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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을 대표하는 영웅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

노영돈_중앙대 독일어문학과 교수

남유럽 그리스에 호메로스의 『일리아스』가 있다면, 북유럽 독일에는 『니벨룽겐의 노래』가 있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이렇게 말했다. “교양을 갖춘 독일 국민이라면 『니벨룽겐의 노래』를 읽어야 한다.” 독일 문학사에도 이런 말이 있다. “만약 독일 민족이 지상에서 멸망해 버린다고 가정하면, 그때 그 이름을 가장 빛나게 하는 것은 『니벨룽겐의 노래』와 『파우스트』일 것이다.” 북유럽의 대표적인 영웅서사시 『니벨룽겐의 노래』를 통해 독일의 뿌리 깊은 정신과 문화를 엿보는 장을 열어보고자 한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각 연이 4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 2,379연에 달하는 방대한 양의 서사시이다. 크게 2부로 구성되어 제1부는 〈지크프리트의 죽음〉, 제2부는 〈크림힐트의 복수〉로 되어 있다.

먼저 주인공, 지크프리트라는 인물과 그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니벨룽겐의 노래_줄거리는 최하단 글 참조

『니벨룽겐의 노래』는 게르만족 민족 이동기의 다양한 전설을 영웅서사시 형태로 쓴 작품이다. 이 이야기의 소재는 5, 6세기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 다양한 신화와 전설이다. 4세기 말경 훈족의 침입으로 게르만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게르만족이 유럽 전역에 정착하게 된다. 동고트, 서고트, 부르군트, 반달, 롬바르디아 등 게르만족의 국가들이 세워졌고 프랑크왕국을 중심으로 통합되면서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유럽의 중세가 시작된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부르군트족이 보름스를 정복하여 왕국을 건설한 것, 훈족이 부르군트족을 굴복시킨 것, 부르군트왕국을 다스린 세 왕과 권력 싸움의 과정에서 죽은 지기베르트, 즉 지크프리트 이야기는 역사 기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음유시인들에 의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1,200년경에 문자로 기록된다. 작자는 미상이나 오스트리아의 주교이거나 음유시인(吟遊詩人)이 기록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니벨룽(Nibelung)’이란 고대 독일의 전설적인 왕족 니벨룽을 시조로 하는 초자연적 힘을 지닌 난쟁이족으로 ‘안개나라의 사람들, 혹은 죽음의 나라 사람들’이란 뜻이다. 이들은 마법의 망토, 돌을 자르는 보검 발몽과 같은 많은 보물을 가졌었다. 『니벨룽겐의 노래』에 등장하는 지그프리트와 군터 왕의 부르군트까지를 포함하여 니벨룽족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 깊은 명대사를 꼽는다면 게르노트의 대사일 것이다. “비록 여기에 피를 나눈 내 친척이 1,000명이나 있다고 해도, 우리가 너에게 인질로 단 한 사람을 건네주느니 차라리 우리 모두가 죽음을 택하겠노라.”(2105) 게르노트는 크림힐트의 오라버니이다. 그러니까 군터 왕의 형제다. 에첼의 궁에서 크림힐트의 복수극이 시작되기 전에, 크림힐트는 하겐 한 사람만 내어준다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보전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한다. 그 말에 게르노트는 이처럼 단호하게 거절한다. 게르노트의 말에 바로 이어지는 크림힐트의 또 다른 오라버니 기젤헤어 역시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아무도 우리에게서 기사도라는 무기를 빼앗지는 못할 것이니라. 우리와 싸우고 싶은 자는 여기서 우리를 맞을 것이다. 나는 단 한 번도 나의 친구에게 신의를 저버린 적이 없기 때문이도다.”(2106)

하겐 한 사람만 내어주면 다른 사람들의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크림힐트의 제안을 게르노트와 기젤헤어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하겐을 내어주고 비겁하게 자신들의 목숨을 유지하기 보단 하겐에 대한 신의를 지키며 죽겠다는 뜻을 전한다. 충성스럽게 자신들의 곁을 지켜주었던 하겐을 친구라고 부르며, 그에 대한 신의를 끝까지 지킨다. 하겐이 죽음을 예감하고도 주군에 대한 충성과 신의를 지키기 위해서 에첼의 궁으로 향하는 모습은 우리에게 큰 감동으로 와닿는다. 그렇지만 왕들인 게르노트와 기젤헤어가 자신들의 목숨을 바쳐서 신하에 대한 신의를 지키는 모습은 더 감동적이다. 하겐과 같은 충성스러운 신하의 뒤에는 그만한 충성과 신의를 받을만한 주군이 있었다.

