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를 부탁해
강인욱_경희대 사학과 교수
서로 말은 통하지만, 무엇인가 다른 억양과 단어를 쓰는 사투리는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사실 사람들끼리 고립되어 살던 과거에 서로 다른 방식으로 말이 변천되는 것이 당연하니 사투리의 역사는 언어의 등장과 함께했을 것이다. 지금도 세계 각국에 각자의 사투리가 여전히 살아있다. 내가 주로 조사를 다니는 중국과 유라시아 각국 역시 사투리들이 잘 남아있는 곳들이 있다. 비록 말이 없는 유물을 조사하는 직업이지만, 답사를 다니려면 시골의 여러 사람들과 대화해야 하니 나에게도 각국의 사투리는 특히나 크게 다가온다.
무엇보다 사투리가 심한 나라는 중국이다. 내 전공의 특성상 산간오지로 유적지를 찾아가야 한다. 게다가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는 40~50년 전 발굴된 유적을 간략한 약도만 들고 찾아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럴 경우는 그 동네에서 연장자를 찾아서 물어보는 게 제일 빠르다. 예전의 지형도 기억하고 또 간혹 젊었을 때 직접 유적을 조사한 분들도 운 좋게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표준어만 하는 나로서는 사투리를 쉽게 알아듣기란 거의 불가능하고, 동료 중국 고고학자나 가이드들이 알아듣고 설명해 주는 정도이다. 그래도 본인들도 잘 못 알아들어서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되돌아가서 다시 묻는 일이 일상다반사였다.
그나마 중국 북방이나 만주는 잘 통하는 편이고, 남방의 사투리는 아예 소통이 불가능할 정도이다. 당장 타이완에 가면 수많은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혼재한다. 홍콩이나 타이완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민남어와 광둥어는 그냥 소통이 불가능하다.
사실 중국의 표준어인 ‘보통화’라는 것이 북경 일대에서 주로 쓰는 말로 특히 명나라 시대 관리들이 쓰던 말인 ‘관화(官話)’에서 시작되었다. 흔히 중국어 표준어를 ‘만다린’이라고 하는데 바로 이는 포르투갈 사람들이 만났던 북경에서 활동하는 고위관리인 ‘만대인(滿大人)’에서 유래했다. 관청에서 관리들과 쓰는 말이라는 뜻이다. 이후 청나라가 되면서 북경 일대는 만주족들이 대거 거주했고, 그 과정에서 북방지역 특유의 여러 언어와 문법이 섞였다고 한다.
지금 중국의 표준어는 1920~30년대에 정립한 것이다. 당시 중국 정부는 표준어를 정하기 위하여 표준어가 될 지역을 골랐고, 그 결과 하북성 난평현 일대 원주민의 언어를 채택했다. 비교적 과거부터 전해지는 말이 남아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난평현에 특별히 중국어가 표준어가 될 이유는 분명히 없었다. 어차피 수많은 민족의 언어와 사투리가 섞여 있는 중국이니 당시 상황에서 가장 적절한 언어를 고른 셈이었다. 중국어의 예에서 보듯이 ‘표준어’라는 것은 처음부터 표준어가 아니라 언어의 표준화를 위해서 임의로 선택되었다는 뜻이다.
실제 북경 일대 사람들 사이에도 사투리가 심하니, 그중 대표적인 것이 ‘얼화’라는 말버릇으로 단어의 끝을 ‘~얼’이라고 붙인다. 표준어만 배우고 북경에 처음 갔을 때 사람들이 ‘~~얼, ~~얼’하는 억양이 강해서 도통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였다. 이 현상은 같은 중국어 표준어를 쓰는 타이완이나 다른 지역에서는 거의 없어서 만주어나 북쪽 유목민의 언어가 섞인 흔적이라고 한다. (물론,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언어학자도 있다.)
모든 나라가 사투리가 심한 것은 아니다. 중국 내에서도 요령, 길림성 등 만주 일대는 비교적 사투리가 심하지 않다. 만주 일대는 중국 내에서도 가장 표준화가 잘 되어 있었는데, 그 이유는 근대 이후의 이 지역 역사와 관계가 크다. 청나라 시절에 이 지역에 중국인들은 많이 살지 않았고 19세기 말부터 본격적으로 중국인들이 들어와서 살기 시작했다. 그 결과 사투리가 제대로 형성되기 전에 근대 교육이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더욱 놀라운 나라는 러시아이다. 세계에서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한 러시아이지만, 놀랍게도 사투리는 전혀 없다. 시베리아에 러시아어가 퍼진 것은 400년 남짓일 뿐이고 사회주의 시절에 강력한 표준어 교육을 행한 탓이다. 나도 북극권의 시베리아 원주민을 찾아간 적이 있는데, 비행기와 헬리콥터를 갈아탈 정도로 오지였지만 그들의 언어는 아주 깨끗한 표준어였다. 심지어 지금은 독립한 구소련 지역에서도 러시아어 사투리는 전혀 없다.
한국도 땅은 좁지만, 세계 어디 못지않게 사투리가 다양하다. 특히 경상남도에 가면 각 군이나 도시별로 그 사투리의 억양은 서로 다르다. 난 처가가 부산이기도 하고 장인·장모님도 부산 토박이라 비교적 부산 사투리에 익숙하다. 그런데 가만히 이야기하다 보니 두 분의 억양이 서로 다른 것이 아닌가! 장모님은 부산 서쪽에서 자라서 김해 쪽의 말을, 장인어른은 해운대 토박이로 동래 쪽의 말을 하기 때문이다. 서울 사람이 경상도 지역 사투리를 제대로 쓰기란 불가능한 것이 사실 이런 이유이다. 외지 사람들이 보기엔 다 같은 경상도 말이어도 사실 수많은 지역의 말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경상도 지역은 가야의 여러 나라가 서로 다양성을 유지하면서 오랜 기간 역사를 유지했으니, 다양한 사투리도 어쩌면 그와 관련되어 있을 것 같다. 사투리는 우리도 모르는 우리의 역사를 가장 솔직하게 담고 있는 타임캡슐인 셈이다.
이렇게 인간의 숨어있는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이 사투리지만, 정작 우리 사회에서 ‘촌스러움’을 상징하기도 했다. 나는 1970~80년대에 서울에 유입되는 인구가 많았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매 학기 수많은 친구가 전국 곳곳에서 전학을 왔는데, 그때마다 생경한 사투리로 신기했던 기억이 난다. 그 사투리를 따라 하며 장난치는 개구쟁이들도 꼭 있었다. 지금도 사투리는 죄인 아닌 죄인의 취급을 받고 있다. 바로 방송과 미디어 때문이다. 방송 진행에서 사투리를 구사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고, 다른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은 방송에서 한마디라도 하려면 사투리 때문에 노심초사이고, 또 부지불식간에 사투리가 나오면 항의하는 댓글과 민원에 시달리기도 한다.
사투리는 각 지역의 특징을 간직하는 창고이기도 하다. 사람의 문화는 그들의 언어에 녹아 들어 있다. ‘사투리’라는 말의 등장은 ‘표준어’라는 인간이 만든 새로운 기준이 나오기에 가능한 것이다. 세상의 개성을 중시하고 각 문화의 전통과 역사의 맥락을 중요시하는 지금이다. 이제 사투리를 그만 탄압(?)하고 그 사투리에 담긴 풍부한 잠재력을 느껴보는 것은 어떨까? 비단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투리를 안다면 우린 진정한 국제인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