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란 전쟁 종전 합의와 향후 새 중동 질서
이희수_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 bbb 코리아 회장
4달간 계속된 이란 전쟁이 끝날 조짐이다. 6월 1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을 위한 양해각서(MOU)가 발효됨으로써 글로벌 경제는 물론 중동 에너지 의존도가 절대적인 한국경제에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침공으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처음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다. 평화 협상이 한창 진행 중인 상황에서 외교 대신 군사력을 사용하고 유엔 헌장(제2조 4항)과 국제법 체계를 무너뜨리는 명확한 침략전쟁이었기 때문이었다.
미국-이스라엘 동맹과 글로벌 체제의 대결 구도
무엇보다 이번 전쟁은 종래의 중동전쟁과는 판이했다. 1~2차 걸프전쟁, 4차례에 걸친 중동전쟁,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국이 주도한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 등은 서방세계와 이슬람 세계, 아랍과 이스라엘 간 선악 대결 구도가 비교적 뚜렷했다. 그런데 이번 전쟁은 정확히 미국과 이스라엘 동맹축과 글로벌 전체의 대결이었다. 누구도 미국의 이란 침략을 정당화하지 않았으며, 동맹국들을 향한 강도 높은 파병 요구에 어느 한 나라 파병하거나 동참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서방세계의 미국과 거리두기는 거의 처음이었다. 공동방위를 내세운 서방 군사동맹의 결정체인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조차도 냉담한 반응을 보이며, 미국의 경제적 제재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동참을 거부했다. 미 공군기의 영공 통과와 군사기지 사용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그럼 명백히 잘못된 전쟁이 왜 일어나게 되었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유가 급등으로 석유 의존의 글로벌 경제는 직격탄을 맞았고, 중동 석유 한 방울도 수입하지 않는 세계 최대 원유 생산국인 미국조차도 에너지 공급망 위기로 물가가 폭등하면서 고통받았다. 11월 중간 선거를 앞둔 트럼프 행정부에도 분명 악재다. 특히 중동 원유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면서 석유화학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한국과 아시아 국가들이 가장 큰 타격을 입고 있다. 그래서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을 네타냐후 총리가 트럼프를 설득하여 일으킨 이스라엘만을 위한 잘못된 전쟁이란 분석이 우세하다.
뉴욕타임스가 이번 전쟁 직전 네타냐후와 트럼프 간 7차례의 정상 회담, 백악관 일부 참모와 미국 정보당국의 전쟁 회의론 보고를 묵살하고 전쟁을 일으킨 배경을 폭로함으로써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결국 대화와 외교적 협상을 통해 문제해결을 해나가는 중에 미국의 손을 빌려 자신의 정치적 위기를 돌파하고, 이란이라는 잠재적 위협 세력을 제거하려는 네타냐후 총리와 이스라엘 우파 정권의 무모한 전쟁 드라이브가 불러온 결과다.
미국 내 이스라엘 여론도 급속히 나빠지고 있다. 전례 없는 일이다. 공화당이 다수인 미국 하원에서 이란 전쟁 반대 결의안이 통과되었고, 델리아 라미레즈 하원의원이 발의한 대이스라엘 살상 무기 금지법안에는 73명의 의원이 이름을 올렸다. 통상 미국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스라엘에 반대하는 법안이나 정치적 견해를 공개적으로 표명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막강한 정치자금과 언론 파워를 행사하는 유대인 공동체에 맞서는 정책은 자칫 정치생명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우파 지식인들 사이에서도 ‘아메리카 퍼스트’가 아니라 ‘이스라엘 퍼스트’라는 자조 섞인 비난이 쏟아지고 있는 것도 예사로운 변화가 아니다.
이스라엘이 홀로코스트 피해자로서 글로벌 공동체의 동정과 지지를 받아왔던 그간의 상황에서 지금은 이스라엘 총리와 국방부 장관이 국제사법재판소로부터 학살 전범으로 체포영장이 발부되고, 가자 침략에 이어 미국과 국제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레바논 남부까지 침공해 점령하는 모습은 혹독한 가해자이자 지구촌 질서를 어지럽히는 문제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이런 글로벌 이미지 변화와 미국 국내 여론 악화로 그동안 브로맨스를 자랑하던 트럼프와 네타냐후의 공조에 심각한 균열 조짐도 보인다. 핵심 이견은 미국과 이란 사이에 논의되는 휴전 협상안에 탄도 미사일 개발 제한 문제가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핵보유국인 이스라엘로서는 국제 원자력 기구의 사찰을 받고 있는 미래의 이란 핵 위협보다는 언제 날아올지 모르는 초음속 탄도 미사일이 더 큰 실존적 위협이다. 또한 10월 이스라엘 총선을 앞두고 전쟁을 계속하지 않으면 30여 년 권좌를 포기하고 기소될 가능성이 높은 네타냐후 총리의 입지도 중요한 변수다. 미국과 이란 양국이 합의한 협상안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레바논 남부 점령을 계속하고 수도 베이루트 공습을 계속하는 배경이다.
그럼, 앞으로 양해각서 발효 이후 종전까지 미국과 이란이 해결해야 할 핵심 의제는 무엇인가. 길고 지리한 국익 전쟁이 될 것이지만, 협상 타결의 가장 중요한 의제는 호르무즈 해협의 통제권과 통행료 징수 문제, 이란의 해외 동결 자산의 해제, 농축 핵 물질 처리 문제와 핵 프로그램 허용 문제, 3,000억 달러에 달하는 이란 전후 재건 사업의 해외 투자 유치 방식괴 실효성 등이다. 결과적으로 이번 전쟁은 이란의 1차 승리로 귀결되었다. 군사력에서는 완전한 패배였지만, 이란 신정 정권은 자국 내 반체제 민주화 세력을 잠재우고 안정적인 권력 유지에 성공했다.
물론 가장 큰 소득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면서, 언제든지 이 좁은 해협을 위협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확실한 전략적 자산을 확보한 것이다. 이제 이란은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고 투명한 검증 절차를 지켜준다면 정상 국가로 가는 절호의 기회를 얻게 될 것이고, 47년 앙숙 관계인 미국과의 경제적 협력을 통해 서구 경제권에 연착륙한다면 글로벌 경제는 전례 없는 발전 모멘텀을 맞이할 것이다. 물론 AI, 방산, 원전, 우주항공, 기술 플랜트 등 분야에서 가장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나라 중의 하나는 대한민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