신의와 명예를 목숨보다 귀하게 여길 줄 아는 모습, 약속한 것은 비록 자신에게 해가 될지라도 끝까지 지켜내는 모습, 이런 모습들이 경제적인, 문화적인 대국을 이룬 북유럽 국가들의 힘이 아닐까?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는 그의 저서 『게르마니아』에서 “게르만족은 성실, 명예, 용맹성, 복수 등을 중요한 가치로 여긴다”고 기술하고 있다. 영웅적이고 비극적인 이야기 속에서 게르만인 특유의 철저성과 강인함, 용맹스러움과 충성심을 소박한 필치로 순수하게 표현하고 있는 『니벨룽겐의 노래』를 통해 독일의 뿌리 깊은 정신과 문화를 엿볼 수 있을 것이다.

『니벨룽겐의 노래』는 독일뿐 아니라 유럽인의 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그들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받는다. 이들이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는 신의, 명예, 충성 같은 정신적 가치는 중세 기사도 정신과 기독교 윤리 속에서 맥을 이어오며 북유럽의 근대 시민사회를 형성하는 정신적 기둥이 되었다.

『니벨룽겐의 노래』줄거리

독일 라인강변 보름스지방에 부르군트족의 왕 군터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왕의 누이동생 크림힐트는 천하의 미인이었습니다. 한편 크산텐의 왕자 지크프리트는 용모와 무예가 출중한 젊은 영웅이었습니다. 지크프리트도 크림힐트에 대한 소문을 듣고 구혼하기 위해 보름스 성으로 갑니다. 지크프리트는 용맹하기로 이름난 청년이었으며, 마술적인 힘뿐만 아니라 니벨룽겐의 보물을 소유하고 있었죠. 그는 용과의 치열한 사투 끝에 용을 베어버리고, 그 피로 목욕을 해서 온몸이 강철과 같은 불사신이 됩니다. 그때 우연히 보리수 나뭇잎이 어깨에 떨어져서 용의 피가 닿지 않은 그곳만 빼고 말입니다. 그는 보름스에서 군터 왕을 도와 작센과 덴마크의 침공을 물리치며 많은 무공을 세웁니다.

한편 군터 왕은 바다 건너 이젠슈타인의 여왕 브륀힐트에게 구혼하고자 합니다. 브륀힐트는 빼어난 미모에 무예까지 겸비한 여걸이었습니다. 그녀의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목숨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남자들은 창 던지기, 돌 던지기, 뛰기와 같은 경쟁에서 하나라도 실패하면 목숨을 잃었습니다. 브륀힐트와 결혼하고 싶었던 군터는 지크프리트에게 몰래 자신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여동생 크림힐트와의 결혼을 허락하겠다고 말입니다. 지크프리트는 마법의 망토를 이용해 몸을 숨기고 군터를 도와줍니다. 군터는 브륀힐트를 이기고, 그 대가로 지크프리트는 크림힐트와 혼인하지요.

군터 왕과 브륀힐트, 그리고 지크프리트와 크림힐트의 결혼 첫날 밤 브륀힐트는 침실에서 다시 반항하여 군터 왕의 손발을 묶어서 벽에다 매달아 놓습니다. 군터 왕은 다시 지크프리트의 힘을 빌려서 여왕을 자기의 여자로 만듭니다. 지크프리트가 마법의 망토를 입고 도와준 것이었습니다. 그때 지크프리트는 그 여자로부터 빼앗은 허리띠와 반지를 자기의 아내 크림힐트에게 줍니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고향에서 왕위에 오른 지크프리트는 왕비 크림힐트와 함께 보름스로부터 초대를 받아 갑니다. 그런데 브륀힐트와 크림힐트 사이에 순위 다툼이 벌어지고 맙니다. 브륀힐트는 자신이 보름스의 왕 군터의 아내이고, 자기 생각에 군터는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자인데 지크프리트가 봉신의 의무도 지지 않고 있고 크림힐트가 도도하게 군다고 생각해 불쾌해진 것입니다. 그러자 크림힐트도 지지 않고 남편 지크프리트의 강함을 입증하기 위해 브륀힐트의 첫날밤 사건을 폭로하지요. 증거를 대라는 말에 크림힐트는 브륀힐트의 허리띠와 반지를 내보입니다. 시녀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브륀힐트는 교회 앞뜰에 엎드려 눈물을 흘리죠.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부르군트 왕가에는 하겐이라는 용맹한 장수가 있었는데요. 그는 왕가의 명예를 위해 브륀힐트의 복수를 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하지만 군터 왕은 “지크프리트는 우리에게 오직 선한 일만 했고, 우리의 명성을 높여주었소. 그러니 그를 살려주어야 할 것이오.”라며 지크프리트를 두둔합니다. 하겐은 지크프리트가 죽게 되면 많은 왕국의 영토 지배권을 얻게 될 것이라며 또다시 군터를 설득합니다. 결국 하겐은 적이 쳐들어온다는 허위 보고로 지크프리트가 우정 출정하게 만듭니다. 크림힐트는 남편의 신상을 걱정하면서 순진하게도 하겐에게 자기 남편의 보호를 부탁합니다. 하겐은 지크프리트를 보호하려면 그의 약점을 알아야 한다며 약점이 뭔지 묻습니다. 크림힐트는 남편 지크프리트의 유일한 약점이 용의 피가 닿지 않았던 오른쪽 어깨라고 알려줍니다. 심지어 옷의 어깨 부분에 빨간 실로 떠서 표적을 만들어 놓습니다.

