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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산책: 한국-쿠바 외교적 새 출발에 부쳐

임효상_경희대 스페인어과 교수

2024년 2월 14일에 한국과 쿠바는 공식적으로 외교 관계를 수립하였다. 우리나라가 오랫동안 수교를 위해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작스럽다는 단어가 적절한지 모르겠지만, 그날 늦은 시각에 한-쿠바 수교 소식이 전해졌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자세한 이유를 모르더라도, 쿠바의 경제 사정이 매우 절박한 상황이라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한국인들에게 쿠바의 이미지는 대부분 카스트로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 체 게바라, 고풍스러운 올드카, 시가 그리고 음악과 춤의 나라라는 것이다. 체 게바라가 외친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가슴 속에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는 명언은 많은 사람들이 자주 인용하고 외치던 구호이기도 하다.

그러나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의 무대가 쿠바였다는 사실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소설의 주인공 산티아고를 통해서 고독한 노인의 끈기와 투쟁, 인간의 존엄성을 작가는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스페인 팜플로나의 산 페르민 축제가 헤밍웨이 덕분에 유명해졌듯이 헤밍웨이는 1939년부터 20여 년간 아바나 외곽에 위치한 비카 데비아라는 저택에서 살았다. 많은 관광객이 헤밍웨이의 삶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찾는다고 한다. 7년간 묵었던 Ambos Mundos 호텔 511호, 그가 자주 칵테일 모히토를 마셨다는 카페 프로리디타(El Floridita) 등 <노인과 바다>의 어촌마을인 코히말이 대표적인 곳이다.

1959년 카스트로가 주도한 사회주의 혁명 이후 쿠바는 아직도 미국의 봉쇄정책에 고통받고 있다. 고위급 외교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미국이 아직도 조그마한 섬나라 쿠바를 이렇게까지 경제적으로 제재하면서 쿠바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한다. 오바마 정부 때 쿠바를 전격 방문해서 카스트로와 만난 역사적인 수교 현장의 사진은 아직은 미국과 쿠바 간에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올해 대선이 있는 시점이라 마이애미에 거주하고 있는 쿠바인들의 표에도 공화당이나 민주당 모두 신경을 써야 하므로 급격한 쿠바 관계 변화가 있을지는 아직은 미지수이다. 쿠바는 여전히 미국 정부의 테러지원국으로 지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이 힘든 사정이다. 사실 쿠바 경제에 있어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는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관광객들이 소비하고 가는 외화 수입을 쿠바 국민들에게 혜택을 주는 이중 화폐제도도 이제는 사라졌다고 한다. 배급제의 경제가 지속 가능한 시점이 이제는 한계점에 도달했다고 볼 수 있다. 65년 동안이나 이러한 고통을 감내하고 버텨온 쿠바 국민들의 자존심은 대단하다.

호세 마르티 문화원이 주최한 국제학술대회에 참석차 쿠바에 처음 갔을 때의 여정은 매우 길었다. 일본, 캐나다 토론토를 거쳐서 호세 마르티 국제 공항에 도착했을 때의 첫인상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중남미 국가들과는 달리 시간이 멈추어져 있는 도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이나 영화를 통해서 들었던 쿠바와 실제로 눈앞에 전개되는 풍경은 많은 차이가 있었다. 쿠바는 사회주의 혁명 이후 교육과 의료분야에 많은 투자를 하였다. 최근 수교 이후에 쿠바 인사들의 방한이 많아지고 있다. 우리는 쿠바에 대해서 책이나 직간접적으로 많이 알고 있지만 사실 쿠바의 문화와 정체성은 복잡하고 다층적인 요소들이 결합한 독특한 면을 가지고 있다. 콜럼버스가 쿠바에 도착했을 때 섬나라임을 알고도 대륙에 도착한 것처럼 기록한 점도 역사적으로 아이러니라고 할 수 있다.

많은 학자가 쿠바 문화를 언급할 때 혼종성을 강조한다. 스페인 식민주의와 노동력을 동원하기 위해서 아프리카 노예무역이 성행하였던 곳이다. 스페인과 아프리카의 문화와 전통이 쿠바 문화에 깊이 스며들었다. 환경적인 요소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 쿠바인들의 행복지수는 세계 보고서에 자주 실리지는 않지만, 독특한 사회 문화적 환경인 강한 공동체 의식과 복지와 교육 혜택 덕분에 그래도 개선되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쿠바의 Happy Planet Index(HPI)는 상대적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152개 국가 중에서 2016년에는 세계 6위까지 상승한 적이 있었고, 최근에는 12위로 약간 낮아졌지만 중남미 국가 중에서는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이다. 환경의 지속가능성이나 기대수명 같은 항목에서 높은 편이다. 그러나 객관적인 쿠바 국민들의 복지는 아직 선진국에 비해서는 높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사회주의 혁명 이후 종교는 억압받았지만, 아프리카의 요루바 신앙과 가톨릭 교리가 혼합된 산테리아(Santeria)와 같은 전통 신앙은 여전히 남겨져 있다고 한다. 쿠바 사회는 가족 중심적이며 공동체 의식이 매우 강하다. 사회주의 이데올로기와 무관할 수는 없지만, 통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교육과 의료 혜택이 무료로 제공되면서 사회적 평등이라는 가치가 매우 중요시되었다.

쿠바의 문화를 얘기할 때 우리는 춤과 음악을 들지 않을 수 없다. Buena Vista Social Club의 음악은 전 세계적으로 알려져 있고, ‘Son, 살사, 차차차, 볼레로’와 같은 다양한 장르가 있다. 거리 악사들의 연주 수준도 우리가 보기에는 전문 음악인이라고 볼 수 있을 정도이다. 쿠바인들에게 음악과 춤은 단순한 오락을 넘어서 일상생활과 사회적 상호작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쿠바 사회구조는 인종적 민족적 다양성이 특징이다. 유럽 출신의 백인과 아프리카계 흑인, 그리고 이들의 혼혈인 물라토(Mulato)로 구성되어 있다. 음악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는데 K-pop의 인기도 춤과 음악을 사랑하는 쿠바인들에게도 높다고 한다. ARTCO라는 한류 동호회 단체는 젊은 사람들 위주로 정기적인 모임을 가지고 있다고 하며, 인원도 쿠바 전역으로 네트워크가 있을 정도로 확산되어 있다고 한다. 초기에는 부모들의 시선이 별로 곱지는 않았지만, K-드라마가 인기가 있으면서 호의적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사회주의의 보이지 않는 통제는 있겠지만, 청년들의 희망과 요구사항은 당연히 개방화를 요구할 것이며 생활 수준이 향상되기를 모두 기대할 것이다. 한국의 경제발전 경험이나 민간 차원에서의 문화교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아직 음악과 춤을 좋아하는 쿠바인들의 삶의 방식에서 우리도 무엇인가 배우고 힐링할 수 있는 요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