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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패키지여행 연대기

김은희 작가

그 흔한 ‘나 때는 말이야’를 시전하고 싶진 않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이 스마트폰 하나 달랑 들고 런던이니, 파리니 골목길을 제집 안방처럼 찾아다니는 걸 보면 격세지감이라는 단어조차 고루하게 느껴진다. 가끔 조카 녀석이 내 스마트폰에 해외 결제 카드를 등록해 주며 “고모, 유럽 가서 ‘우버’ 부를 땐 이렇게 하는 거야”하고 가르칠 때면, 나는 속으로 피식 웃고 만다. 얘야, 이래 봬도 이 고모는 대한민국 패키지여행의 찬란한 여명기와 황금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정통 트래블러’란다. 싱글로 밥벌이를 하며 쌓아온 수많은 마일리지의 역사가 바로 이 패키지여행에서 시작되었단 말이다.

우리가 지금은 ‘해외여행’을 마트에서 과자 고르듯 소비하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그것은 국가가 허락한 특별한 자들의 ‘특권’이었다. 1989년 해외여행 전면 자유화 조치가 내려지기 전까지, 대한민국에서 여권을 쥐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였다. 나이 제한이 있었고, 소공동에 있던 외환은행 본점 앞은 환전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으며, 심지어 반공 교육을 이수해야 여권이 나오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니 89년 봄, 그 굳게 닫혔던 빗장이 스르륵 열렸을 때 대한민국 국민이 느꼈던 해방감과 설렘이 어떠했겠는가.

하지만 문이 열렸다고 해서 덜컥 혼자 나갈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영어는 중고등학교 때 서술형 시험 보느라 배운 게 전부고, 알파벳만 봐도 가슴이 울렁거리는데 어떻게 혼자 비행기표를 끊고 호텔을 예약하겠는가. 인터넷도 없고 구글맵도 없던 시절이었다. 바로 그때, 마치 구세주처럼 우리 앞에 등판한 것이 있었으니, 이름하여 ‘깃발’로 대변되는 단체 패키지여행이었다.

초창기 패키지여행은 그야말로 ‘엘리트들의 대이동’이었다. 계 모임에서 큰맘 먹고 나선 동네 중장년층도 있었지만, 대개는 은퇴한 고위 공직자나 대학교수, 혹은 이런저런 이유로 경제력을 지닌 이들이 큰맘 먹고 가던 고부가가치 상품이었다. 김포공항에 모인 분들의 옷차림부터가 남달랐다. 남성들은 빳빳하게 풀을 먹인 와이셔츠에 정장 재킷을 걸쳤고, 여성들은 미용실에서 갓 드라이를 마친 ‘사자머리’에 아끼는 재킷이나 정장을 차려입었다. 여행이 아니라 무슨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대표단 같았다.

그 엄숙하고도 설레는 무리의 맨 앞에는 언제나 가이드가 있었다. 가이드의 손등에는 올림픽 성화처럼 빛나는 무언가가 들려 있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노란색 깃발’이나 ‘캐릭터 인형이 묶인 안테나’였다. 낯선 이국의 공항, 수많은 인파 속에서 깃발은 등대이자 생명줄이었다. 가이드가 “자, 깃발 보시고요, 움직이겠습니다!”라고 외치면, 마치 피리 부는 사나이를 따르는 아이들처럼 일사불란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만약 그 오합지졸의 무리 중 누군가 낙오라도 된다면? 국제 미아가 되는 건 시간문제였기에, 우리는 깃발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또 응시했다.

그 시절 패키지여행의 백미는 뭐니 뭐니 해도 ‘살인적인 스케줄’이었다. 당시의 모토는 명확했다. ‘본전을 뽑아야 한다.’ 비싼 돈 들여 비행기를 탔으니, 눈에 불을 켜고 하나라도 더 봐야 했다. 이른바 ‘5박 6일 동남아 3개국’ 혹은 ‘9박 10일 유럽 6개국’이라는, 지금 생각하면 물리학 법칙이나 인간의 생체 리듬을 가뿐히 거스르는 초압축 스케줄이었다. 새벽 5시에 모닝콜이 울리면 영혼이 가출한 상태로 캐리어를 싸고, 6시에 호텔 조식 뷔페를 들이민 다음, 7시에 대형 버스에 올라탔다. 버스가 출발하면 가이드의 화려한 입담이 시작되었다. 방문할 장소의 역사와 문화를 설명하는데, 나로서는 꽤 흥미로운 인문학의 시간이었으나, 대부분의 승객한테는 완벽한 백색소음이자 자장가인 듯했다.

내 옆자리에 앉은 중년 부부 중 남편이 고개를 젖히고 코를 골기 시작한다. 버스 안은 이내 코골이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그러다 버스가 끼익 멈추고 가이드가 “자, 여기가 그 유명한 루브르 박물관입니다! 사진 찍으세요! 주어진 시간은 30분입니다!” 하고 외치면, 모두가 언제 잤냐는 듯 번쩍 눈을 뜨고 내렸다. 그리고 박물관 앞에서 빛의 속도로 ‘인증샷’을 찍은 뒤, 모나리자의 얼굴을 3초간 실물로 영접하고 다시 버스로 복귀했다. 그야말로 ‘점 찍고 오기’ 여행의 진수였다. 집에 돌아와 인화한 사진을 보면 내가 루브르에 간 건지, 대영박물관에 간 건지 분간이 안 갔다. 그래도 좋았다. 다이어리에 ‘마침내 루브르’라고 꾹꾹 눌러 적으며 혼자 피식했다.

