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아주 조금 부끄러운 듯
김은희 작가
내게 아주 작고 귀여운 호기심이 있다. 그 혹은 그녀는 어디에서 왔을까? 머릿속으로 이름을 쭈우욱 나열해 본다. 미국에서 왔을까? 노르웨이에서 왔을까? 나이지리아에서 왔을까? 인도네시아에서 왔을까? 도저히 그 호기심을 못 이기면 쭈뼛쭈뼛 다가가 기어이 물어본다. “당신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당신은 어디에서 왔나요’도 아니고 ‘어디에서 왔을까요’라니. 나와 다른 사람들. 아니, 우리와 다른 사람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끼리도 기가 막히게 서로 다른데, 특별히 더욱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오감은 널을 뛰곤 한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시아인임이 틀림없다. 피부톤이 웅변처럼 그 사실을 전하고 있다. 그녀의 굵직굵직한 이목구비는 동아시아인이 아님을 증명한다. 반질반질한 피부도, 윤기가 잘잘 흐르는 머릿결도 아니다. 이주노동자일까? 결혼이주자일까? 아시아에 자리 잡고 있는 50여 개의 나라를 하나둘씩 지워나간다. 인도에서 왔을까? 파키스탄에서 왔을까? 방글라데시에서 왔을까? 베트남은 절대 아니다. 필리핀도 절대 아니다. 몽골도 절대 아니다.
나는 묻고야 말았다. 그녀는 네팔에서 온 여대생이었다. 하지만 네팔에서도 여대생이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부산의 한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다고 했다. 나는 어마어마한 수의 유학생에 종종 놀란다. 그렇게나 쉽지 않은 결정을 이렇게나 많은 젊은이가 해낸다는 사실에, 지난날의 나를 되돌아보지 않을 수 없다. 내가 만난 그들이 유독 용기가 그득한 것인지, 아니면 작금의 젊은이들에게 용기란 보편적인 미덕인 것인지. 아니면 그 대수롭지 않은 결정을 나만 홀로 대단하다고 여기는 것인지. 그녀는 한국을 아주 조심스럽게 칭찬했다. 높은 수준으로 발전한 나라라고 했다. 그녀는 내게 네팔을 아는지, 가본 적은 있는지, 어디가 가장 인상적이었는지 등등을 물었다. 가본 적이 있다고 했으며, 나아가, 부처님이 태어난 나라가 아니냐 되물었다. 나의 대답 겸 질문에 깜짝 놀란 그녀는, 대부분의 사람은 그 사실을 아예 모르거나, 얘기해줘도 인정하지 않는다고 했다. 대체 왜 부처님은 그렇게 애매한(?) 나라에 태어나셔서 많은 사람들을 헷갈리고 성가시게 하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녀는 네팔은 한국과 달리 대단히 자연적인 나라라 했으며, 또한 대단히 자연적인 나라라고 했다. 이것은 오타가 아니다. 그녀는 그렇게 연거푸 네팔의 자연을 반복했다. 마치 그것 말고는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그녀의 얼굴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역력했다. 그런 그녀를 보고 있자니 내 마음도 불편했다. 그럼 나는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거만한 척해야 하나.

최근 지인 일가족 5명이 6박 7일로 괌에 다녀왔다. 아이들은 일주일 만에 까만 콩처럼 변해서 돌아왔다. 학교에 가지 않아도 되었으니 얼마나 신이 났을까. 아이들은 각자의 버전으로 재잘재잘 괌 얘기를 들려주었다. 기내식으로 나온 스테이크가 맛있었다는 둥, 공항에 내리자마자 어마어마한 습도 때문에 숨이 턱 막혔다는 둥, 괌 사람들의 뚱뚱함은 상상을 초월한다는 둥, 음식이 얼마나 달고 느끼하든지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감자탕을 주문해서 먹었는데, 평소에는 입도 대지 않던 우거지와 시래기를 남김없이 먹어 치웠는데 그 맛이 꿀맛이었다는 둥, 한인마트에 한국 물건이 종류별로 다 갖춰져 있어 깜짝 놀랐다는 둥, 얘기는 끝날 줄을 몰랐다. 아이들이 들려준 얘기의 대부분은 상당 부분 예측이 가능한 내용들이었지만, 그래도 난생처음 듣는 것인 양했다. 거의 오스카상 감이었다. 지난가을부터 준비해 온 그들의 생애 첫 해외여행은 무사 귀환으로 끝을 맺었다. 그야말로 해피엔딩.
여행 준비기간 동안 내가 해 준 얘기는 딱 하나였다. ‘가기 전에 누구든 절대로 아프지 말 것.’ 큰 비용을 들여 떠나는 첫 해외여행인 만큼, 아픈 사람이 한 명이라도 생긴다면 정말이지 가장 이른 시간 안에 여행이 망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모두가 출발 전에 아픈 것을 끝냈다. 그들의 얘기를 곰곰이 듣고 있으니, 우주여행이 떠올랐다. 지구환경을 고스란히 이고 지고 나가 우주를 구경하고 오는 우주여행 말이다. 5인 가족이 똘똘 뭉쳐, 한국어를 줄곧 써가며, 한식당이랑 한인슈퍼에 들렀다 오는 여행 말이다. 하나 다른 점은 비행기를 타고 왔다 갔다 했다는 것 정도가 되겠다. 참고로, 그 가족은 요즈음 보기 드문 와글와글 다복한 가족이다. 괌이 아니라, 그 어디를 간다고 한들, 늘 입이 찢어지게 행복한 사람들이다. 그럴 바에야, ‘그냥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지 그랬어요’라고 누가 얘기한다면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의 말일 것이다. 여행의 본질은 세상 구경하는 재미가 아니던가. 나는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괌에는 한국에는 없는 뭔가가 있지 않겠는가. 그것도 잔뜩.

