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베트남에 “당신”이 없을까요? — 호칭으로 읽는 관계의 언어학
호티롱안_한국외대 외국어연수평가원 책임교수
우리는 누군가를 부를 때 이미 그 사람과의 관계를 설정한다. 이름을 부를 것인가, 직함을 붙일 것인가, 혹은 ‘형’, ‘선생님’, ‘고객님’이라 할 것인가. 호칭은 단순한 언어 형식이 아니라 관계의 선언이다. 그런 점에서 베트남어는 매우 흥미로운 언어다. 베트남어에는 한국어의 ‘당신’처럼 누구에게나 비교적 무난하게 사용할 수 있는 2인칭 대명사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상대를 부르기 위해서는 반드시 나이, 성별, 사회적 위치를 먼저 가늠해야 한다.
베트남어에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성은 ‘anh(아잉)’, 여성은 ‘chị(찌)’라 부른다. 부모 세대는 ‘cô(꼬)’, ‘chú(쭈)’, ‘bác(박)’ 등으로 달라진다. 이 표현들은 모두 가족 호칭에서 비롯되었다. 낯선 사람에게도 가족의 언어를 확장해 사용하는 것이다. 시장 상인에게도, 직장 동료에게도, 심지어 처음 만난 사람에게도 우리는 친족 체계의 언어로 다가간다. 베트남 사회가 타인을 고립된 개인이 아니라 관계망 속 존재로 이해해 왔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그렇다면 1인칭은 어떨까. 베트남어에는 ‘tôi’라는 단어가 있다. 사전적으로는 ‘나’에 해당하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그리 빈번하지 않다. ‘tôi’는 비교적 중립적이고 공식적인 상황, 예컨대 행정기관이나 업무적 맥락에서 사용된다. 친밀한 관계에서는 자신을 ‘em(엠)’, ‘anh’, ‘chị’처럼 상대와의 관계 속 위치로 표현한다. 다시 말해 “나는 누구인가”보다 “나는 당신과 어떤 관계에 놓여 있는가”가 먼저 결정된다. 이는 개인 중심적 자아라기보다 ‘관계적 자아’에 가까운 언어 구조다.
흥미로운 점은 한국어 역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흔히 ‘당신’이라는 말이 있으니 중립적 2인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제 언어 현실은 다르다. ‘당신’은 부부 사이에서는 애정 어린 호칭이 될 수 있지만, 일상 대화에서는 자칫 공격적 뉘앙스를 띤다. “당신이 뭔데?”라는 문장은 갈등의 어조를 담는다. 문학에서는 서정적 2인칭으로 기능하지만, 현실의 대화에서는 쉽게 쓰이지 않는다. 결국 한국어에서도 우리는 상대를 이름, 직함, 혹은 관계 호칭으로 부르는 경우가 훨씬 많다. 그런 점에서 동아시아 언어들은 개인을 직접 지칭하기보다 관계를 경유해 호명하는 공통점을 지닌다.
필자는 다문화 가정 상담 현장에서 호칭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여러 차례 경험했다. 한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은 남편의 형과 형수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라 난감했던 적이 있다고 한다. 베트남에서는 나이와 서열에 따라 비교적 명확한 호칭 체계가 있지만, 한국에서는 ‘아주버님’, ‘형님’과 같이 상황과 관계에 따라 달라지는 호칭이 많아 쉽게 익히기 어려웠다. 특히 같은 사람을 두고도 가족 내 위치에 따라 다르게 불러야 한다는 점이 혼란스럽게 느껴졌다고 한다. 결국 주변의 도움을 받아 하나씩 배워가면서 점차 익숙해졌지만, 처음에는 말을 건네는 것조차 조심스러웠다고 했다. 이처럼 호칭 하나가 관계를 가깝게 만들기도 하고, 때로는 심리적 거리감을 만들기도 한다.
반대로 한국인이 베트남을 방문해 연장자에게 ‘bạn(반-친구)’이라고 불렀다가 당황한 사례도 있다. 사전적으로는 ‘너’에 해당할 수 있지만, 연령 위계가 중요한 상황에서는 무례하게 들릴 수 있다. 언어는 사전적 의미만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사회적 맥락과 문화적 감수성이 함께 움직인다. 왜 이런 체계가 유지될까. 이는 단지 예절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철학적 기반과 연결된다. 개인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이름과 1인칭 중심 언어가 자연스럽다. 개인은 독립된 주체로 상정된다. 반면 공동체 중심 사회에서는 개인보다 관계가 먼저 설정된다. 유교적 질서, 마을 공동체 중심의 생활, 오랜 역사적 격변을 겪으며 형성된 상호 의존적 삶의 방식은 언어 속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 베트남의 호칭 체계는 단순한 전통이 아니라 사회를 유지해 온 관계의 윤리이기도 하다.
물론 변화도 일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는 SNS와 글로벌 문화의 영향 속에서 이름을 직접 부르거나 비교적 중립적인 표현을 선호하기도 한다. 회사 조직문화에서도 수평적 소통이 강조되면서 직급 대신 이름을 사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의례나 공식 자리에서는 여전히 전통적 호칭 체계가 힘을 발휘한다. 이는 언어 깊은 층위에서 관계의 감각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과 베트남을 비교하면 또 다른 흥미로운 차이가 드러난다. 한국어는 친족 내부 구조를 매우 세밀하게 구분한다. 매형, 형수, 제수, 동서처럼 관계를 촘촘히 나눈다. 반면 베트남은 비교적 적은 범주의 호칭을 사회 전반으로 확장한다. 한국은 내부를 정교하게 세분화하고, 베트남은 외부로 넓게 확장한다는 점에서 복잡성의 방향이 다르다. 어느 쪽이 더 복잡하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다만 두 문화 모두 ‘관계를 먼저 고려한다’는 점에서는 닮았다. 이 지점에서 통번역의 어려움이 드러난다. ‘anh’를 한국어로 단순히 ‘그’나 ‘당신’으로 옮기면 관계의 뉘앙스가 사라진다. 반대로 한국어의 ‘형’을 단순히 ‘older brother’로 번역하면 정서적 거리감이 축소된다.
다문화 사회로 접어든 오늘의 한국에서 이러한 감수성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서로 다른 언어는 서로 다른 인간관을 담고 있다. 베트남어에 ‘관계없는 당신’이 없다는 사실은 타인을 언제나 어떤 연결 속 존재로 본다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배워야 할 태도이기도 하다. 외국인이 낯선 행정기관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 혹은 긴급한 상황에서 통역이 필요할 때, 그들이 마주하는 것은 단어 이전에 관계다. 정확한 표현 하나, 적절한 호칭 하나가 신뢰를 만든다. 언어는 정보 전달의 수단이면서 동시에 존중의 형식이다. 우리가 상대를 어떻게 부르는가 하는 문제는 결국 우리가 상대를 어떻게 바라보는가의 문제다. 호칭을 이해한다는 것은 문화의 심장을 이해하는 일이다. 그 다리 위에서 우리는 더 이상 추상적인 ‘외국인’이나 ‘타자’가 아니라, 관계 속에서 연결된 이웃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언어는 장벽이 아니라 다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