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의 기원
강인욱_경희대 사학과 교수
AI 시대에 더욱 빛나는 한국어의 가치
“한국어는 어디서 왔을까?” 아마 한국인뿐 아니라 한국에 관심 있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떠올려본 질문일 것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그 기원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말로서의 한국어, 그 뿌리와 형성 과정은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조금 나이가 있는 세대라면 국어 시간에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최근에는 언어학, 고고학, 유전학을 아우르는 다양한 접근이 시도되고 있지만, 결정적인 단서는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영원한 미스터리, 한국어의 기원
오랫동안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고 여겨져 왔다. 이 개념은 19세기 핀란드 학자들에 의해 제안된 것으로, 교착어 적 성질(문법적 관계가 접사로 나타나는 것)을 공유하는 언어군에 속한다는 가설이었다. 그러나 기본 어휘(숫자, 친족 명칭 등) 차원에서 명확한 대응 관계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트랜스유라시아어족’이라는 새로운 이론이 제기되며, 한국어를 몽골어, 일본어, 퉁구스어 등과 함께 묶는 시도도 있지만 여전히 학계의 합의는 요원하다. 그 이유는 한반도의 지리적 특수성에 있다. 이곳은 수천 년 동안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교차하는 통로였다. 삼국시대 이후 한문이 유입되었고, 근현대에는 일본어, 영어의 영향도 강하게 들어왔다. 따라서 ‘순수한 한국어’라는 개념은 본래부터 성립하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게다가 한국어의 기원을 보여줄 직접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대부분의 옛 문헌은 한문으로 기록되었으며, 고유어는 음차로만 전해진다. 주변 민족의 언어도 대부분 사라져 비교할 수 있는 대상이 부족하다. 그나마 고고학적 연구는 일정한 힌트를 제공한다. 동북아시아는 약 1만 5천 년 전부터 토기를 사용한 세계 최초의 지역 중 하나다. 후기 구석기부터 신석기까지 비교적 고립된 상태에서 독자적인 문화를 형성했고, 언어도 상당히 분화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동안 제대로 된 연구가 없이 막연하게 한국어의 다른 나라의 언어를 연결하는 경우가 있었다. 수메르어, 타밀어, 심지어 동남아시아 언어들과의 유사성까지 언급하지만, 현재로서는 인간 언어의 보편성이나 우연의 일치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약 9,000년 전 랴오시 지역에서 기원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AI 시대, 한국어의 기원을 다시 생각하다
최근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언어 기원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열고 있다. 예전에는 수작업으로 비교하던 언어 자료를 AI가 방대한 데이터 속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일이 가능해졌다. 세계 여러 지역의 고문헌, 음성 자료, 문법 구조 등을 AI가 분석하면서 과거보다 정교한 비교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순수한 언어’라는 개념은 등장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AI는 언어가 본질적으로 혼종적이고 유동적인 존재라는 점을 재확인해 준다. 한국어 역시 그런 유동성과 개방성 속에서 성장해 온 언어다. 지금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단순히 “한국어는 어디서 왔는가?”가 아니라 “한국어는 앞으로, 어디로 가는가?”이다. AI 번역기, 음성인식, 자연어 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한국어의 쓰임과 모습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고립된 순수 언어가 아니라 열린, 변화하는 언어로서 한국어의 가능성을 새롭게 바라볼 때다.
디지털 시대, 한자 문화의 한계와 한국어의 기회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면서 문자사용 방식에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자 필기 능력이 급속히 약화되고 있다. ‘펜을 들면 글자가 생각나지 않는다(提笔忘字)’는 말이 보편화되었고, 메신저에서는 텍스트 대신 음성 메시지로 소통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심지어 일부 젊은 층은 한자를 직접 써본 경험이 거의 없다는 조사도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훈민정음이라는 뛰어난 음소문자 체계 덕분에 문자사용이 여전히 활발하다. 메신저에서도 음성보다 텍스트 입력이 압도적이며, AI 음성 인식과 자연어 처리에서도 한글의 단순성과 정합성이 큰 장점을 제공한다. 이는 디지털 환경에서 한국어가 정보화와 기술 친화적인 언어로서 강점을 발휘할 수 있는 이유다.

언어의 미래, 한국어의 가능성
이러한 변화는 더 큰 맥락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현재 세계는 영어로 대표되는 인도-유럽어가 세계의 절반을 차지하며 영향력도 엄청나다. 단순한 서구의 패권 때문만은 아니다. 표음문자를 사용하고, 기술과 관련된 어휘가 서로 유사해 학습이 비교적 용이하다는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점은 중국어와 비교하면 더욱 분명하다. 중국어 사용자는 15억 명을 넘지만, 확장성은 제한적이다. 갑골문자에서 이어진 상형문자를 그대로 발전시킨 한자는 접근성과 학습 효율에서 불리하다. 현재 한중일을 제외하면 한자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나라는 거의 없고, 화교를 제외하면 다른 나라에서 한자 사용자는 극소수다. 게다가 디지털 환경에서는 한자가 살아남기 힘들다. 중국에서는 메신저에서조차 점점 음성 전송으로 대체되고 있으며, 젊은 층은 한자 자체를 거의 쓰지 않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AI 시대에 더욱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 세대만 지나면 한자 필기는 자연스러운 소멸의 길을 걷게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이는 문자 문명이라는 차원에서 중국 사회에 큰 도전이 될 수 있다.
반면 인도-유럽어는 알파벳의 단순성과 정보화 친화성 덕분에 앞으로도 그 지위를 공고히 유지할 것이다. 그런데 한국어 역시 이에 못지않은 장점을 지니고 있다. 훈민정음은 인도-유럽어가 가진 표음문자의 장점과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의 문화적 깊이를 함께 가진 독특한 문자 체계다. 최근 K-문화의 세계적 확산과 함께 한국어를 배우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빠르게 늘고 있다. 한때 J-pop, 중국 문화도 세계적으로 유행했지만, 글자 자체가 글로벌하게 확산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그에 비해 한글은 배우기 쉽고, 정보화에 적합하며, 문화적 매력까지 갖춘 문자로 주목받고 있다. 빠르게 디지털 인터페이스가 변하는 시대, 문자는 단순한 전통의 유물이 아니라 정보를 다루는 효율적 도구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수천 년간 효율성과 기술을 기반으로 세계를 정복했던 영어의 성공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표음문자의 장점과 동아시아 문화적 깊이를 함께 품은 한국어와 한글의 미래 가능성 또한 우리가 새롭게 주목해야 할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