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세계화의 빛과 그림자
로버트 파우저_언어학자(전 서울대 국어교육과 교수)
지난 20년간 외국어로서 한국어 학습 열풍이 거세게 불었다. 한류와 케이팝은 한국 대중문화를 세계 무대에 올려놓았고, 특히 진화하는 글로벌 Z세대 문화 속에서 그 존재감이 두드러졌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붐과 방탄소년단의 컴백에 대한 관심은 케이팝 열풍의 힘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이 열풍에는 주목받지 못한 다른 요인들도 적지 않게 작용했다.
이러한 흐름을 보다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문화적 요인 외에 구조적인 배경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 가운데 먼저 짚어볼 요인은 한국과의 교류 확대다. 교류가 깊어질수록 한국인과의 접촉이 늘고, 이것은 자연스럽게 언어 학습으로 이어진다. 투자와 관광이 성장하면서 한국 내에서는 물론 세계 각지에서 한국인과의 만남이 늘어나고 있다. 베트남이 좋은 사례다. 베트남은 2022년 일본을 제치고 한국의 3대 교역국 자리에 오른 데 이어, 2025년에도 그 자리를 유지했다. 2025년 상반기 기준, 한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베트남에 대한 두 번째로 큰 외국인 투자국으로, 전체 투자의 14.3퍼센트를 차지했다.
무역과 투자의 성장은 한국인과 베트남인의 교류를 촉진했고, 베트남은 이러한 교류에서 언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일찌감치 인식했다. 베트남 정부는 학교에서의 한국어 교육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2021년에는 한국어를 ‘제1외국어’로 지정했으며, 이로써 초등학교에서도 가르칠 수 있게 됐다. 2025년 현재 베트남 48개 대학에 한국어 또는 한국학 관련 학과가 설치되어 있으며, 약 2만 7천 명이 재학 중이다. 같은 해 한국 대학에서 공부하는 베트남 유학생 수는 10만 명을 넘어서며, 처음으로 중국인 유학생 수를 추월했다. 한국어능력시험(TOPIK) 응시자 중 베트남인의 비율도 빠르게 증가해 현재 전체의 36퍼센트에 달한다.
한국어 교육의 흥미로운 미시적 사례로는 미국 미네소타주 세인트폴 외곽에 있는 한국어 몰입형 공립 차터스쿨(자립형 학교) ‘세종 아카데미’(Sejong Academy)를 들 수 있다. 이 학교는 2014년 한국계 입양아와 이민자들이 한국 문화유산을 배울 기회를 마련하기 위한 취지로 설립되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학생 대다수는 미얀마에서 피난 온 카렌족 난민 공동체 출신이었다. 카렌족은 태국과의 국경을 따라 미얀마 남부에 거주하며 카렌어계 언어를 사용하는 민족으로, 오랫동안 미얀마에서 박해를 받아왔다. 학교의 소규모 운영 방식과 공동체적 분위기가 카렌족 학생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고, 학교는 한국 문화와 카렌 문화를 아우르는 독특한 학교 문화를 발전시켜 왔다. 2022년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의 정규 한국어 몰입형 차터스쿨 인가를 받아 미국 최초의 사례가 되었다.
한국어 학습 열풍의 두 번째 요인은 정부와 공공 기관의 지원이다. 교육부의 후원 아래 전라남도는 ‘글로벌 인재 허브 센터’ 사업의 일환으로 한국어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이 사업은 더 많은 외국인 유학생을 유치하고, 졸업 후 전라남도에 정착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것은 그동안 다문화 정책의 목적으로 전라남도의 여러 지자체가 실시한 결혼이민여성을 위한 한국어 교육 사업이 한층 확대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교육부는 유사한 프로그램을 다른 지역으로도 확산할 계획이다.
한국어 교육 열풍 속에 논란과 갈등도 있다. 예를 들면 사실상 TOPIK의 민영화 방안에 반대하는 한국어 교육자들의 움직임이 있다. 현재 TOPIK은 교육부 산하 국립국제교육원이 개발과 운영하고 있지만, 개편안은 이를 민간 컨소시엄에 위탁하는 방향을 담고 있다. 교육자들은 이것이 응시료 인상으로 이어져 수험생 부담을 가중하고, 시험의 질과 운영 수준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논란은 정부의 한국어 교육 투자가 과연 지속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을 낳는다.
여기에 한국어 강사의 열악한 처우 문제도 있다. 지난 2025년 11월 2일 『한국일보』 기사에 따르면, 국립국어원의 2021년 조사 결과 한국어 강사의 평균 연봉은 1,357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구조적인 개선은 여전히 더딘 상황이다. 대부분의 강사는 복지 혜택 없이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일하며, 그중 90퍼센트가 여성이다. 처우 문제 때문에 몇 년 가르치다가 새로운 활동을 찾는 사람이 많고 긴 경력을 갖춘 한국어 강사가 많지 않아 이 분야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역사를 보면 외국어 학습 열풍은 보통 두 가지 결말 중 하나로 귀결된다. 첫 번째는 성장 둔화로, 관심과 투자는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두 번째는 거품이 꺼지며 점차 존재감이 희미해지는 것이다. 한국어 교육이 사회적 영향력과 생명력을 계속 유지하려면, 특히 턱없이 낮은 보수를 받는 강사들을 위한 정부의 지속적인 투자와 지원이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케이팝 열풍만 믿으면 큰 오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