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구기의 언어 선택
박정경_한국외대 아프리카학부 교수
지난 5월 28일 케냐 출신 작가 응구기 와 시옹오(Ngugi wa Thiong’o)가 미국 조지아주 뷰퍼드에서 87세로 생을 마감했다. 응구기는 치누아 아체베(Chinua Achebe), 월레 소잉카(Wole Soyinka) 등과 더불어 아프리카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1세대 거장으로 여겨지며, 로터스 문학상, 노니노 국제 문학상, 미국 비평가협회상 등등 권위 있는 문학상을 다수 수상했고, 최근 십여 년간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었다. 아프리카 문학사에 길이 남을 소설, 희곡, 평론 등의 작품을 남기면서, 그가 일생을 바쳐 노력한 과업은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을 장려하는 것이었다.

응구기가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작가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계기는 1964년에 출간된 그의 첫 영어 소설 “울지마, 아이야” (Weep Not, Child)가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후에도 그는 영어로 쓰인 작품을 발표함으로써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으나, 기쿠유어(Gikuyu) 희곡 “결혼하고 싶을 때 결혼해요” (Ngaahika Ndeenda)를 필두로 1970년대 말부터 자신의 모어(mother tongue)인 기쿠유어로만 창작 활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아프리카 현대문학에서 언어 선택의 문제는 지금까지도 치열한 논쟁이 이어지고 있는 이슈다. 나이지리아의 비평가 오비 왈리(Obi Wali)는 “아프리카 문학의 막다른 끝” (The Dead End of African Literature, 1963)이라는 평론에서 아프리카 토착어 문학의 활성화 없이 진정한 의미의 아프리카 문학 발전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프리카 작가들이 영어나 프랑스어 같은 식민 종주국 언어를 버리고 아프리카 토착어로 작품을 창작할 것을 촉구했다. 일부 아프리카 작가들은 아프리카 국가의 다민족·다언어 상황에서 식민 종주국 언어를 매개로 한 창작 활동이 불가피한 선택임을 지적하지만, 많은 아프리카의 지식인이 문학을 통한 아프리카 토착어 진흥의 의의에 공감하고 있으며, 응구기는 선두에서 아프리카 토착어 글쓰기를 주도했다.

응구기가 아프리카 토착어 글쓰기에 열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것이 아프리카가 식민 통치의 망령에서 벗어나는 길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국가가 정치적으로 독립한 이후에도 식민 종주국의 언어가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아프리카가 아직 유럽의 식민 통치로부터 완전히 탈피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과거 식민주의자들은 아프리카 식민 통치를 정당화하기 위해 미개하고 야만적인 원시 아프리카 사회의 열등한 족속들을 근대화된 유럽 국가의 식민 지배를 통해 문명의 빛으로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이 과정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는 야만인의 지껄임 정도로 비하되고, 식민 종주국의 언어는 문명, 발전, 지식의 언어로 격상되어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교육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식민지 시대의 논리가 독립 이후 아프리카 사회에도 만연해 있다.
현재에도 아프리카 사회에서 성공과 출세를 위해 식민 종주국 언어 구사 능력이 필수 요건처럼 되어 버렸고, 학교, 직장, 관청 등의 공적인 의사소통에서 아프리카 토착어로 말하는 것은 부적절한 행위처럼 여겨진다. 여전히 아프리카인이 자국의 토착어를 수치스러워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아프리카인이 자국 고유문화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첫걸음은 아프리카 토착어 사용을 활성화하는 것이다. 응구기는 『정신의 탈식민지화: 아프리카 문학에서 언어의 정치학』 (Decolonizing the Mind: The Politics of Language in African Literature, 1986)이라는 책에서 “나는 케냐의 언어이자 아프리카의 언어인 기쿠유어로 글 쓰는 것이 케냐와 아프리카 민족들의 반제국주의 투쟁의 일부라고 믿는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응구기가 창작의 언어로 아프리카 토착어를 선택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자신이 어떤 독자층을 대상으로 작품을 쓸 것인가에 대한 고려와도 연계되어 있다. ‘영어권 아프리카,’ ‘프랑스어권 아프리카’ 등의 용어가 일반적으로 쓰이지만, 실상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 종주국 언어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계층은 고등교육을 받은 소수의 상류계층이다. 대개 아프리카의 일반 대중은 식민 종주국 언어로 기본적인 의사소통 정도를 할 수 있지만, 일상생활에서는 아프리카 토착어를 주로 쓴다. 아프리카 국가에서 식민 종주국 언어는 권력의 언어다. 그래서 아프리카에서 식민 종주국 언어 사용은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고 있다. 영어나 프랑스어를 잘해야만 정치, 경제, 교육, 문화 등 사회 각 분야의 주역으로 행세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권력의 언어를 잘 구사하지 못하는 대다수 일반 대중은 주변화될 수밖에 없다. 응구기는 『정치 체제 속의 작가』 (Writers in Politics, 1981)에서 “언어 선택은 이미 문학 작품의 작가에게 가장 중요한 질문의 답을 미리 결정한다. 누구를 위해서 쓸 것인가? 누가 나의 독자인가?… 케냐 작가가 영어로 글을 쓴다면 그 내용이 아무리 극단적이라 할지라도 케냐의 노동자와 농민에게 다가가거나 직접 말할 수 없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작품의 독자를 케냐의 일반 대중으로 설정하고, 그들에게 가장 친숙한 아프리카 토착어로 작품을 쓰기로 한 것이다.
아프리카의 진정한 탈식민화는 언어 문제에 대한 해결 없이는 요원하다. 아프리카 토착어의 언어 지위가 격하되고, 식민 종주국 언어가 권력의 언어인 현실이 지속된다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정신적 식민 상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아프리카인이 식민주의자가 의도적으로 주입한 열등감을 극복하고 다시금 인간존엄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토착어의 진흥이 필수적이다. 그래서 응구기가 내걸었던 아프리카 토착어를 매개로 한 문학 창작의 기치는 후속 세대 작가들에 의해서도 계속 이어져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