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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시아의 ‘인도화’(印度化, Indianization)

이은구_한국외대 인도학과 교수

동남아시아는 문화적인 면에서 서쪽으로부터 인도와 북쪽으로부터 중국의 영향을 많이 받아왔다. 기원전 2세기경부터 기원후 15세기경까지 인도의 힌두교, 상좌부불교, 대승불교가 동남아시아에 전파되고 이들이 이를 수용하여 소위 동남아시아의 ‘인도화’가 이루어졌다. 이후 영국의 식민지 지역인 말레이반도에는 인도 남부의 따밀(Tamil)인이나 벵갈(Bengal)인이 많이 이주함에 따라 동남아시아에 인도적 요소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동남아시아 대륙 남반부의 참족, 몬족, 크메르족 등은 오래전부터 열려있던 해상교통로를 통하여 인도 문화와 접촉하였다. 참족과 크메르족은 힌두교와 대승불교 그리고 몬족은 상좌부불교를 수용함으로써 강력한 왕국을 형성하였다. 동남아 대륙 북반부의 베트남인, 타이족, 시노-티베트족, 버마족 등은 11∼17세기 오랜 시기에 걸쳐 대륙의 남부 지역으로 점차 남하하여 참족, 몬족, 크메르족의 문화를 수용해 가면서 왕국을 건설하고 발전시켰다. 버마족은 그 과정에서 몬족으로부터 상좌부불교를 도입하였고, 타이족은 몬족으로부터 상좌부불교 그리고 크메르족으로부터 힌두교를 받아들였다. 도서부에서는 수마트라의 말레이인과 자바의 자바인들 역시 대륙 부의 남부 지역과 같은 시기에 힌두교와 대승불교의 영향 아래 왕국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동남아시아의 인도화’라는 인도 문화의 영향이 어떤 하나의 종교에 의한 것이라기보다 삶의 가치관, 세계관 그리고 정치, 경제, 기술, 미술, 음악, 무용, 건축, 문학, 언어, 문자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복합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동남아시아 최초의 고대 왕국이라고 할 수 있는 푸난(Funan) 이전에 동남아시아 각지에는 인도와의 해상무역이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인도 문화가 유입되었다. 그리고 인도 문화의 최고 전성기인 4세기 이후 동남아시아에는 산스끄리뜨(Sanskrit)어를 위시하여 고도로 발달한 굽따(Gupta) 왕조의 문화가 본격적으로 전파되었다.

동남아시아가 인도 문화를 수용해 가는 과정에 동남아시아인이 인도에 가서 배우고 돌아와 종교지도자가 된 사람도 있고, 인도로부터 이주한 사람이나 현지인과 결혼을 한 사람들이 나라를 세우는데 주요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동남아시아 ‘인도화’의 특징은 정치적으로 속국(屬國)이 되어 지배된 경우가 아니고, 해상을 통한 교역로가 발달하여 인적 왕래가 빈번해지면서 모험가, 상인뿐만 아니라 인도의 성직자들이 동남아시아인들과 교류하면서 인도 문화가 퍼져감에 따라 전파한 결과라는 점이다.

동남아시아에 있어서 ‘인도화’의 내용은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힌두교와 불교가 전파되면서 도입된 왕권개념. 둘째, 문자와 더불어 산스끄리뜨어가 전해지면서 인도의 문학적 표현 방식의 도입. 셋째, 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Ramayana)』와 『바하바라따(Mahabharata)』, 힌두의 신화 ‘뿌라나(Puraṇa)’ 그리고 여러 산스끄리뜨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의 소개. 넷째, 힌두교에서 말하는 신성한 법을 모아놓은 『마누법전(Manu-smṛti)』을 비롯한 법전류(Dharma-shastra)의 소개 등이다. 따라서 ‘인도화’는 종교, 문자, 언어, 예술, 그리고 법전 등의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표출된다.

