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줌파 라히리의 《일시적인 문제》에 나타난 인도 음식 문화

이강선_성균관대 교양학부 교수

줌파 라히리(Jhumpa Lahiri, 1967년 ~)는 인도계 미국 작가로, 이민자들의 삶과 정체성 혼란을 섬세하게 포착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녀의 본명은 ‘닐란자나 수데슈나이’지만, ‘빛’을 뜻하는 벵골어 이름인 ‘줌파(Jhumpa)’로 더 잘 알려져 있다. 그녀가 내놓은 첫 단편집인 『질병 통역가(Interpreter of Maladies, 1999)』에 실린 첫 작품이 「일시적인 문제」이다. 작품은 짧지만 이 작품 속에는 여러 가지 인도 음식과 인도 문화가 등장한다. 지극히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기에 눈여겨보지 않으면 지나치기 일쑤이지만, 사실 음식과 관례는 인물들이 인도인임을 보여주는 대단히 강력한 근거다. 이 음식과 관례가 그들의 정체성을 잊지 않도록 하는 라히리만의 ‘빛’이 아닐까.

소설은 쇼바가 일과에서 돌아오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녀는 아파트로 들어오면서 공지를 읽는다. 보스턴의 눈 폭풍으로 인해 전깃줄에 문제가 생겨 수리를 요하기에 약 5일간 일시적으로 정전이 된다는 사실을 알리는 공지다. 이것이 바로 제목인 ‘일시적인 문제’가 된다. 주인공들의 문제도 일시적일까? 젊은 남편, 슈쿠마르는 늦게 돌아오는 아내, 쇼바를 위해 로간 조쉬(rogan josh)를 만들어놓았다. 로간 조쉬는 산악 지역인 카슈미르의 음식으로, 양고기에 강렬한 붉은 색이 특징인 향신료를 사용한다. 이미 그는 요리를 마쳤고, 아내에게서 배운 대로 손에 밴 양파 냄새를 없애기 위해 레몬을 문지른다. 로간 조쉬에 양파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카슈미르의 브라만이 아니라는 표시다. 원래 로간 조쉬는 카슈미르 무슬림의 전통 만찬인 와즈완(Wazwan)의 필수 코스 중 하나로 지역 정체성을 담은 요리인데, 양파와 마늘을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슈쿠마르는 양파를 사용하는 데 이 사실은 무슬림이 아니며 다른 지역 출신임을 의미한다.

또 다른 커리 음식은 슈림프 말라이(shrimp malai)다. 슈쿠마르가 쇼바를 위로하기 위해 만들려고 하는 이 슈림프 말라이는 벵골 지역의 특징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벵골은 바다와 강이 풍부하여 예로부터 생선과 새우를 주재료로 사용했다. 한편, ‘말라이(크림)’라는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코코넛 밀크를 활용한 부드러운 맛이 특징이다. 이 슈림프 말라이는 향신료 사용이 주를 이루는 북인도와 구별되는, 벵골 지역의 독특한 식자재 환경을 대변한다.

이런 음식들을 만들면서 슈쿠마르는 아내가 적어 두었던 요리법을 참고한다. 아내 쇼바는 요리 노트에 적은 각 요리에 먹은 날짜와 더불어 자신의 비법을 적어놓았다. 커리안더 씨앗을 한 스푼 대신에 두 스푼 넣는다거나 회향을 넣은 콜리플라워 등의 요리법이다. 회향 씨앗은 콜리플라워가 들어가는 인도 커리나 마살라 요리에 다른 향신료와 함께 사용되기도 한다. 회향을 넣으면 콜리플라워 맛이 달라진다. 콜리플라워는 단맛이 살짝 나지만 맛이 약해서, 달콤하면서도 상쾌한 회양의 맛을 흡수한다. 요리 전체가 달콤하고 따뜻하며 미묘하게 이국적인 풍미가 있게 되는 것이다.

