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그녀가 군중(群衆)이니까. 괜찮다’ - '群衆'의 문화 정보가 한중언어에서 일대일 대응될까?
박덕준_가톨릭대 중국언어문화학과 명예교수
한국어의 한자어가 중국어의 단어와 일대일 대응관계를 맺은 경우가 상당히 많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접할 수 있는 단어를 예로 들면 한국어의 ‘양’, ‘사자’, ‘사회’, ‘노력’이 각각 중국어로 ‘羊[yang]’, ‘獅子[shizi]’, ‘社會[shehui]’, ‘努力[nuli]’로 같은 뜻으로 사용된다. 하지만 언어가 역사적 변천과 시대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따라서 단어의 의미도 시대에 따라 의미가 확장되는 경우가 있고 사용하다가 점점 사용 빈도가 낮아 도태되어 의미가 축소되는 예도 있다. 여기서는 시대 변화에 따라 한국어의 한자어와 중국어 단어의 문화 정보의 변동 상황을 살펴보고자 한다.
‘문화(文化)’는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사전적 의미가 ‘일정한 목적을 실현하고자 사회 구성원에 의하여 습득, 공유, 전달되는 행동이나 생활 양식의 과정에서 이룩해 낸 물질적 정신적 소득을 이르는 말. 의식주를 비롯하여 언어, 풍습, 종교, 학문, 예술, 제도 따위를 모두 포함한다.’이다. 그러나 중국어 단어 ‘文化’는 ‘학력이나 교양’의 뜻도 있다. ‘이 선생님은 교양이 있다(这位先生有文化)’처럼 그분의 학력과 교양 수준을 나타낸다. 따라서 ‘교양이 없으니 정말 끔찍하다!(没有文化真可怕!)’라는 말을 중국에서 함부로 쓰면 안 된다. 이는 중국이 사회주의국가로 발전하면서 생긴 단어의 의미 확장으로 새 문화 정보가 추가된 예다.
한국어와 중국어에서 ‘황색(黃色)’은 모두 ‘노란색’의 뜻을 가진다. 그런데 중국어에는 ‘노란색’ 외에도 ‘외설적, 저속한, 도색’의 뜻도 갖고 있지만 한국어에는 이런 뜻이 없다. ‘도색잡지(黃色刊物)’, ‘외설적 소설(黃色小說)’ 등이 모두 ‘건전하지 못한’이란 문화 정보를 담았다. 예를 들면 발행한 지 70여 년이 되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10대 도색잡지인 ‘Playboy’가 있다. 재미있는 것은 유럽에서 혁명적이지 않고 노동 계층이 자본가와 타협, 협력해야 한다는 ‘개량주의 노동조합’을 yellow union(黃色工會)이라 한다. 대표적인 것이 1919년의 네덜란드 수도 암스테르담의 Yellow Union이다. 또한 언론 영역에서도 황색언론(黃色言論, Yellow Journalism)이란 용어를 쓴다. 이는 보도에 관한 근본적인 기능, 취지나 윤리보다는 판매 부수 등 영리에 집중하여 자극적, 선정적인 소재나 가짜 뉴스 등을 보도하는 ‘비윤리적 언론사’를 가리키는 비판적 용어다. 이는 퓰리처상으로 유명한 조지프 퓰리처(Joseph Pulitzer)에 의해 조어되었다.
중국 신문에서 스크랩한 ‘군중(群衆)’관련 정치풍자 대화다.
황 씨: 이것이 제가 장 국장님께 드리는 팔딱팔딱 뛰는 활어입니다. 장 국장: 아이구. 지금이 당풍 정돈 기간이어서 당에 대한 충성심과 각성이 향상됐으니 이 활어를 받을 수 없습니다. 황 씨: 정 그러시다면 부인께 드리겠습니다. 장 국장: 어차피 그녀가 군중이니까. 괜찮습니다.
여기의 ‘群衆’은 중국에서 비공산당원, 또는 간부가 아닌 일반인을 가리키니 뇌물을 받아도 된다는 것을 풍자한다. 중국에서 물고기를 선물로 주는 풍습이 있는데 ‘해마다 풍요롭기 바랍니다(年年有余 ‘余’와 ‘鱼’가 서로 다른 한자이지만 음은 같아서(谐音) 차용한 것이다. 구정 때 집집이 이 말을 넣은 물고기 그림의 세화를 대문에 붙인다.)’는 의미를 지닌다. 중국어 사전에는 ‘群衆’을 ‘인민대중’이라 해석하지만, 실은 정치적, 행정적 피통치자 색채가 베어져 있다. 중국인이 이력서의 정치적 배경(政治面貌) 난에 ‘群衆’을 적으면 당원에 비해 정치적으로 낙후됨을 나타내 직장에서 중용되지 않는다. 한국어 사전에는 ‘인민’을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 지배자에 대한 피지배자’로 정확히 해석해 중국어 사전의 해석과 확연한 차이가 있다. 중국에서 군중이 정권 유지의 중요한 바탕이니 ‘공산당과 군중의 관계(黨群關係)’, ’군중과의 관계(群衆關係)’, 공산당 모든 사업의 기본 노선인 ‘군중노선(群衆路線)’, 노조(工会), 여성회(妇联), 학생회 등의 ‘군중조직(群衆組織)’ 등 ‘群衆’ 관련 단어가 매우 많고 모두 고빈도 용어이다. 특히 중국 언론에서는 ‘群衆’과 ’大衆‘을 엄격히 구분해서 사용한다. 정치적, 사회적 이슈나 내용에는 결코 ’대중(大衆)‘을 쓰지 않으며 ‘群衆’만 사용한다. 단 생활, 오락 등에만 정치색 없는 ’大衆‘을 사용한다. 이처럼 차별화된 중국어 단어 ‘群衆’에는 한국어 한자어 ’군중‘에 없는 매우 중요한 문화 정보를 함유하고 있다.
