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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저항의 전통’

최미경_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불전공 교수

최근 프랑스 관련 뉴스를 보면 항의, 저항 및 시위의 현장이 많이 등장한다 . 연금 개혁 때문에, 휴일 하루를 줄이고 생산을 높이자는 정부 제안에 불만이라서, 월급이 오르지 않기 때문에 등 프랑스인들은 항의하고 시위하고 파업을 한다. 사회인들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자주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국립대학 제도라 등록금도 내지 않지만, 학생 노조가 있어서 (총학이 아니라) 불만이 있으면 강의실을 점거하고 시위와 파업에 돌입한다. (노동을 제공한 것이 없고 오히려 수업의 혜택받고 있는데도 노조가 있다.)

원래 프랑스 사회에서 시위 문화는 1789년 프랑스 혁명 때, 시민이 권력에 맞서 변화를 요구할 권리가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 사회 깊숙이 자리 잡았다. 현대에는 노동운동, 학생운동(특히 1968년 5월 혁명) 등 대규모 사회운동이 있었다. 프랑스 사회에서 시위는 단순한 항의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 참여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거리에서 의견을 표현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시위나 파업으로 인한 불편을 감수하는 것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문화도 기여를 했다. 특히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 진행되는 시위나 파업에 대해서 그들의 권리를 위해 필요한 부분이라면 용인하는 분위기가 최근까지 유지되어 왔다. 처음 유학하러 갔을 때 프랑스 노조들의 연합 시위 현장에 우연히 있었는데 공권력과 평화롭게 시위하는 것을 인상 깊게 지켜본 기억이 있다.

특히 국가의 권위와 의무에 대해 시민들이 더 많은 책임을 요구해 온 전통이 있다 보니 대표적인 서구의 복지국가인 프랑스에서, 국가가 사회 시스템을 책임져야 한다는 믿음이 강하다. 그래서 정부 정책이 시민의 권리나 생활에 영향을 준다고 느끼면 곧바로 강한 반발이 나타난다. 정부가 예산 문제로 국민의 복지제도에 손을 대거나 퇴직연령을 연장하려고 할 때 강한 반발이 있어왔다. 프랑스 국민은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퇴직하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높은 수준의 연금 조달에 대한 재정적 부담이 큰 정부는 연금 수령을 하는 퇴직 연령을 차츰 더 상향하고 있다. 현재 주변 유럽 국가들은 모두 65세 이상의 나이에 퇴직할 수 있게끔 연금 수령 나이를 늦추고 있다. 60세의 퇴직이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대한민국의 경우, 국민은 오히려 더 근로를 희망하는데 기업들은 50세 이상의 근로자를 퇴출하다 보니 60세 정년을 지키게 하려는 논의가 있고 노사를 중심으로 60세 이상으로 정년 연장이 제안되고 있다. 73세까지 근로를 희망한다는 통계도 있다. 한국인들에게 근로는 단순히 수입원이 아닌 사회적 존재감을 주는 중요한 요소인 반면, 프랑스인들은 이미 주 35시간제로 단축된 근무를 하면서도 일찍 퇴직하여 인생을 즐겨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국가는 어떤 상황이 오던 국민의 복지를 위한 예산을 항시 마련해야한다는 사고도 지배적이다. 재정 악화 상황에 놓인 프랑스 정부는 1961-1967년 사이에 출생한 국민의 경우 매년 3개월씩 퇴직 연령이 늦춰지는 개혁을 2023년에 통과시켰다. 프랑스 시민과 정부의 관계는 종종 협력이 아니라 긴장과 압력에 기반한 관계이고, 프랑스 시민들은 정부가 시민의 의견을 무시한다고 불신하며 사회 변화가 타협보다 투쟁에서 나온다는 역사적 경험을 믿고 협상 이전에 먼저 거리로 나가는 경우가 많다. 또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인 집회 결사의 자유가 잘 보장되고 있어서 파업을 해도 우리나라처럼 기업이 노조를 고소하여 피해액을 감당하게 하는 등의 일은 없다.

그러나 최근의 시위는 점점 과격해지고 시위의 명분보다는 시위를 위한 시위가 되는 경우도 많다. 2018년 휘발유 가격 인상과 국도에서의 주행속도 감속과 같은 행정 조치에 반발하여 시작된 노란 조끼 운동(Gilets Jaunes)이라 불린 일련의 시위는 폭력이 동원되어 역사 유적을 파괴하고 상점을 약탈하는 불미스러운 사태로 변질되었으며, 최근의 시위 역시 점점 과격해지며 공권력에 대한 공격도 발생하고 있다. 노란 조끼 운동은 ‘불복하는 프랑스’라는 극좌파 정당의 창당으로 이어졌다. 장뤼크 멜랑숑이 당대표인 이 당은 정부의 조치에 무조건적인 반대를 하며 포퓰리즘에 기반한 공약을 내걸고 있다.

한편, 어떤 경향이나 사고에 대한 무조건적 수용보다는 비판적 사고를 하고 접근하는 토론, 논쟁은 프랑스 문화의 일부이기도 하다. 가족, 친구들끼리의 식사 자리에서도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의도적으로라도 서로 다른 입장을 내면서 토론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때로 격렬한 토론이 되어 식사가 끝나면 이들이 다시는 만나지 않을 것 같지만, 와인 한잔으로 건배를 하고는 다시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음 휴가지에 대해 이야기하곤 한다. 다른 의견에 대해 토론하고 비판하는 것이지 사람을 배척하지 않는 교육이 배어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오히려 누군가의 의견을 순응적으로 너무 계속 받아들이면 토론에 소극적으로 참여한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대부분 서로 열심히 주도권을 가지고 토론에 참여하기 때문에 프랑스 TV의 토론 프로그램을 보면 모두가 다 같이 이야기하는 장면도 자주 보인다. 반대하는 것 자체가 사회적으로 부정적 의미가 아니라, 자기 의견을 명확히 표현하는 시민적 행동으로 여겨집니다. 이런 문화 차이 때문에 상대방을 존중하기 위해 가능한 한 동조의 의사를 표시하거나 자신의 입장을 강력하게 주장하지 못하는 동양 문화권의 방문자는 소극적인 사람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상대가 자신의 의견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 마음이 상할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뿌리내린 전통과 관습에서 나오는 프랑스 인들의 비판과 반대, 저항은 사고를 확장하고 생산적으로 수용되면 다양성의 관용이 된다. 다만 최근 프랑스 내의 과격한 시위는 전통을 벗어나 맹목적인 요구를 관철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프랑스 사회 내에서도 자제와 이성을 요구하게 되었다. 프랑스가 처한 재정 위기로 인한 조세 정책 및 복지 정책의 긴축 조치들이 예상되면서 이해관계는 더 첨예화될 예정이며, 현 정부의 정치적 상황도 안정적이지 못해 이후 펼쳐질 시민 저항은 복잡한 양상을 띨 것이라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