하겐은 지크프리트에게 전쟁은 중지되었다고 하고 대신 사냥을 가자며 샘물까지 경주를 제안합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지크프리트는 무기를 풀어놓고 열심히 뛰어 샘물에 도착해서 엎드려 샘물을 마시는데요. 그 순간, 등 뒤에서 하겐이 그의 약점을 창으로 찌르고 달아납니다. 용맹했던 지크프리트는 초목을 피로 붉게 물들이면서, 마지막으로 군터 왕에게 자기의 아내를 부탁하고 숨을 거둡니다. 하겐은 지크프리트의 시체를 밤중에 몰래 운반해 크림힐트의 처소 앞에 두고 강도가 그를 해쳤다고 거짓말하는데요. 하겐이 가까이 올 때마다 용사의 상처에서 피가 샘솟는 것을 보고 그녀는 남편의 원수가 누구인지 곧 알게 됩니다. 비탄에 빠진 크림힐트는 묘지 옆에 조그만 암자를 만들어 아침저녁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원혼을 위로하며 지냅니다. 여기서 19장의 전편이 끝납니다.

후편은 크림힐트의 복수로 인해 결국 부르군트족이 멸망한다는 이야기입니다. 크림힐트는 사별 후 군터, 하겐과 연을 끊고 죽은 남편에 대한 추모와 복수의 일념으로 살아갑니다. 그런데 마침 도나우강변에 강력한 세력을 펼치고 있는 훈족의 왕 에첼이 왕비를 잃고 크림힐트에게 구혼합니다. 정숙한 크림힐트는 처음에 거절했지만, 강력한 훈족의 힘을 빌려 원수를 갚겠다는 희망을 품고 에첼의 청을 받아들입니다. 그녀는 복수심을 한시도 잊지 않고 지내다가 에첼 왕에게 요청해 부르군트의 일족을 초대합니다. 하겐은 흉계를 짐작하고 안 가려고 했지만, 비겁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죽음을 각오하고 군터 왕과 함께 길을 떠납니다.

하겐은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감지한 현실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군터 왕을 수행하며 에첼의 나라로 갑니다. 결국 부르군트와 에첼의 훈족, 두 종족 사이에 처참한 격전이 벌어집니다. 부르군트족으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군터 왕과 하겐 두 사람이었고, 에첼 왕 쪽은 장수 힐데브란트와 디트리히만이 남았습니다.

하겐은 힐데브란트에게 잡혀서 결박된 채 크림힐트 앞으로 끌려옵니다. 그녀는 하겐에게 니벨룽겐의 보물을 돌려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고 합니다. 하겐은 군터 왕이 생존하는 한 죽어도 그 보물의 위치를 알려줄 수 없다고 대답하죠. 그녀는 즉시 친 오빠인 군터 왕을 죽여서 그 목을 하겐에게 내밉니다. 부르군트족 최후의 용사가 된 하겐은 눈물을 머금고 그녀를 힐난하며 “그대는 너무나 지나친 일을 했소. 이제 부르군트의 왕과 왕족을 비롯하여 모든 중신이 죽었으니 그 보물의 위치를 아는 사람은 나와 신뿐이다. 그러나 나를 능지처참할지언정 그것을 그대에게 고하지 않겠다. 그러니 악마와 같은 여인이여, 그대는 영원히 보물을 못 찾으리라.”고 말합니다. 크림힐트는 격노해서 하겐이 차고 있던 지크프리트의 보검 발몽을 뽑아 그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드디어 25년 동안 쌓인 원한을 푼 것입니다. 하지만 복수를 위해 오라버니들마저도 죽음으로 몰아넣는 무자비한 행동을 저지른 것입니다. 그 광경을 목도한 힐데브란트는 그녀의 잔인무도한 복수에 분노하여 그녀의 목을 베어버립니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모두 죽음의 나라로 가버리고 2,379연의 장시는 끝이 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