동남아시아에 들어온 인도의 종교는 단일 종교라기보다 브라흐만교·힌두교·불교가 혼융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힌두의 동식물 숭배·정령신앙·주술(呪術) 등을 포함한 다신교관(多神敎觀)과 그것을 인격화해서 숭배하는 삼신일체(三神一體) 신앙 그리고 종교적 내세관을 포함하는 철학사상이 총망라되어 도입되었다. 힌두교는 특히 자바(Java)와 수마트라(Sumatra)에서 번창하였고, 지금도 발리(Bali)에서는 힌두교가 성행하고 있다. 또한 상좌부불교는 인도차이나반도 서부지역에서 지금도 강력한 세력을 유지하고 있다.

힌두교의 ‘데바라자(Devarāja, 神王)’라는 개념과 함께 불교의 ‘전륜성왕(轉輪聖王)’ 개념은 붓다 또는 보살로서 왕을 신격화하는 길을 열어 놓았다. 종교예술이 속세의 권력과 동떨어진 게 아니라 오히려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고 생각한 이곳의 통치자들은 인도의 매우 발달한 종교의식과 신화·신학에서 자신들의 통치권을 합법화하고 확장하는 방법을 추구하였다.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사원 앙코르 와트(Ankor Wat)와 앙코르 톰(Angkor Thom)은 제왕 숭배의 중심지로서, 이것들은 인도의 종교적인 기본 관념에 따라 배치되었다. 앙코르 톰의 중앙에 있는 바이욘(Bayon) 사원의 상(像)은 보살(관자재보살)의 관을 쓰고 만면에 미소를 지으며 세상 만물을 관조하고 있는 초월적인 모습이다. 이는 사실상 왕 자신의 형상으로 ‘자야바르만 7세 왕’ 자신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여 건립한 것이다.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비명(碑銘)은 대부분 그란타(Grantha, 인도의 고대 문자인 브라흐미 문자의 남부 형태) 문자로 씌어 있다. 또한 현재 사용되고 있는 타이 문자, 미얀마 문자, 수마트라의 바타크 문자, 발리섬의 문자 등은 모두 그란타 문자에서 유래한 것이다. 인도인들의 정서와 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인도의 2대 서사시 『라마야나』와 『마하바라따』가 동남아시아에 오래전부터 전해져 있음에 비추어 볼 때 이곳에서 인도 문화의 확산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인도 민중의 서사시가 동남아 각국에서 자신들의 문학으로 토착화되어 라마야나 카카윈(Ramayana Kakawin, 인도네시아), 히카야트 스리 라마(Hikayat Sri Rama, 말레이시아), 라마키엔(Ramakien, 태국), 리암케르(Reamker, 캄보디아), 프라 락 프라 람(Phra Lak Phra Lam, 라오스), 라마 야간(Rama Yagan, 미얀마) 등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싱가포르(Singapore)가 산스끄리뜨어로 ‘사자의 마을’을 뜻하는 ‘싱하뿌라(Singhapura)’에서 유래하였듯이 이곳의 지명, 인명, 학술용어 및 생활용어에는 인도 기원의 산스끄리뜨어가 매우 많이 사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동남아시아의 ‘인도화’는 이들 왕국의 행정 및 법제(法制)의 지식을 향상하여 정치체제를 확립하는 데에 많은 역할을 했다. 이 지역의 통치자들은 스스로 붓다와 같은 모습을 하거나 아니면 힌두의 신인 비쉬누와 쉬바라고 자처하며 거대한 기념비를 세우거나 종교의식을 수행하는가 하면 인도의 법전류를 인용하여 왕권의 신성성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기원전부터 인도인들이 동남아시아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인도의 종교와 더불어 법전과 행정조직을 포함하는 통치 체제, 문자와 언어를 포함하는 문학, 건축과 조각 그리고 회화를 포함하는 예술 등의 인도 문화가 광범위한 분야에 걸쳐 복합적으로 영향을 끼쳤고, 이러한 인도 문화 전통은 지금도 동남아 각지의 문화와 예술에 살아 숨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