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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어의 끝이 바뀌자, 여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 폴란드어 여성형 직업명의 귀환

최성은_한국외대 폴란드학과 교수

폴란드어는 지금 조용하지만, 분명한 변화를 겪고 있다. 한때 공적인 언어의 주변부에 머물던 여성형 직업명이 신문과 방송, 대학 강단과 SNS를 가로지르며 점점 자연스러운 자리를 얻고 있다. 남성형으로 대표되던 직업명의 끝에 ka[카]나 ni[니]와 같은 여성형 어미를 붙이는 경향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여성 법률가는 prawniczka[프라브니츠카」, 여성 정치인은 polityczka​[폴리티츠카], 여성 건축가는 architektka[아르히텍트카]라고 부른다.

한국어 화자에게는 조금 낯선 현상이다. 한국어에서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모두 ‘교수’, ‘의사’, ‘작가’, ‘기자’라고 부르기 때문이다. 굳이 성별을 강조할 필요가 있을 경우에만 ‘여교수’, ‘여의사’, ‘여기자’와 같은 말을 사용하는데, 오히려 요즘에는 이런 식의 표현을 달가워하지 않는 경향이 지배적이다. 그런데 폴란드어는 사정이 다르다. 문법적으로 남성·여성의 구별이 매우 발달한 언어이기 때문에 사람을 가리키는 명사에서도 성별이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남성 기자 dziennikarz[지엔니카쉬]에 대응하는 여성형은 dziennikarka[지엔니카르카]이고, 남성 배우 aktor[악토르]에 대응하는 여성 배우는 aktorka[악토르카]이다. 남성 교사 nauczyciel[나우취치엘]과 여성 교사 nauczycielkal[나우취치엘카]처럼 오래전부터 자연스럽게 사용되어 온 짝도 있다. 폴란드어에는 이처럼 남성형 명사에 특정한 접미사를 붙이거나 형태를 변화시켜 여성형을 만드는 문법적 장치가 풍부하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여성형 어미를 붙여 여성형 직업명을 만드는 것이 이처럼 자연스러운 언어라면, 왜 최근 들어 새삼 논쟁거리가 된 것일까? 문제는 문법 자체보다 사회적 현실에 있다. 여성 교사나 여성 배우를 나타내는 말은 오래전부터 널리 쓰였지만, 정치인이나 고위 공직자, 교수, 학자처럼 오랫동안 남성이 다수를 차지했던 직업과 직함에서는 남성형이 사실상의 기본형처럼 사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의 사회 진출이 확대된 뒤에도 이러한 언어 습관은 상당 기간 지속되었다.

그래서 여성 의사, 여성 교수, 여성 장관이 현실에 존재하면서도 이들을 부르는 언어에서는 남성형이 그대로 유지되어 왔고, 대상자가 여성임을 나타내기 위해 여성 존칭인 파니(pani)를 남성형 직업명 앞에 붙이는 방식으로 성별을 구별해 왔다. 예컨대 여성 장관을 pani minister[파니 미니스테르]라고 부르는 식이다. 직역한다면 ‘장관님인 여성’ 정도의 구조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여성 장관을 가리키는 ministra[미니스트라], 여성 총장을 뜻하는 rektorka[렉토르카](남성형은 rektor), 여성 학자를 가리키는 naukowczyni[나우코프취니](남성형은 naukowiec)와 같은 표현이 공적 담론에서 점점 더 눈에 띈다.