한 SNS에서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하는 식당과 대표 음식을 소개하고 있었는데, 누군가의 댓글이 그만 눈에 콱하고 박혀버렸다. ‘그렇게 보기 좋은 음식은 관광객을 겨냥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냥 손님과 관광객은 무엇이 다른가. 나는 부산에서는 손님이었고, 이집트에서는 관광객이었단 말인가. 이건 뭔가 좀 씁쓸하다. 나는 관광객이 아니라, 어디서든 손님이 되고 싶었나 보다. 일로 알게 된 한 태국 여대생이 한국에 온 이상, 자기는 꿀떡을 꼭 먹어봐야겠다고 했다. 대체 그 꿀떡이 뭐길래. 한국인인 나는 꿀떡을 도저히 모르겠기에, 사진을 보여 달라고 했다. 단맛의 소가 들어간, 송편보다 알이 작은 알록달록 바람떡을 그들은 꿀떡이라 불렀다. 나는 꿀떡을 찾아 떡집을 헤맸고, 마침내 그녀 앞에 꿀떡을 대령했다. 며칠 전, 인터넷에서 재미난 글을 읽었다. 요즈음 외국인들 사이에서 유행 중인 음식이 하나 있는데, 바로 꿀떡에다 우유를 말아 먹는 것이라고 했다. 그사이 유행이 달라져 있어 깜짝 놀랐다. 꿀떡에 우유라니. 유행은 생물처럼 쑥쑥 자라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꿀떡과 동시에 읽어버린 포스팅이 하나 더 있었는데, 태국에서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한 한국인의 글이 마음에 찬물을 끼얹었다. 글은 태국에서 괜찮은 직원을 구하는 일의 어려움에 관한 고발 겸 호소였다. 직원 1명을 뽑는데, 서류 제출자는 50명, 이중 10명을 면접 보고, 그중 1명에게 합격과 동시에 출근을 안내하면, 매우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출근을 약속하지만, 막상 당일에 정상 출근하는 이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늘 최종 합격자를 1명이 아닌 2명을 뽑는다고 했다. 어차피 1명만 나타나거나, 운이 나쁘면, 둘 다 나타나지 않을 확률도 상당히 높기 때문이라 했다. 댓글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개인 사업을 하는 또 다른 한국인들도 있었는데, 깊은 공감과 동시에 동일한 분노를 터트렸다. 글을 읽는 내내, 내게 꿀떡을 먹고 싶다고 얘기하던 태국 여대생의 얼굴이 떠올랐다. 혹자는 세상이 긴밀하게 연결된 탓에 몰라도 될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인간의 보편적인 행태를 확인한 것도 소득이라면 소득이다. 대한민국에서 열에 아홉은 중소기업이고, 이들 중소기업에서 흔히 벌어지는 구직 풍경이다. 태국이나 베트남 젊은이들은 그러지 않을 줄 알았다면, 글쎄다. 이제는 그 생각도 고쳐먹어야 할 것 같다.

양복 입은 여행자는 없다. 하지만 이제는 여행자들의 스펙트럼이 대단히 넓어졌다. 하루, 혹은 한 달, 혹은 일 년, 혹은 십 년을 머무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다. ‘여행하고 있음’과 ‘살아가고 있음’의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나는 부산의 원주민인가. 아니다. 나는 부산의 선주민일 따름이다. 나의 부모의 부모의 부모가 아주 오래전에 이 땅에 터전을 닦은 탓에, 뿌리 내리기가 한결 수월했다. 나도 타국으로 간다면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러니 네팔에서 온 그녀는 내게 부끄러울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내가 잘난 척 할 이유도 없다. 그녀가 부산에서 학업을 마치고 네팔로 돌아가거나, 혹은 한국에서 뿌리를 내리거나, 뭐가 되었건 현재 그녀는 부산 사람이다. 그러니 나는 그녀를 응원할 것이다. 동시대인으로써. 선주민으로써. 또한 시행착오를 거듭하며 흑역사를 써 내려가고 있는 아시아 각국의 청춘들도 응원할 것이다. 한국 기업의 최종 면접에 합격한 타국의 젊은이들이 한 명도 빠짐없이 신나게 출근하는 그날까지 응원할 것이다. 꿈같은 바람이지만, 그런 게 또 세상 구경하는 맛 아니겠는가. 어차피 뒤엉켜 살아가야 할 팔자라면, 하루라도 먼저 사이좋게 지내는 편이 상책이다. 그러니 나 포함, 우리 모두에게 행운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