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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는 잘 해요: 영어에서 ‘미안합니다’의 다양한 표현들

윤혜준_연세대 영문학과 교수

“사과는 잘해요.” 이 말은 2009년에 한국에서 발표된 한 장편 소설의 제목이다. ‘사과는’의 ‘는’이 암시하듯, 이 소설이 취하는 사과에 대한 입장이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모종의 ‘시설’에서 폭력과 비인간적 대우를 받으며 큰 인물들이 ‘사과 대행’을 생업으로 삼는다는 게 소설의 플롯이다. 소설이 아니더라도 한국 사회에서 대체로 내가 남에게 사과하고 용서를 비는 일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은 아닌 듯하다. 소설 <사과는 잘해요>가 강조하듯, ‘사과’는 주로 약자와 ‘을’들의 몫으로 강요되어 온 면이 있다. 두 손을 싹싹 비빌 때까지 ‘을’을 구타하는 ‘갑’들 밑에서 큰 필자와 같은 60대 이상 세대들은 특히 그러한 문화에서 자유롭기 어려울 수 있다. 사과를 강요하는 ‘갑’들은 부모, 교사, 선배, 군대의 선임자 등 그 배역을 바꿔가며 우리 모두를 온순한 ‘을’로 훈육하고자 하지 않았던가.

다른 한편 대한민국의 ‘갑’들은 사과로부터 자유롭다. 예를 들면 광적인 지지자들을 몰고 다니는 거물급 정치인들은 기껏해야 ‘유감’ 정도를 표명할지 몰라도 사과하는 법이 없다. 나라의 법과 상식적 도덕률을 어긴 혐의가 드러나도 이들은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는 뻔뻔함을 과시하거나, 아예 죄를 밝혀낸 쪽을 공격하거나, 심지어 피해자에게 책임을 덮어씌우는 적반하장이 일상화되어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힘없고 순진한 서민들 사이에서는 양심을 마비시키는 뻔뻔함의 바이러스가 그렇게 널리 퍼져 있지는 않은 듯하다.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같이 이용하는 서민들은 서로 약간의 불편함을 끼칠 경우 ‘미안합니다’, ‘죄송합니다’라고 말을 하지 않더라도 고개라도 꾸벅거리며 상대방에 대한 미안함을 표현하는 이들이 많다. 물론 상대방 어깨를 과감히 밀거나 등과 둔부를 무기로 삼아 남들을 공격한 후 자신이 설 자리를 확보하는 이들도 있기는 하다. 후자의 유형은 대개 나이가 든 쪽이고 전자는 젊은 쪽이 많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뻔뻔함을 ‘장년’과 ‘노년’의 특권으로 여기는 문화가 점차 쇠퇴할 가능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영어 이야기를 하려다 한국 이야기가 길어졌다. 그러나 영어가 한국어와 다른 점을 강조하는 효과는 있을 듯하다. 다른 서양 언어와 마찬가지로 영어에는 사과의 표현들이 많고 또한 그 쓰임새도 광범위하다. 정말 미안할 때가 아니더라도 내가 미안할 일이 아닌 경우에도 ‘미안합니다만’으로 운을 뗀다. 상대방이 우물우물하거나 발음이 이상해서 하는 말을 못 알아들었다. 이것이 내 탓인가, 아니면 상대방 탓인가? 대부분은 상대방 탓일 경우가 많다. 따라서 ‘뭐라고?’ ‘뭐라고 했어?’라고 다그칠 권리가 나에게 있음에도, 이런 경우 (갱단 단원이나 폭력배가 아닌) 대부분의 예의 바른 영어 사용자는 ‘Excuse me?’, ‘Sorry?’, ‘Pardon?’, ‘Pardon me?’, ‘I beg your pardon?’, ‘Can you please say that again?’ 등의 표현을 쓴다. ‘죄송합니다만, 다시 말해주시겠어요?’라는 뜻이다. 친한 친구 사이에서 (특히 미국인들은) ‘What’s that?’(뭐라고 했어?), ‘What?’(뭐라고?)이라고도 하지만, 영어를 외국어로 구사하는 사람들은 가급적 예의를 갖춘 표현을 쓰는 게 좋다.

