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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로 표현되는 아랍 문화

이인섭_한국외대 통번역대학원 한아과 교수

아랍어는 아랍 22개국의 모국어나 공용어이다. 지역적 특성이 같을 수는 없지만, 아랍 전체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 코드가 이슬람교와 유목 문화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 코드가 언어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비록 1932년 이래 공식적인 인구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정확한 수치를 가늠하기는 어렵지만, 레바논의 기독교인 비율은 전체 인구의 1/3 정도가 될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레바논 이외 대부분의 아랍 국가에서는 이슬람이 절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에 아랍 지역이라고 하면 이슬람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또 레바논 이외의 아랍 국가에는 사막이 있다. 수자원이 넉넉지 않은 아랍 지역에서 일찍부터 유목 문화가 자리 잡은 것은 사막성 기후 환경이 낳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물론 오늘날에는 유목민(베두윈)이라 하더라도 광야나 사막에서 이동 생활을 하는 사람보다는 마을을 이루어 ‘정착 유목민’이라는 이름으로 생활하거나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유입된 경우가 많아서 아랍 세계 전체 인구에서 유목민이 다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한국인 의식구조의 근간이 농경문화인 것과 마찬가지로, 아랍인 의식구조의 근간을 이루는 것은 유목민적인 사고 방식이다.

이러한 아랍 세계의 문화 특성이 언어에서도 잘 드러나는데, 그러한 예를 아래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이슬람식 아랍어 표현

السَّلامُ عَلَيْكُمْ. (앗쌀라무 알라이쿰)

이 인사말은 무슬림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인사말이다. 이 말의 원래 의미는 ‘알라의 평화(그 평화)가 당신들 위에 있기를’이다. 이 인사말을 건네는 사람은 항상 ‘당신들’이라는 복수 형태를 사용하는데, 그 이유는 이슬람교에서 사람의 어깨 위에는 선과 악을 기록하는 천사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인사말을 건넬 때 한 사람과 어깨 위의 두 천사, 즉 셋에게 인사를 하기 때문에 복수 형태를 사용한다. 아랍 세계에서 예배(쌀라)하는 사람이 예배를 마치면서 고개를 오른쪽 어깨 쪽으로 향하면서 ‘앗쌀라무 알라이쿰’, 다시 왼쪽 어깨 쪽을 보면서 ‘앗쌀라무 알라이쿰’이라고 인사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런 인사는 사람의 어깨 위에서 선과 악을 기록하는 두 천사에게 하는 것이다. 이 인사말은 무슬림들의 인사말이기 때문에, 비무슬림이 사용할 때는 “당신은 무슬림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수 있다. 그럴 때 무슬림이 아니라고 답하면 웬만한 사람은 외국인이라서 아랍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생각하고, 젊은 사람들은 종교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쉽게 받아들이기도 한다.

أَنْتِ طَالِقٌ (안티 딸리끄, 의미: 당신은 이혼당한 사람이다.)

이 표현이 구글 번역 앱에서는 ‘당신은 이혼했습니다’라고 번역되는데, 이러한 번역물을 보면 기계 번역이 문화적인 배경을 고려하지 못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여성형 대명사인데, ‘딸리끄’라는 단어는 ‘남성형 능동분사’ 형태이지만 실제로는 여성 형태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아랍 이슬람 세계에서, 이혼은 남성만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혼하는’이라는 단어 형태가 여성에게 사용되면 ‘이혼을 당하는’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마치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임신한’, ‘생리 중인’, ‘수유하는’ 등의 단어가 여성형 표지가 없어도 여성형으로만 사용되는 것과 같다.

이슬람 세계에서는 혼인할 때, 남성이 여성에게 마흐르(신붓값)를 지급해야 한다. 보통 사회적으로 합의된 마흐르가 정해져 있지만, 가난해서 마흐르를 구할 수 없는 남성일 경우에는 은행에서 마흐르 자금 대출을 받거나, 코란 구절을 낭송해서라도 그 신붓값을 치러야 한다. 그리고 초혼인 여성이 혼인할 때, 신랑과 혼인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람은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아버지나 오빠다. * 이처럼 여성은 신붓값을 받고 혼인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이혼할 권리가 없다. 결국 이러한 문화적인 배경 때문에 주어와 술어의 일치가 이루어지지 않는 표현이 사용된 것이다.

그리고 남성만이 이혼권을 갖기 때문에 ‘나 ~하지 못하면 이혼할 거야’라는 강한 말로 의지를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서 남성 세 명이 차를 마시고 나서, 서로 찻값을 내겠다고 주장할 때, 한 사람이 ‘나 이 찻값을 내지 못하면 이혼할 거야’라고 하면 모두가 양보해야 한다. 또 ‘내가 이 회사에 더 다니면 이혼할 거야’라고 말하고 나서 그 회사에서 그대로 일을 하게 되면 이혼 선언이 한번 성립한다. 이처럼 ‘이혼하겠다는 선언’이 세 번 언급되면 실제로 이혼이 성립된다.

