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나이자 너다> 태국어에 투영된 태국인들의 가치관
박경은_한국외대 태국학과 교수
지난 10월 24일 금요일 저녁 태국 시리낏 왕대비가 혈액 감염 등 지병 악화로 향년 93세의 일기로 서거하였다. 남편인 푸미폰 아둔야뎃 국왕이 서거한 지 9년만의 일이다. 2019년부터 입원 치료를 이어오던 시리낏 왕비의 병세가 악화된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기에 국민들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음에도 지극히 존경받던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비가 더 이상 같은 하늘 아래 없다는 사실은 크나큰 슬픔으로 다가왔다. 故 푸미폰왕의 생일인 12월 5일과 시리낏 왕비의 생일인 8월 12일이 각각 아버지의 날과 어머니의 날로 지정되어 여전히 국경일로 기념되고 있는 사실로도 선대 왕과 왕비에 대한 국민적 존경과 사랑을 엿볼 수 있다. 태국은 1년간을 애도 기간으로 지정하였고, 태국 국민들은 검은 옷을 입고 조문의 발길을 이어가고 있다. 공공기관의 홈페이지는 모두 흑백으로 바뀌었고, 유흥과 오락은 가능한 자제가 권고되고 있다.
시리낏 왕대비 서거 추도 화면. 출처: 태국 관광청 홈페이지(https://www.tat.or.th/)
태국어로 국왕이나 왕비가 ‘서거하다’는 ‘เสด็จสววรคต(싸뎃싸완콧)’ 또는 ‘เสด็จสู่สวรรคาลัย(싸뎃쑤싸완카라이)’라고 표현한다. 두 가지 모두 ‘하늘로 행차하시다’라고 해석될 수 있다. ‘싸완’은 산스크리트어 ‘स्वर्ग (svarga)’에서 온 말로, ‘하늘나라, 천국, 낙원’을 의미한다. 불교와 힌두교에서 ‘신들이 머무는 이상향’을 의미하기도 한다. 하늘은 높은 곳에 있으므로 좋은 곳이다. 그래서 천국은 오르고(ขึ้นสวรรค์), 지옥은 떨어지는(ตกนรก) 장소이다. [높은 것은 좋고, 낮은 것은 나쁘다(GOOD IS UP; BAD IS DOWN)], 내지는 [귀한 것은 높고 천한 것은 낮다(NOBLE IS UP; HUMBLE IS DOWN)]라는 태국인들의 개념적 인식 체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태국인들은 문화적으로 존두천족사상을 가지고 있다. 머리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귀하게 여기고 발은 낮은 곳에 있으므로 천하게 여긴다. 그래서 아이라 할지라도 머리를 함부로 만지지 않으며, 앞에 윗사람이 있으면 절대로 앞으로 발을 뻗지 않고, 앉을 때는 발을 뒤쪽으로 보내는 인어 자세를 취하는 것이 남녀를 불문하고 가장 공손한 자세이다.
이러한 물리적 상하 개념은 언어 표현에 그대로 투영되는데, 이런 특징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 중 하나는 왕실 용어 대명사이다. 태국어 남성 1인칭 겸양의 대명사 중 ‘ผม(폼)’은 ‘머리카락’이라는 말에서 기원한 단어로, 자신의 가장 높은 곳인 머리로 자신을 지칭하여 겸양을 나타내며 비슷하게는 ‘เกล้ากระผม(끌라우끄라폼, 머리의 상투)’도 쓰인다. 왕족이 더 높은 급의 왕족과의 대화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겸양의 대명사로는 ‘กระหม่อมฉัน(끄라멈찬)’이 사용되는데 이는 ‘나의 정수리’라는 의미이다. 역시 자신의 신체 중 높은 부위로 자신을 지칭하여 공손을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라마 9세 고 푸미폰 국왕과 시리낏 왕비가 태국 동북부 컨깬 지역을 행차했을 당시 지역 주민이 국왕에 엎드려 절하는 모습
반대로 2인칭에서는 상대의 낮은 신체 부위로 지칭하여 상대 높임을 표현한다. 예컨대, 태국어에서 일반적으로 ‘각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는 ‘ใต้เท้า (따이타우)’로, 우리말로 직역하면 ‘발 아래’라는 의미이며, ‘전하’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단어는 ‘ฝ่าบาท(퐈밧)’인데 직역하면, ‘(왕의) 발바닥’ 이라는 의미이다. 또, 국왕에게 ‘폐하’라는 호칭으로 사용하는 어휘는 ‘ใต้ฝ่าาละอองธุลีพระบาท(따이퐈라엉툴리프라밧)’으로 직역하자면 ‘왕의 발의 먼지 입자 바닥의 아래’라는 뜻이다. 얼마나 더 자신을 낮출 수 있을지 의문이 들 정도로 더할 수 없는 겸양의 의미를 지닌다.
이는 우리말의 폐하(궁으로 오르는 계단의 아래) 또는 전하(전각의 아래) 등의 표현이 사용되는 것과 비슷한 양상으로 풀이할 수 있다. 다만 태국어에서는 계단이나 전각 등 장소나 사물이 아닌,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발’이라는 신체 어휘를 사용함으로써 그 앞에 조아린 화자 자신의 지위를 더 천하게 보이게 하고, 이를 통해 지칭 대상인 상대방을 더 귀하게 보이게 하는 극단적 상하 대척 관계를 만들어, 화자와 청자 간의 신분의 차이를 더욱 극적으로 대비하는 것이다.
