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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은 사람을 구할 수 있을까 – 스탈린 시절 조선의 시에서 안식을 찾은 안나 아흐마토바

강인욱_경희대 사학과 교수

2024년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으며 던진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은 과거를 공부하며 현재를 살아가는 고고학자에게도 특별하게 다가온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들이 남긴 유물과 목소리가 지금 살아 있는 사람의 마음을 붙잡아줄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기 때문이다. 나는 한강 작가의 소회를 들으면서 제정 러시아 말기에 태어나 혁명과 엄혹한 스탈린 시대를 견딘 러시아의 대표적인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1889~1966)를 떠올렸다.

러시아 사람들의 집에는 웬만하면 푸시킨과 함께 아흐마토바의 시집 한 권쯤 꽂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녀는 20세기 러시아를 대표하는 서정시인이다. 문학에는 문외한인 나에게도 그녀가 특별하게 다가오는 이유가 있다. 바로 흉노와 튀르크 등 유라시아 유목민 연구로 유명한 역사학자 레프 구밀료프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유명한 역사학자의 어머니로만 기억하던 아흐마토바를 내가 다시 만난 곳은 뜻밖에도 윤선도의 「오우가」였다. 1950년대 엄혹한 시절, 그녀는 체제에 굴복하는 시를 쓰고 한동안 번역에 종사했다. 그런데 그녀에게 주어진 번역 가운데 바로 한국의 옛 시가 있었다.

죽음의 고통으로 살던 시인

아흐마토바의 삶은 한 사람이 감당하기에는 지나치게 가혹했다. 그녀를 둘러싼 사람들은 당대 최고의 문인과 예술가들이었다. 첫 남편 니콜라이 구밀료프는 명료한 이미지와 정확한 언어를 내세운 새로운 문학사조인 ‘아크메이즘’을 이끈 대표적인 시인이었다. 아흐마토바는 알렉산드르 블록과 같은 당대의 시인들과 교류했고, 파리에서는 화가 모딜리아니와도 가까이 지냈다. 젊은 시절의 그녀는 러시아 문화계의 중심에 있었다. 하지만 그 세계는 러시아혁명과 함께 무너졌다. 첫 남편 니콜라이 구밀료프는 1921년 반혁명 음모에 가담했다는 혐의로 총살되었다. 외아들 레프 구밀료프는 스탈린 시대에 여러 차례 체포되어 감옥과 수용소를 오갔다. 이후 아흐마토바와 오랫동안 함께 살았던 미술사가 니콜라이 푸닌마저 체포되어 결국 수용소에서 죽었다.

스탈린 시대의 압제는 아흐마토바 자신도 피해 갈 수 없었다. 1946년 소련 공산당의 혹독한 비판을 받고 작가동맹에서 축출되었고, 자기 이름으로 시를 발표하는 길도 사실상 막혔다. 여기에 1949년 외아들 레프 구밀료프가 세 번째로 체포되어 10년 형을 선고받고 다시 수용소로 끌려갔다. 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시간을 거치며 아흐마토바는 결국 평생 지켜온 자존심마저 꺾었다. 스탈린과 소비에트 체제를 찬양하는 연작시 「슬라바 미루!(Слава миру!)」를 발표한 것이다. 러시아어의 мир는 ‘평화’이면서 동시에 ‘세계’를 뜻한다. 제목의 직접적인 의미는 ‘평화에 영광을’이지만, ‘평화로운 세계’를 찬양하는 울림도 겹친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말 뒤에서 그녀의 첫 남편은 이미 총살당했고, 외아들은 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아들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명예까지 내놓아야 했던 시인에게 얼마나 역설적인 ‘평화로운 세상’이었을까.

그 선택은 그녀의 오랜 문학적 명성에도 깊은 상처를 남겼지만 정작 아들을 구하지는 못했다. 레프는 스탈린 사후인 1956년이 되어서야 석방되고 복권되었다. 그런데 정작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을 구하기 위해 충분히 노력하지 않았다고 원망했다. 아흐마토바는 자신의 명예까지 내놓았지만 그 뜻을 아들에게 제대로 이해받지 못했고, 두 사람 사이의 깊은 골은 그녀가 죽을 때까지 완전히 메워지지 않았다.

젊은 시절의 안나 아흐마토바, 남편·아들과 함께한 가족사진

그녀를 위로해 준 윤선도의 오우가

아흐마토바가 보낸 죽음 같은 시간은 대표작 『레퀴엠』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감옥 앞에서 아들의 소식을 기다리는 여자들,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사람들, 살아남았다는 이유만으로 죄책감을 느껴야 했던 사람들의 목소리가 겹친다. 이런 그녀의 아픔이 남긴 상처 같은 시로 세계적인 명성을 되찾았다. 생의 마지막 두 해인 1965년과 1966년에는 연이어 노벨문학상 후보로 추천되었다. 이 암울한 시절 그녀를 위로한 것은 한국의 옛 시였다.