위에 나열한 표현에 나오는 ‘excuse’(정상 참작), ‘pardon’(사면) 등은 상당한 도덕적, 법적 무게가 담겨 있는 말들이다. 나의 혐의를 인정하고 죄를 시인한 후에야 쓸 수 있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은 내 ‘죄’는 물론 그다지 크다고 할 수 없으나 상대방을 배려하고 높이는 뜻으로 그러한 말들을 사용한다. 내가 식당에 가서 내 돈 내고 음식을 주문하거나 추가로 다른 서비스를 요청하러 웨이터를 부를 때도 ‘Excuse me!’라고 하며 손을 흔드는 게 예의이다. 물론 내 ‘죄’가 명백할 경우에는 더욱더 ‘용서’를 빌어야 한다. 대중이 모여 있는 공간에서 상대방의 몸이나 들고 있는 물건을 할 수 없이 치게 될 경우에 ‘Sorry!’라는 말을 안 하면 ‘한 판 붙자’고 시비를 거는 꼴이 된다. 영국 영어에서는 ‘I’m so sorry!’(진짜 미안해요!), ‘I’m terribly sorry!’(엄청나게 미안해요!) 같은 표현도 자주 쓴다.

‘미안’을 뜻하는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sorry’다. 그런데 이 말의 쓰임새는 제법 넓다. 상대방에게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소식을 듣고서 만나서 동정과 연민을 전할 때 ‘I’m sorry to hear’, ‘I’m sorry that….’ 등의 표현을 쓴다. 우리말로 이 말들을 번역할 때 ‘참 안됐네,’ ‘얼마나 상심했어’인 상대방에게 초점이 집중되지만, 영어에서는 나의 공감에 방점이 찍힌다. 그 ‘방점’의 역할을 해주는 말이 ‘sorry’다. 상대방에게 언짢은 결과를 전할 때도 ‘I’m sorry to say….’라고 운을 뗀다. 상대방과 토론이나 논쟁을 할 경우에도 곧장 반박하는 대신 ‘I’m sorry, but I think….’ 같은 표현을 쓰곤 한다. 상대방의 행동에 제동을 걸 때에도 ‘Sorry, you can’t go in there’(미안하지만, 거기 들어가시면 안 됩니다.)라고 한다.

일상 언어에서 사과의 표현이 광범위하게 쓰이는 것이 영어권 문화의 특징이다. 그러나 영어권 국가들에서도 정치판에서는 사과를 거부하는 뻔뻔함이 급속히 퍼져가고 있다. 영국 총리 보리스 존슨(Boris Johnson)은 코비드(코로나) 기간, 철저한 방역을 한다며 전 국민을 집안에 꽁꽁 묶어둔 채 자신은 총리 관저에서 비서들과 즐겁게 파티를 벌인 일이 들통나자, 결국 수상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그는 2022년 7월 7일 다우닝 스트리트(Downing Street) 10번가 총리 관저에서 나와 고별 연설을 했다. 이 연설에서 그는 미안하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간 자기가 성취한 업적만 늘어놓고 들어갔다. 가장 사과에 근접한 표현은 ‘I regret’이었다. 우리말로 대개 ‘유감’이라고 번역하는 이 정치 수사는 문자 그대로는 ‘후회’를 뜻한다. 본인이 자리에서 물러가야 함을 아쉬워하고 원통해하는 감정이 담긴 말이다. 존슨은 실제로 연설 말미에 ‘how sad I am’이라고 했다. 수상 자리에서 물러나는 게 너무나 슬프다는 솔직한 고백이었다. 그는 끝까지 자신이 물러나게 된 원인인 소위 ‘파티게이트(Partygate)’에 대해서는 간접적으로도 시인하거나 사과하는 언급은 철저히 차단한 채 연설을 끝냈다. 사과의 문화가 배어 있는 영어의 종주국 영국에서도 최고위층 정치인들은 절대로 사과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있어도 사과하는 법은 없고 자신의 죄를 들춰낸 자들을 공격하는 ‘역공’에 능한 대한민국은 적어도 정치에 있어서는 영국과 같은 급의 선진국임이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