한편 ‘아몬드와 술타나 건포도를 넣은 닭고기’라는 요리 또한 그들만의 맛을 갖고 있다. 이 요리 자체가 독특한 것은 아니지만, 술타나 건포도라는 재료가 출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술타나 건포도는 적색의 일반 건포도가 아닌 황금색 건포도로, 오스만 제국의 수출품이었다. 아몬드, 건포도, 크림을 사용하여 부드럽고 풍부한 맛을 내는 요리 방식은 무굴 제국 시대에 번성했던 궁중 요리 스타일에서 유래했다. 무굴 제국의 통치 계층은 페르시아와 중앙아시아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견과류와 건과일을 향신료가 들어간 고기 요리에 사용하는 것을 선호했다. 흔한 요리라고 해도 향신료와 요리 방법에 따라 그들의 출신지가 잘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슈쿠마르는 가르치는 일을 그만두고 논문을 마치겠다고 집에 있다. 이제 집에 있기에 그가 요리하는 것이다. 6개월 전 그들의 아이가 죽었다. 쇼바가 죽은 아이를 낳던 때 슈쿠마르는 콘퍼런스에 참석하느라 쇼바의 옆에 없었다. 이후로 이들의 사이는 점점 멀어졌고 이제 슈쿠마르는 논문을 쓰고 있지만 좀처럼 진전되지 않는다. 그들의 사이가 아직 괜찮았을 때 아들을 방문한 슈쿠마르의 어머니는 손님방에 일종의 제단을 마련해 놓았다. 제단에는 보랏빛 얼굴을 한 여신이 있다. 어머니가 하루에 두 번씩 건강한 손주를 낳아달라고 비는 이 여신은 양육, 풍요, 다산을 상징하는 바라히 암만(Varahi Amman) 여신이다. 슈쿠마르의 어머니는 아들 내외보다 한결 더 자신의 문화에 가까이 있는 것이다. 슈쿠마르의 어머니와 아들 내외의 차이는 이민자들이 세대를 거듭할수록 융화되어 가는 과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작품 중 인도 문화가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임신한 쇼바가 안나 프라샨을 떠올릴 때이다. 안나 프라샨은 아이가 6개월 혹은 7개월(여자아이인 경우) 되었을 때 행하는 의식이다. 첫 고형식을 먹는 일을 기념하기 위한 이 의식은 아이의 생존을 축하하는 의미도 가진다. 고대부터 현대까지 유아 사망률이 가장 높았던 시기(6개월~1년)를 벗어났을 때 치러지기 때문이다. 모유에만 의존하다가 이제는 고형식을 소화할 수 있는 강한 생명력을 갖게 되었음을 공동체 앞에서 증명하고 축하하는 것이다.

쌀을 의미하는 안나는 인도 문화권에서 생명, 풍요, 주식을 상징한다. 아기가 쌀을 받아들이는 행위는 가족과 공동체의 식량 시스템에 완전히 편입되어 생명을 유지할 준비가 되었음을 의미하며, 미래의 삶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했음을 선포하는 행위이다. 이 의식에는 친척과 친구들이 참석하며, 아기에게 첫 숟가락을 떠먹이는 사람은 아기의 인생에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으로서 공식적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는 아기가 개인(부부)의 소유가 아닌 대가족과 공동체의 일원으로 공식 편입되었음을 시사한다.

또 아기 앞에 책, 돈, 흙 등 여러 물건을 놓고 아기가 무엇을 먼저 잡는지 보는 미래 직업 예언 의식을 치르기도 한다. 이는 부모가 아이의 건강한 생존을 넘어 미래의 행복과 성공까지 염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쇼바 자신도 어렸을 때 경험했을 이 의식은 쇼바가 자신의 세 오빠가 안나 프라샨을 행할 때 손님 명단을 작성했기에 극히 자연스러운 일로, 그들의 민족 정체성을 이어 나갈 방법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쇼바는 아기를 사산하기에 이 의식은 끝내 치르지 못한다. 결국 사산은 이들이 헤어지는 주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소설에 나오는 다양한 음식과 관례는 고향을 떠나서도 사라지지 않는 민족의 문화이며 한편으로 정체성을 이어가는 방법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