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에서 박물관으로
이난아_한국외대 튀르키예‧아제르바이잔학과 교수
많은 이론가와 문학 전문가들은 소설이 예전과 같은 매력적인 장르로 군림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진단하기도 한다. 한때 순수 소설은 문학 장르의 대표 주자로서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했지만, 이제 자기 계발서나 판타지 장르에 그 자리를 내놓고 있는 것만 봐도 실감할 수 있는 현상이다. 이에는 어쩌면 정보화시대의 도래(예컨대 포스트나 블로그를 통해 자기 생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등), 영상문화의 발전에 따른 외부적인 요소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문학 내부적인 문제에 대해 눈을 돌려 그 해결책을 찾는 것도 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권위 즉, 국가, 사회 가족 등이 해체되는 작금에서 과거와 같은 문학 형태를 고수하는 것이 시대적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이러한 현실에서 작가들은 이에 대한 돌파구를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으며, 서로 다른 예술 장르 간의 크로스 오버 혹은 장르 파괴 등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튀르키예 문학사상 최초로 2006년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르한 파묵(Orhan Pamuk, 1952~)은 현재까지 다른 작품들에서도 장르 파괴 시도를 한 바 있다. 일례로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소설과 세밀화, 『눈』에서는 소설과 연극, 『빨강 머리 여인』에서는 소설과 신화의 크로스오버 등을 들 수 있다.

파묵이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처음으로 발표한 소설 『순수 박물관』(2008)에서는 세계 문학사에서 최초로 ‘허구’가 ‘실제’로 변모하는, 즉 소설을 현실 속으로 끌어낸 문화 콘텐츠 적 시도를 보여준다. 이처럼 실제 박물관으로의 전환은 문학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이는 세계 문단에서 그 유례가 없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자신의 인생을 지배한 연인에 대한 기억의 보관 장소로 ‘박물관’을 세우는 남자의 이야기이다. 다른 말로 하면, 『순수 박물관』은 순수하고 열정적인 사랑에 대한 기억과 그 사랑을 영원히 기억하고자 그녀와 관련된 물건들을 모아 박물관을 세우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을 통해 그녀를 영원히 기억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며, 오르한 파묵이 실제로 소설의 배경이 된 장소에 세운 박물관의 이름이기도 하다. 박물관은 케말이 경험한 사랑의 증거이자 기록이며, 불멸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순수 박물관』이 기존의 문학박물관과 구별되는 점은 작가가 작품을 집필하면서 박물관을 지을 건물을 구입해 소설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을 수집했다는 사실이다. 즉, 작품의 구상 단계부터 박물관 건립이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순수 박물관> 앞에서 필자
파묵은 소설 속 이야기를 집요하게 전개하면서, 한편으로는 독자의 주의를 끌기 위해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과 연결하여 서술하고 있다. 이러한 구성은 독자들을 소설 속 이야기의 일부로 참여시킨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독자들이 마치 소설을 들고 박물관을 돌아다니는 느낌을 주는 효과를 내는 것이다. 이렇듯 『순수 박물관』은 소설이자 박물관의 카탈로그라는 이중의 역할을 수행하면서도, 소설을 쓰는 동시에 박물관을 세운 것인지 아니면 소설을 다 쓴 후에 박물관을 세운 것인지에 대한 모호한 의문을 품게 만들기도 한다.
『순수 박물관』에 수집되어 전시된 물건들은 케말과 퓌순의 짧지만 깊은 사랑에 대한 기억과 추억을 담고 있을 뿐만 아니라, 당시 튀르키예 이스탄불의 부유층을 비롯한 다양한 사람들이 공유했던 기억도 내재되어 있다. 『이스탄불-도시 그리고 추억』 등의 작품을 통해 과거의 기억에 집요하게 매달렸던 파묵은 어쩌면 『순수 박물관』에서는 그러한 기억의 수집품들을 모아 재구성하여 소설을 쓴 것일 수도 있다. 이는 마치 소설 속 케말이 퓌순에 대한 기억을 바탕으로 박물관을 만들고, 그 과거를 현존하는 실재 박물관으로 탈바꿈시켜 영원불멸이라는 새로운 생명체로 만들어낸 것과 같다. 소설에서도 자주 언급되듯이, 박물관은 한정된 순간들의 추억을 공간에 가두어 그 시간의 끝을 영원토록 연장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장소이다. 케말 역시 퓌순과 공유했거나 퓌순의 체취가 묻은 물건들을 모아 박물관에 전시함으로써, 그녀와 함께 있지 않는 순간에도 그들의 추억은 박물관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며, 그들의 사랑 역시 그 물건들을 통해 우리에게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순수 박물관> 내부에서 오르한 파묵
또한 소설 『순수 박물관』은 단순히 읽는 행위를 넘어 과거를 눈앞에 복원함과 동시에 박물관에 전시된 물건들을 일일이 세세하게 설명하는 ‘카탈로그 소설’이라고 명명할 수 있는 새로운 문학 장르 개척에 공헌했다는 점에서도 그 의의가 있다. 더불어, 문자매체보다 영상매체의 선호도가 높아진 현대 사회에서 대중과의 소통을 꾀하는 일환으로 문학을 ‘읽는 것’에서 ‘보여주기’로의 확장하려는 시도를 나타낸다. 즉, ‘읽는 예술’이 ‘보는 문화’로 전이된 대표적인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