한국어에서 ‘사부(師傅)’는 자기를 가르쳐서 인도하는 사람 즉 ‘스승’의 뜻을 나타낸다. 그 예로 “미각의 향영 미쉐린 1스타를 받은 중식당 황 사부님이 운영하시는 ‘진향’에 다녀왔어요.”처럼 주로 요식업, 무술계 등에서 사용된다. 요즘은 누리꾼들이 자신보다 인터넷을 잘 만들거나 잘하는 사람을 ‘사부님’이라 칭하기도 한다. 중국어의 ‘師傅’는 첫째, ‘공장의 기술자, 요리사, 이발사, 목수 등 상업, 희곡 등 업종에서 기예를 가진 사람’을 가리키며, 둘째, ‘기예를 가진 사람에 대한 존칭’의 뜻을 나타낸다. 셋째, 개혁개방 후에 원래 중국에서 신분의 평등을 나타내는 ‘동지(同志)’ 대신에 ‘師傅’가 사회적으로 많이 사용되게 되었다. ‘師傅’라는 호칭의 보편화는 서민풍의 친근감이 있고 상대를 존중하는 의미도 있어 서로 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형씨, 말씀 좀 여쭙겠는데 왕푸진은 어떻게 갑니까?(这位师傅, 请问王府井怎么走?)” 그렇지만 ‘사부님’이란 호칭은 정부 관리나 기업의 간부, 의사 등에게는 쓰지 않으니 중국 사회가 확연한 신분과 계층 차이란 문화 정보를 나타낸다. 이에 비해 신분을 중요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유명한 셰프나 요가 선생님 등 ‘사부님’은 비록 기예의 스승이지만, 상층사회의 교수나 교사와 비슷한 대우를 받는 신분 관련 문화 정보라 하겠다. 다만 중국어 ‘師傅’의 둘째, 셋째의 뜻은 한국어에는 없는 뜻이다.
한국의 뉴스에서는 흔히 ‘선전(宣傳)’이란 단어를 주로 공산당 등의 정책에 쓰인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틱톡이 공산당의 선전도구다’(m.g-news.com), ‘전 정부가 공자학원 공산당 체제 선전을 알고도 방치했다’(m.blog.naver.com) 등이 그렇다. ‘선전’에 대한 국어사전의 뜻풀이는 ‘주의, 주장, 사물의 존재, 효능을 많은 사람이 알고 이해하도록 잘 설명하여 널리 알리는 일’로 나와 있다. 이 예는 사전 해석과 달리 사회주의국가에 특정하여 사용한다. 한국어에서 사물과 제품 선전에는 ‘피알(PR)’을 사용한다. 이에 비해 ‘宣傳’의 중국어 사전의 뜻풀이는 ‘대중에게 설명하고 그들이 믿게 해서 따라 행동하게 한다.’로 나와 있다. 이는 중국공산당이 1921년 창립 이래로 103년 동안 계속 인민들에게 당 정책을 주입하고 행동하게 했으며, 결과적으로 인민은 아바타처럼 조건반사적으로 움직이게 되는 문화 정보를 알려준다.
중국어의 ‘단위(單位)’는 ‘그녀는 의료기관에서 일한다.(她在医疗单位工作.)’ 그 외에 ‘사무기관(事業單位), 기업직장(企業單位), 연구기관(追究單位)’ 등처럼 ‘일터, 직장, 기관, 회사’의 뜻을 지닌다. ‘單位’는 중국인에게 ‘요람에서 무덤까지’란 의미가 있는 아주 중요한 문화 정보를 지니고 있다. 중국에서 ‘單位’가 없는 사람은 평생 아무것도 보장받지 못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한국어의 ‘단위’는 첫째, 수량을 수치로 나타낼 때 기초가 되는 기준. 둘째, 하나의 조직 따위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한 덩어리. 그 예로, ‘사장은 단위노조 위원장과 협상했다.’ 셋째, 학습 시간을 기준으로 한 일정한 학습량. 중국어의 ‘單位’보다 한국어의 ‘단위’의 해석이 더 많다.
언어는 시대,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발전한다. 한국어 한자어의 의미와 중국어 단어 의미의 상당수는 일대일 대응하지만, 일부는 대응 양상이 상이하다. 위에서 보여준 ‘문화(文化), 황색(黃色), 군중(群衆), 사부(師傅)’는 중국어가 한국어의 해당 한자어보다 문화 정보가 더 많이 함유한 경우이다. ‘선전(宣傳), 단위(單位)’는 한국어 한자어가 중국어 단어보다 문화 정보가 더 늘어난 경우다. 중국어 학습자는 이런 대응하지 않는 단어의 문화 정보에 유념해야 하고, 특히 한국어 한자어와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