시간이 흘러 90년대 중후반과 2000년대 초반에 이르자, 패키지여행은 대중화의 가속도를 밟았다. 주말 저녁 홈쇼핑 채널만 틀면 “지금 이 가격은 다시 없습니다! 방송 중에만 드리는 혜택!”을 외치는 쇼호스트들이 동남아나 괌, 사이판 여행 상품을 쏟아냈다. 이때부터 패키지여행 문화도 조금씩 진화했는데, 그 중심에는 한국인의 유별난 ‘밥심’과 특유의 ‘가족 공동체 의식’이 있었다. 혼자 패키지를 신청하곤 했던 나에게, 버스 트렁크는 늘 경이로운 공간이었다. 그곳은 거대한 이동식 한식당이자 비상식량 기지였다. 고추장 튜브는 기본이요, 깻잎 통조림, 볶음김치 등등이 가방마다 가득했다. 현지식을 먹으러 가서도 테이블 밑으로 슬그머니 고추장을 꺼내 비벼 먹는 일행들을 보며, ‘나라도 현지의 미식 문화를 온전히 즐겨야지’하고 속으로 다짐하곤 했다. 하지만 여행 4일 차쯤 되면 나 역시도 가이드가 은밀하게 꺼내놓은 신김치 한 조각에 무너졌다. 이국의 식당에서 파스타를 앞에 두고 “여기 총각김치나 마늘장아찌 없나”를 나직이 읊조리던 우리들의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인간미 넘치는 코미디의 한 장면이었다.이다.

물론 패키지여행의 역사에 늘 낭만과 미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우리 세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쇼핑센터의 추억’이 있지 않은가. 여행 중반부쯤 되면 버스는 어김없이 도시 외곽의 삭막한 쇼핑센터로 우리를 인도했다. 철컥하고 문이 닫히고, 현란한 말솜씨를 자랑하는 판매원이 등장하면 버스 안은 순식간에 팽팽한 긴장 상태로 변했다. “이 라텍스 매트리스에 누우면 척추가 바로 서고 수명이 늘어납니다.” 혹은 “이 노니 주스와 로열젤리는 만병통치약입니다.” 나름 합리주의자인 나는 저 비과학적이고 맹목적인 상술에 절대 넘어가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가이드의 “여러분이 이렇게 하나도 안 사주시면 제가 오늘 이 회사에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됩니다”라는 애처로운 읍소와, 옆자리 아주머니가 “어머, 이건 한국에서 사면 세 배는 비싸요.” 하며 지갑을 여는 군중심리가 더해지면 상황은 반전한다.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내 손에 정체 모를 진주 가루 크림과 거대한 라텍스 베개 박스가 들려 있다. 공항 수화물 수취대에 똑같이 생긴 라텍스 박스 수십 개가 빙글빙글 돌고 있는 풍경은, 그 시절 대한민국 패키지여행이 남긴 가장 웃기면서도 짠한 초상화다. 옵션 투어는 또 어땠는가. “이 야경 투어를 안 보시면 이번 여행은 헛방입니다. 다들 가시는데 혼자만 호텔에 계시면 위험해요”라는 가이드의 협박 아닌 협박에, 추가 비용까지 지급하며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섰던 수많은 밤들. 하지만 그 덕분에 방콕의 야시장에서 시원한 땡모반을 마시며 모르는 이들과 건배를 외쳤고, 파리의 바토무슈 유람선 위에서 센강의 바람을 맞으며 묘한 고독과 낭만에 젖기도 했다. 혼자였다면 두려워 엄두도 못 냈을 밤거리의 풍경을, 패키지라는 든든한 울타리 덕분에 안전하게 만끽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제 2020년대를 살아가는 지금, 패키지여행은 또 한 번의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예전처럼 빡빡한 일정에 끌려다니는 ‘지옥 투어’는 시장에서 자연스레 도태되었다. ‘NO 쇼핑, NO 옵션, NO 팁’은 기본이고, 하루에 한두 군데만 여유롭게 들르는 ‘세미 패키지’나 미술, 건축, 와인 등 특정 주제에 깊이 파고드는 ‘인문학 프리미엄 투어’가 대세다. 돌이켜보면, 대한민국의 패키지여행 역사는 우리 현대사의 성장 궤적, 그리고 우리 세대의 인생행로와 정확히 일치한다. 먹고살기 바빠 뒤돌아볼 여유가 없던 시절에는 여행조차 속도전이었고 전투였다. 더 많이 보고, 더 빨리 움직여야 성공적인 여행이라 믿었다. 우리가 그렇게 뜨거웠다.

내 나이 오십 대. 삶의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지금, 버스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 알아서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고, 가장 효율적인 동선으로 좋은 곳만 골라 골라 데려다주며, 때 되면 맛있는 로컬 음식을 대접해 주는 패키지여행의 미덕에 이제는 감사한다. 게다가 버스 안에서 만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과 귤 하나, 떡 한 조각을 나누며 “어디서 오셨냐”고 말을 건네고 이내 삼박사일 짜리 단짝이 되는 그 느슨하면서도 따뜻한 연대는, 에어비앤비의 차가운 셀프 체크인 프로세스나 고독한 나 홀로 배낭여행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인간미 그 자체가 아니던가.

이번 주말에는 오랜만에 홈쇼핑 채널을 유심히 들여다보거나, 즐겨 찾는 여행사 웹사이트의 프리미엄 탭을 클릭해 봐야겠다. 또 어디선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멋진 문구가 보이면, 나를 위한 최고의 선물로 예약 버튼을 꾹 누르리라. 인생이라는 이 예측 불허하고 긴 여행길에서, 잠시 전문가가 짜놓은 완벽하고 안전한 궤도에 내 몸과 영혼을 통째로 맡기는 것. 그것이야말로 치열하게 살아온 우리들이 누릴 수 있는 가장 유쾌하고도 지적인 유희가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