흥미로운 점은 모든 여성형이 똑같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단어는 이미 너무 익숙해 여성형이라는 사실조차 의식하지 않지만, 어떤 단어는 여전히 낯설거나 어색하게 느껴진다. 여성 교수를 뜻하는 profesorka[프로페소르카]가 대표적인 예다. 오늘날에는 이 표현을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지만, 여전히 남성형 profesor[프로페소르]에 여성 존칭 pani를 붙인 pani profesor[파니 프로페소르]를 더 익숙하거나 권위 있는 표현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적지 않다. 여기에는 폴란드 학계의 역사와 언어적 기억이 함께 작용한다. 폴란드 대학에서 정식 교수 타이틀을 가진 사람 가운데 여전히 남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을 뿐 아니라, profesorka라는 단어 자체도 과거에는 주로 중등학교 여교사를 가리키는 일상적 표현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부 폴란드인에게 profesorka는 대학의 권위 있는 여성 교수라는 의미보다 학교의 여교사를 떠올리게 하는 어감을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이 단어가 대학의 여성 교수를 가리키는 명칭으로 확산되는 과정은 단순히 새로운 여성형 하나가 등장한 것이 아니라, 한 단어에 오랫동안 축적되어 온 사회적 위계와 언어적 뉘앙스까지 함께 변화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표현에서 느끼는 ‘어색함’은 언어 변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무엇이 자연스럽게 들리고 무엇이 낯설게 느껴지는지는 문법적 규칙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어떤 표현을 얼마나 자주 접해 왔는지, 또 특정한 직업이나 사회적 역할을 어떤 사람과 연결 지어 상상해 왔는지도 언어에 대한 감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지금은 낯설게 들리는 표현도 사용이 거듭되면서 익숙해지고, 한 세대에게 어색했던 말이 다음 세대에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상어로 자리 잡기도 한다. 언어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변화의 과정이다.

여성형 직업 명을 둘러싼 논쟁 역시 단순히 “어느 표현이 문법적으로 올바른가”라는 문제로 귀결되지 않는다. 여성형 사용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여성이 현실에서 정치가이자 교수이고, 학자이자 총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면, 언어 역시 그 존재를 분명하게 드러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모든 직업 명에서 굳이 성별을 명시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거나, 새롭게 등장한 일부 여성형이 지나치게 인위적이고 낯설게 들린다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결국 여성형 직업 명을 둘러싼 논쟁은 단어의 형태를 넘어, 변화한 현실을 언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표현할 것인가를 둘러싼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는 ‘권위’에 관한 흥미로운 문제의식도 담겨 있다. 오랫동안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직업을 남성형으로만 접해 왔다면,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성형에서 더 강한 전문성과 권위를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여성형은 친근 하거나 일상적인 말처럼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여성형 직업 명이 ‘가볍게’ 들리는 이유는 정말 그 단어의 형태 때문일까? 아니면 우리가 오랫동안 권위 있는 자리에 있는 사람을 남성으로 상상해 왔기 때문일까?

이러한 질문들에서 여성형 직업 명의 문제는 문법을 넘어선다. 언어는 현실을 단순히 비추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정한 직업과 지위를 남성형으로만 계속 호명한다면 그 자리는 무의식적으로 남성의 영역으로 인식될 수 있다. 반대로 여성형이 자연스럽게 사용되면 여성은 그 영역의 예외적인 존재가 아니라 당연한 구성원으로 언어 속에 자리 잡게 된다.

물론 이를 ‘남성형은 나쁘고 여성형은 좋다’는 식의 단순한 문제로 바라볼 필요는 없다. 언어의 변화는 복잡하다. 어떤 표현은 빠르게 정착하는 반면, 어떤 표현은 오랫동안 기존 형태와 경쟁하거나 결국 사라지기도 한다. 세대와 직업, 정치적·문화적 관점에 따라서도 특정 표현에 대한 인식은 달라질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오늘날 폴란드 사회에서 사람들이 자신과 타인을 어떻게 부를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예전보다 의식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점에서 폴란드어 여성형 직업 명의 변화는 언어와 사회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사례이다. 여성의 교육 수준과 전문직 진출이 확대되고 정치·학문·문화의 여러 영역에서 여성의 존재가 일상적인 현실이 되면서, 그들을 호명하는 언어 역시 변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낯설었던 표현도 반복해서 사용되면 익숙해지고, 때로는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는다.

겉으로 보면 여성형 직업 명은 단어의 끝부분이 아주 조금 달라지는 작은 변화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 작은 말끝에는 “누가 교수이고, 누가 정치인이며, 누가 사회의 중심에 서 있는가”라는 훨씬 큰 질문이 담겨 있다. 폴란드어에서 다시금 활발하게 사용되는 여성형 직업 명은 사회의 변화가 언어에 어떻게 스며들고, 다시 그 언어가 현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어떤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작지만 선명한 사례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