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파벨라
이승용_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 교수
브라질은 우리나라보다 85배가 더 큰 나라다. 동서와 남북의 거리가 각각 4,300k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거리는 서울에서 싱가포르 근처까지 갈 수 있는 거리고, 대부분의 동남아 국가까지의 거리는 이보다 짧다. 우리가 동남아로 해외 여행가는 거리가 브라질에서는 국내선 거리일 뿐이니 이 나라가 얼마나 큰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나라의 크기가 거의 대륙급이다 보니 브라질 사회는 다채로움 그 자체다. 아마존 지역에 원시 부족이 있는가 하면 21세기 하이테크로 무장한 최첨단 도시까지 한 나라에 함께 공존하는 곳이 브라질이다.
브라질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로 삼바, 축구, 커피, 해변 그리고 유쾌한 사람들과 같은 밝은 모습들도 있지만, 불안한 치안과 심각한 수준의 빈부격차와 같은 어두운 모습도 함께 따라온다. 통계에 따르면 브라질은 중남미 국가 중에서도 콜롬비아 다음으로 가장 빈부격차가 심한 나라로 분류된다. 브라질에서 빈부격차, 사회적 불평등, 소외 등을 상징적으로 대변하는 곳이 있는데 바로 파벨라(favela)다. 파벨라는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빈민촌을 의미하며, 우리나라의 산동네나 달동네와 비슷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리우데자네이루 파벨라 호씨냐(Rocinha)
파벨라는 역사적으로 19세기 말 Canudos 전쟁에서 복귀한 퇴역 군인들이 급여를 받지 못하자 리우데자네이루의 언덕 지역에 무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이유로 브라질 파벨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고 제일 많이 알려진 곳이 바로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다. 파벨라라는 말은 이 거주지에 자생했던 나무 이름으로부터 유래했고, 지금은 도시지역 빈민촌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다. 현재 우리가 아는 파벨라의 모습은 20세기 브라질이 급속한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마땅한 거처가 없이 도시로 몰린 농촌과 지방 출신 노동자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서 만들어지게 되었다. 최근 인구 통계자료에 따르면 브라질 인구의 약 8% 정도인 1,640만 명이 파벨라에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또한 파벨라 내부에서 일어나는 경제활동이 대부분 세금 없이 순환하는데, 이런 비공식적인 경제활동이 브라질 GDP의 1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규모가 크다.
파벨라는 제도권에서 제공하지 못하는 여러 가지 기능을 자체적으로 하면서 상대적으로 부유한 도시민과 농촌에서 유입되는 저임금 노동자들 사이에 완충지대 역할도 하고 있다. 도시는 저임금 기초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지만, 이들을 위한 값싼 주거 인프라를 제공해 주지는 않는다. 하지만 파벨라는 도시가 원하는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도시가 제공하지 못하는 주거 환경을 해결해 주는 대안적 역할도 하고 있다.

파벨라 패키지 투어
파벨라는 퇴역 군인들의 무단 거주로부터 시작했었기 때문에 태생적으로 제도권과는 거리가 먼 공간이었다. 요즘은 많은 파벨라 지역에 공권력이 들어가 치안을 유지하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일부 지역에서는 공권력이 제한적인 곳이 있다. 특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 북쪽은 지금도 제도권과 공권력 밖에 있다. 무허가, 무단 점유가 일상인 지역이기 때문에 거주민들의 재산권은 법적인 보호를 거의 받지 못하고 있으며, 폭력 조직과 자치 조직 중심으로 비공식적인 거버넌스가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비공식 정착 주민들이 일정 조건에 장기 점유지를 공식적인 재산으로 전환할 수 있는 법적인 장치는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내·외부적인 요인으로 인해 활성화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에서도 2005년 개봉한 ‘신의 도시(Cidade de deus, 2002)’는 마약과 각종 범죄가 난무하고 희망마저 없는 파벨라의 모습을 현실적으로 그린 영화로, 우리가 간접적으로나마 그곳이 어떤 곳인가를 볼 수 있게 해준다. 간혹 브라질 여행을 가는 사람 중 특히 리우데자네이루의 파벨라에 가보고자 하는 분들이 있는데 낮이나 밤이나 혼자서 그곳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좋다. 파벨라 거주민들끼리는 강한 연대감이 있다 보니, 아무래도 낯선 외부인들을 경계하므로 그들은 범죄의 대상이 되기 쉽다. 그래도 꼭 파벨라를 보고 싶다면 파벨라와 연계하여 패키지로 제공하는 현지 투어가 있으니 이 패키지를 이용하기 바란다.

파벨라 언덕 아래서 위까지 사람과 물건을 옮겨주는 오토바이 택시
파벨라에는 그러나 어둡고 무거운 부정적인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파벨라는 소외된 약자들이 기득권에 저항하며 정치 주체로 참여하는 공간이기도 하며 브라질 대중 예술의 요람이기도 하다. 브라질 각지 주로 농촌지역에서 산업화된 도시로 보다 나은 삶과 일자리를 찾아 모인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파벨라는 다양한 브라질 문화를 녹여내고 재창조하는 대장간이라 할 수 있다.
브라질 면적의 1/85인 우리나라에도 지역별로 다채로운 특색이 나타나는데 브라질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브라질과 같은 거대한 나라에서는 한 지역의 특색이나 특성이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전파 매체와 인터넷의 발전으로 지구 반대편의 일상이 바로 눈앞에서 실시간으로 공유되지만, 20세기 중 후반까지는 그 전달과 전파 속도가 그리 빠르지 않았고, 대부분이 직접적인 인적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전국 각지에서 도시로 모여드는 사람들은 단순히 몸만 온 것이 아니라 그 지방의 어투, 식자재, 음식, 조리법, 음악, 행동과 사고방식 등 다양한 지역적 특징을 도시로 함께 가져왔다. 그러다 보니 시민들에게 생소했던 것들, 교류가 없어 지역별로 단절된 것들이 파벨라에 들어와 서로 섞이면서 브라질적인 것이 되었고 이로부터 다시 브라질만의 독특한 대중 문화예술이 탄생했다. 삼바, 브라질 힙합인 펑크 카리오카, 그라피티와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이렇게 섞이고 재창조된 파벨라의 문화가 다시 도시로 확산되면서 지리적인 거리를 뛰어넘어 하나의 브라질 문화를 형성하는 데 크게 이바지해 오고 있다.
브라질 양극화와 소외의 상징인 파벨라는 명암이 공존하는 양면적인 공간이다. 한편으로는 범죄와 폭력이 난무하는 무법지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편견과 제도적 억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창조적 공간이다. 사회적 불평등과 양극화가 해소되어 궁극적으로는 파벨라가 없어지는 것이 가장 좋겠지만, 아직은 그럴 가능성이 커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창조적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사회적 불평등과 배제에 대한 저항하는 사회운동의 중심지로 조금씩 문제적 공간에서 희망적 공간으로 진화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