* 최근 이집트와 같은 일부 국가에서 여성이 이혼을 원하면 자신이 받은 마흐르를 모두 돌려주고 법원에 이혼을 요청하는 방법을 허용하기도 한다. 이처럼 여성이 먼저 이혼 요청을 하려면 다음 조항에 해당하여야 한다: 1. 남성이 생활비를 제대로 주지 않을 때, 2. 폭력을 행사할 때, 3. 여행이나 금고형을 받아 6개월 이상 헤어져 살 때, 4. 남성이 불임일 때, 5. 여성의 가족을 만나지 못하게 할 때 등과 같은 사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إن شاء الله. (인샤알라)

아랍어에서 이슬람의 종교적 표현이 음성적 잉여 표현인 필러(filler)로 사용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서 무슬림들이 미래 일을 언급할 때 ‘인샤알라(알라가 뜻하신다면)’라는 표현을 덧붙여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러한 표현을 사용하는 이유는 사람이 일을 계획한다고 해도 알라가 막는다면 계획한 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표현은 비단 이슬람교에서만 사용되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서도 ‘하나님이 원하시면’, ‘주여 원하시면’이라는 표현이 다수 사용된 것을 볼 수 있다. 무슬림이 약속을 정할 때 일반적으로 ‘인샤알라’라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내일 12시에 만나자’라는 약속을 했지만, 그 시각에 약속 장소에 가지 못하는 사정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그 약속 시각에 맞춰 집을 나섰지만, 날씨가 나빠서 약속 장소에 갈 수 없을 수도 있고, 길에서 사고가 나서 약속을 지키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내 아랍 친구 중에는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인사를 하느라 늦었다’라고 핑계를 댄 경우도 있었다.

이러한 필러 표현은 기원문 형태로도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ما شاء الله (마샤알라): ‘알라가 바라는 최상의 것’이라는 말로 칭찬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لا حَوْلَ ولا قوةَ إلَّا بِاللهِ (라하울라 와라 꾸와 일라 빌라히): ‘알라 외에는 권능도 힘도 없다’는 의미로,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거나 하기 어려운 일에 직면했을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وحِّد الله (와히드 알라): ‘알라는 한 분이시라고 말해라’의 의미로 이슬람교 유일신 사상을 드러내는 표현으로 ‘정말로?!’, ‘진짜로?!’라는 표현에 사용된다. صَلِّ على النبي (쌀리 알라 알나비): ‘예언자에게 평화가 함께 하시기를’의 의미로 ‘확실해?!’, ‘그렇다는 말이지’라는 표현으로 사용된다.

유목 문화식 아랍어 표현

위의 ‘앗쌀라무 알라이쿰’이 이슬람식 인사라면 아래 두 인사말은 유목식 인사말이다.

مَرْحَبًا. (마르하반, 또는 마르하바)

오늘날 아랍 세계에서 ‘Hello’ 의미로 사용되는 이 말은 원래 “당신은 넓은 곳을 밟으셨습니다.”라는 인사말에서 동사가 생략되고 목적어인 ‘넓은 곳을’만 언급한 인사말이다. 유목 사회에 ‘이웃은 없어도 친구는 있다’라는 말이 있다. 물을 따라서 이동하는 유목 사회에서 가까이 사는 사람이라도 이웃이라기보다는 잠시 근처에서 물이나 풀을 공유하는 타인이다. 그러나 친구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사람을 의미한다. 유목민들에게는 지나가는 길손이 적인지, 우군인지를 구분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생긴 인사말이 ‘마르하반’으로, ‘우리에게는 당신이 머물 넓은 공간이 있다’라는 말로 손님에게 ‘머물다 가라’는 환대의 말이다.

أَهلًا وَسَهْلًا. (아흘란 와싸흘란)

이 말도 앞의 ‘마르하반’처럼 “가족에게 (오셨고) 평지를 (밟으셨습니다).”라는 유목식 인사말 중에서 동사 2개가 생략되고, 목적어 2개만 남은 표현이다. 지나는 길손에게 ‘당신은 가족과 같은 우리에게 오셨고, (쉴 만한 공간인) 평지를 밟으셨다’는 환대의 인사말이다.

이 두 가지 인사말은 일반적으로 저녁나절 해가 질 때에 유목민 텐트를 지나가는 길손에게 건네는 인사말이다. 아랍어로 손님이 ضَيْف(다이프)인데, 이 어휘는 ‘(해가) 지다’라는 말에서 나왔다. 즉, 해가 지는 시각에 오는 길손에게 이러한 인사말을 건네어 손님이 자신들의 넓고 평평한 터에 머물다 가라고 권하는 인사말이다. 이러한 유목 사회의 인사말이 손님에게 3일 동안 머물다 가도록 접대하는 아랍 유목민들의 환대 전통을 잘 나타낸다. 이처럼 언어생활을 살펴보면, 말이 그 나라의 문화와 민족의 정서를 담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