였다. 그래, 공연은 1시간이 제격이지, K팝도 아닌데. 최근 부상하고 있는 대한민국발 콘텐츠의 대부분은 도파민으로 버무려져 있고, 그리고 길들어 있다. 프로그램 진행상 국악 콘텐츠의 노출을 유의미하다고 생각하지만, 그 의도가 공급자와 수요자의 욕망을 모두 만족시키는 것은 아니다.

슬슬 자리를 옮겨 남포동으로 향했다. 깡통시장, 부평시장, 국제시장을 돌아다니며 길거리 음식을 종류별로 사 먹었다. 내가 과거 방콕의 카오산로드를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것처럼 말이다. 태국의 여대생들은 난생처음 먹어보는 것이고, 나는 오랜만에 먹어보는 것이니, 둘 사이에 큰 차이는 없는 셈이다. 그나저나, 나는 더 이상 길거리 음식을 먹지 않는 나이가 되어 버렸고, 학생들은 알록달록한 꿀떡을 아주 마음에 들어 했다. 원래 이날은 광안리에서 판이 벌어지는 불꽃축제를 보러 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안 될 말이다. 개인적으로, 광안리 불꽃축제는 티브이나 인터넷으로 보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사람이, 말도 못 하게 모여들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용두산공원 내 부산타워로 향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구도심의 야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두고두고 생각날 만한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이곳이 처음인 사람들이었다. 근처 경양식집에서 간단히 저녁을 해결한 내용은 생략한다. 멋진 야경 앞에서 식사 따위를 논할 수는 없잖은가. 학생들은 핸드폰 카메라로 쉴 새 없이 사진을 찍어댔다.

이제 인솔자로 함께 오신 태국에서 오랫동안 한국어를 가르쳐 온 한국인 교수님에 관한 얘기를 할 차례다. 아주 짧게, 그분은 한국인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가르치는 신분이기 때문에,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분의 한국어에서는 생동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형식적으로 오류가 없는 점잖고 교양 있는 한국어였지만, 포승줄에 묶인 한국어였다. 오해는 마시라. 그분은 대단히 신사적인 분이었고, 나는 숙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이것은 그저 어떤 한국어의 느낌을 잊지 않기 위한 기록이다. 한국인이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뉴스가 되지 못하지만, 외국인이 한국어를 잘하는 것은 뉴스가 된다. 더 많은 외국인과 한국어로 소통하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한국어가 뭣에 쓰는 물건인지 아직은 알쏭달쏭하겠지만, 그래도 기대하시라고 얘기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