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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작가, 오르한 파묵

이난아_한국외대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어학과 교수

2006년 튀르키예 문학 사상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문학적으로 내면화함으로써, 그가 작품을 통해 창조한 등장인물과 서사는 물론 작품의 주된 공간적 배경이 된 이스탄불이라는 실제적 공간까지 새롭게 독자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그는 세계적으로 ‘튀르키예 작가’라기보다는 ‘이스탄불 작가’로 더 잘 알려져 있으며, 작가 자신도 “나는 이스탄불 소설가입니다.”라고 말하며 자신의 문학적, 공간적 배경이 자신을 키운 도시 이스탄불임을 명확히 밝혔다.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은 이제 자연스레 이스탄불과 동일시된다.

오르한 파묵이 이스탄불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는 것, 그리고 현재까지 발표한 11편의 장편 소설 중 『눈(雪)』(2002)을 제외한 모든 작품의 공간적 배경이 이스탄불이라는 것을 보더라도 파묵에게 왜 ‘이스탄불 작가’라는 수식어가 붙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현재도 이스탄불 중심가에 살고 있으며, 그의 여름 집필실 또한 이스탄불시(市)에 속해 있는 섬이다. 한편, 스웨덴 한림원이 2006년 노벨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파묵은 고향인 이스탄불의 음울한 영혼을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문화 간 충돌과 복잡함에 대한 새로운 상징을 발견했다.”라고 그 선정 이유를 밝힌 바 있듯이 오르한 파묵은 이스탄불과 불가분의 관계이다.

우리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스탄불을 알고, 상상하고, 느껴야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단지 파묵이 이스탄불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그의 대부분 작품이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하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한 작가의 본질과 정체성을 통해 작품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고, 작가가 느낀 내밀한 감정과 비밀스러운 영감의 정체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비평가가 언급했을 뿐 아니라, 파묵 자신도 당당하게 인정하고, 자긍심을 가지고 토로한 대로, 이스탄불은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로서의 정체성에 있어서 가장 커다란 근원이며 총체라고 할 수 있다.

파묵은 그의 처녀작인 『제브데트 씨와 아들들』로 1979년 터키 밀리예트 신문 소설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문단에 데뷔한다. 이어, 『고요한 집』(1983)을 발표했으며, 역사소설 『하얀 성』(1985)으로 그의 명성은 국외적으로도 확산하기 시작했다. 1990년에 발표한 소설 『검은 책』은 파묵의 작품 중에서 매우 실험적이면서도 포스트모던적인 작품이다. 1994년에 발표한 『새로운 인생』에 이어, 1998년 12월에는 동·서양 회화의 충돌과 사랑을 다룬 『내 이름은 빨강』을 발표했으며, 세계 각국 언어로 번역되고, 노벨문학상을 수상할 만한 작가로 언급되기 시작한다. 『내 이름은 빨강』은 한국에서 가장 많이 사랑받고 있는 파묵의 대중적인 작품이기도 하다.

2002년에는 『눈』을, 2003년에는 자전적 에세이집인 『이스탄불, 도시 그리고 추억』을 발표했다. 그리고 2008년 8월 말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첫 작품이며, 이스탄불 상류층 남성의 집착적이며 열정적인 사랑을 다룬 소설 『순수 박물관』을 내놓았다. 뒤이어 소설 『내 마음의 낯섦』(2014), 『빨강 머리 여자』(2016), 『페스트의 밤』(2012)을 발표했다.

오르한 파묵의 집필실에서 오르한 파묵과 필자

한 작가가 창출한 파급력이란 때로 상상을 초월하기도 한다.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을 읽은 독자들은 파묵이 서술한 이스탄불을 보기 위해 이스탄불 여행을 감행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최근 튀르키예의 한 유력 일간지인 <휘리예트>는 “스웨덴에서 이스탄불로의 오르한 파묵 여행”이라는 머리기사에서 “오르한 파묵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 튀르키예 특히 이스탄불에 대한 스웨덴 사람들의 관심이 증가하였다. (…) 특히 파묵의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이 번역 출판된 후 스웨덴 사람들의 튀르키예 방문이 급증했다.”라는 기사를 쓰고 있다. 이는 한 작가가 국가 혹은 도시 브랜드와 이미지를 얼마나 높이고 있는지에 대한 하나의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상술한바, 파묵은 자신의 소설의 대부분에서 그 공간적 배경으로 이스탄불을 택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소설에서 이스탄불은 밝고, 긍정적이며, 즐거운 곳으로 다루어지지 않는다. 이스탄불에 사는 주인공들은 우울하며 결핍을 느끼고 있으며,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모색하는 등장인물들로 설정되어 있다. 파묵의 작품 중 이러한 특징이 가장 잘 드러난 작품은 그 제목에서도 시사하고 있듯이 픽션이 아닌 자서전적 회고록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이라 할 수 있다.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을 통해 우리는 이 작품이 단순한 도시 안내 책자나 평면적으로 작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을 나열한 회상록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나아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세계적인 작가가 된 한 인물의 영혼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알려주는 실증적 텍스트임을 느끼게 된다.

오르한 파묵의  여름 집필실에서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필자

파묵은 이 작품에서 자신이 이스탄불에서 어떻게 자랐으며, 주변의 거리를 어떻게 발견했는지 개인적 경험과 느낌을 통해 서술한다. 즉, 이 작품은 이스탄불이라는 고도(古都)에서 태어나고 자란 한 위대한 작가의 어린 시절과 청년 시절이 도시의 비애, 폐허, 몰락 그리고 변방 이미지와 잘 맞물려진 텍스트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키워드들은 파묵을 비탄에 잠기게 하기보다는, 긍정적으로 승화되어 작가로 하여금 “폐허와 비애, 그리고 한때 소유했던 것을 잃었기 때문에 내가 이스탄불을 사랑한다는 것을 서서히 알게 되었다.”라고 고백하게 만든다.

작가로서 파묵의 인생을 결정지은 것은 오스만 제국의 위풍당당한 유산이나, 아름다운 보스포루스 바다, 도시 곳곳에 남아 있는 유물 등 고도의 생기나 화려함이 아니라 낡아가고, 잊혀 가는 이스탄불 몰락의 정서와 가난, 도시를 뒤덮은 폐허가 부여한 비애이지만, 그는 이스탄불의 이러한 음울한 조직을 가슴으로, 사랑으로 품어 안으며 세계적인 대가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한편, 파묵은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에서, 젊은 시절 이스탄불을 변방으로 인식하고, “독서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도 이스탄불에서의 삶에서 벗어나 서양으로 여행”을 했었지만, “이제 제게 있어 세계의 중심부는 이스탄불입니다.”라고 단언하며 자신의 문학과 삶의 중심부가 이스탄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오르한 파묵의  여름 집필실에서 작품에 대해 토론하는 필자

혹자는 노벨문학상은 파묵에게 수여된 것이 아니라, 이스탄불에 수여된 상이라는 의미심장한 농담을 하기도 한다. 이 말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가 있었기에 파묵이라는 세계적인 작가가 탄생할 수 있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파묵은 여전히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이스탄불에서 거주하며, 이스탄불을 배경으로 작품을 쓰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러하리라 전망한다. 그의 말처럼, 이스탄불에 태어난 것이 그의 운명이기에 그는 이 운명을 거스르기가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