그 밖에도 국왕을 지칭하는 지칭어 ‘พระบาทสมเด็จพระเจ้าอยู่หัว (프라밧쏨뎃프라짜우유후아)’는 ‘머리에 계신 위대한 주인의 발’이라는 의미이며, 왕자는 ‘เจ้าฟ้าชาย(짜우퐈차이, 하늘의 주인인 남자)’, 공주는 ‘เจ้าฟ้าหญิง(짜우퐈잉, 하늘의 주인인 여자)’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역시 높은 것은 귀하다는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이렇듯 언어에는 언어 사용자들의 인식이 드러나 있고, 문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언어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2025년 9월 7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열린 주한태국대사관 주최의 ‘사왓띠 서울 타이 페스티벌’의 퍼레이드 모습. 한국에는 약 20만명의 태국인이 거주하고 있다.
한편, 태국어에서는 기본어휘 중에서 한국어와 일대일로 대응할 수 없는 어휘들이 종종 등장하여 우리를 당황하게 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친족어를 들 수가 있다. 한국어의 친족 어휘는 화자와 청자의 관계와 성별, 직계 여부, 혼인으로 맺어진 관계 등 복잡한 기준에 따라 세분화된 체계로 외국인들은 물론이고 내국인들조차도 간혹 혼동하는 경우가 생길 정도로 복잡하여 결혼이주여성들에게는 익히기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한국어 친족 어휘에 비해 태국어 친족 어휘는 아주 단순한 편이지만, 의미가 일대일 대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손위 형제의 경우는 성별만 구분하여 부모의 남성 손위 형제는 ‘ลุง(룽)’, 부모의 여성 손위 형제는 ‘ป้า(빠)’라고 지칭하는 데 반해, 부모의 손아래 형제의 경우는 부계와 모계로 성별 구분없이 분류하여 모친 쪽의 손아래 형제는 ‘น้า(나)’로, 부친 쪽의 손아래 형제는 ‘อา(아)’로 부른다. 즉, 부모의 손위는 부계나 모계에 상관없이 성별만 구분하여 큰아버지나 큰삼촌, 큰이모부와 큰고모부는 모두 ‘룽’이라 부르고 큰어머니, 큰숙모, 큰이모와 큰고모는 모두 ‘빠’라고 부른다.
반면에 부모의 손아래 형제는 성별에 상관없이 어머니 쪽 손아래 형제인 작은이모와 작은삼촌,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인 작은이모부와 작은숙모는 모두 ‘나’로, 아버지 쪽, 즉 작은고모와 작은아버지, 그리고 그들의 배우자는 모두 ‘아’로 지칭한다. 한국인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는 상당히 모호하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특히 가족과 관련한 문학 작품을 번역할 때는 이들이 과연 정확히 어떤 친족 관계에 있는 지 맥락을 통해 파악하기 어려울 경우 작가에게 직접 문의를 해야할 필요가 있을 정도이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หลาน(란)’과 ‘แฟน(퐨)’이라는 단어이다. ‘란’은 손주와 조카를 모두 지칭할 수 있다. 손주인지 조카인지는 확인을 해 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퐨’은 영어의 ‘fan’에서 음차한 단어인데 태국어에서는 ‘이성 친구, 애인, 배우자’를 모두 의미할 수 있다. 이 역시도 확인을 해 보아야 정확한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태국어에서 이러한 지칭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동일한 어휘를 써 왔다는 것은 아마도 이를 구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어처럼 이러한 단어들이 모두 명확히 각각의 단어로 구분되어 있는 언어로 이를 번역할 때에는 상당히 애매해진다.
대한민국은 외국인 체류자 비율이 5%가 넘어 공식적으로 다문화사회가 되었다. 한국과 태국의 인적 교류는 특히 활발하여 연간 200만 명 이상이 양국을 오간다. 한국에서 체류하는 태국인들이 어떠한 사건을 명확히 설명해야 할 때에 (경찰서나 법무부에서 어떤 사건을 설명하고자 할 때를 예로 든다면) 나의 ‘전 남친이’와 ‘전 동거남이’와 ‘전 남편이’의 차이는 대단히 클 수 있다. 이러한 간극으로 인하여 의도치 않은 오해가 발생하고 누군가에게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태국어의 의미와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 간극을 메워 오해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문화 중재자가 필요하다. 이는 통번역사의 역할로 상당한 중요성을 띠며, AI가 결코 대신해 줄 수 없는 부분이다.
태국어의 평어 대명사에는 인칭 혼용이 빈번히 일어난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เรา(라우)’와 ‘เขา(카우)’를 들 수 있다. ‘라우’는 원래 1인칭 복수 대명사, 즉 ‘우리’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대명사는 1인칭 단수로 ‘나’라는 의미를 나타내는 것을 넘어 2인칭 단수 대명사로 ‘너’라는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 “네 생각은 어때?”와 같은 문장에서 ‘너’의 의미로 ‘라우’를 쓰는 것이다. 한편, ‘카우’는 원래 3인칭 대명사로 ‘그’를 지칭하지만, 종종 1인칭 대명사로 ‘나’를 지칭하기도 한다. “내 생각은 이래.”와 같은 문장에서 ‘나’를 ‘카우’로 지칭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우리는 나이고 너이며, 그는 나인 것이다. 평어체에서 이러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은 이것이 공손의 전략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모호함을 잘 인내하고 견디는 태국 사람들의 여유로운 마음가짐을 투영하는 동시에 나와 너와 그라는 개체의 경계를 넘나드는 유연함을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나와 너와 그들이 사랑하는 태국인들만의 여유와 너그러움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