작가동맹에서 쫓겨난 아흐마토바는 1955년에 국립문예출판사와 번역 계약을 맺었다. 그녀의 명성에 어울리지 않게 1행에 얼마 식으로 단가를 매겼고, 약 5,000행의 시를 번역하게 되었다. 당시 소련은 세계의 문학을 러시아어로 번역하였고, 아흐마토바에게도 그 일이 배당된 것이었다. 대시인에게도 먹고 사는 문제는 현실이었다. 몇 행을 번역했는가로 원고료가 계산되는 노동자였지만 자신의 시를 마음대로 발표할 수 없었던 그녀에게 번역은 그녀가 글을 쓸 수 있는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그녀의 번역은 1956년에 출판된 『조선고전시선』으로 세상에 나왔다.

아흐마토바는 한국어를 한 글자도 몰랐는데, 어떻게 윤선도와 정철, 고려가요와 수많은 시조를 번역했을까. 방법은 의외로 단순했다. 한국어를 아는 사람들이 먼저 원문을 러시아어로 최대한 곧이곧대로 옮겼다. 운율이나 멋은 따지지 않은 초벌 번역을 읽고 아흐마토바는 다시 러시아어의 시로 만들었다.

윤선도의 「오우가」로 예를 들어보자. 초벌 번역은 “너는 나무도 아니고 풀도 아니다. 속은 비었고 겉은 단단하다. 그러나 나는 너를 사랑한다. 일 년 내내 푸르기 때문이다.”라고 되어있고, 옆에 설명을 달아놓았다. “이것은 대나무에 대한 것임”이라고. 대나무를 직접 본 것도 아니고 윤선도의 한국어를 읽은 것도 아닌 아흐마토바는 “이것은 대나무다”라는 주석 한 줄에서 시작해 수백 년 전 조선 사람이 느꼈던 마음을 러시아어의 시로 다시 만들어야 했다.

조선 고전시선 표지_1956년 출판

아흐마토바의 운율은 참 아름답다. 나는 가끔 그녀의 번역을 소리 내어 읽어본다.

다음은 내가 특히 좋아하는 「오우가」의 서시이다.

“내 벗이 몇이나 하니 수석과 송죽이라

동산에 달 오르니 그 더욱 반갑고야

두어라 이 다섯밖에 또 더하여 무엇하리.”

 

이것에 대한 그녀의 번역은 다음과 같다.

“Мне друзья: бамбук зеленый,

Речка, камень и сосна.

А когда луна восходит,

Счастлив я тогда вдвойне.

И, поверьте, мне не надо

Больше никаких друзей.”

 

흥미로운 것은 아흐마토바의 ‘오우가’ 번역은 시대에 따라 조금씩 바뀌었다는 점이다. 1956년 판에서 아흐마토바는 첫 구절을 “나에겐 친구가 많지 않다”라고 옮겼다. 윤선도의 자족적인 물음이 러시아어에서는 외로운 사람의 고백처럼 바뀐 것이다. 그런데 2년 뒤 개정판을 찍을 때는 그 말을 지우고 “나의 친구는 푸른 대나무…”라고 고쳤다. 마치 자신도 모르게 번역에 반영된 자기 인생의 그림자를 발견하고 다시 거두어들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며 그녀의 러시아어 번역을 읽노라면 묘한 느낌마저 든다. 남편을 총살로 잃고, 아들을 수용소에 보내고, 자신의 시마저 빼앗긴 여인에게 윤선도가 말한 “나의 친구는 푸른 대나무와 시내와 바위와 소나무뿐”은 처절한 고독과 슬픔에 잠긴 자신의 모습으로 비추어진 것이다. 사실 아흐마토바의 번역은 한국 고대문학의 아름다움을 소개하는 것이 1차 목적인데, 그녀의 번역은 지나치게 자유롭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여하튼 아흐마토바가 굳이 한국의 문학을 왜곡하려는 마음이 있었을 리는 없다. 너무나 힘든 시간을 살면서 자신의 성정이 번역에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닐까.

번역으로 안식을 찾은 아흐마토바

읽으면서 궁금했던 것은 한국의 옛 노래에는 후렴구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였다. 아흐마토바는 상당히 영리하게 상황에 따라 판단했다. 「서경별곡」의 “위 두어렁셩 두어렁셩 다링디리.”는 그냥 글자 그대로 러시아 문자로 소리만 옮겼다. 반면에 윤선도의 「어부사시사」에 등장하는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는 조각배의 노를 저을 때 나는 음을 간파하고 “첨벙여라, 내 노야, 첨벙여라(Ты плещи, весло мое, плещи!)”로 바꾸었다. 나름 원문의 맥락을 파악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실었던 것이다.

시조에서 자신을 찾은 아흐마토바

작자를 알 수 없는 한 시조의 “죽으면 혼이 두견새가 되어 깊은 밤 나무에 숨어 울겠다”는 내용을 번역하면서 아흐마토바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자신이 스물네 살에 쓴 시 “내 몸에서 새가 된 슬픔이 빠져나가 가지에 앉아 노래하겠다….”라는 부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아흐마토바는 “이런 일치는 무서울 정도야.”라고 했다. 엄청난 시공간을 두고 외로움과 죽음과 사랑이라는 말로 두 저자는 연결된 것이다. 아흐마토바는 한국의 고전 시에 자신의 마음을 투영했다. 자신이 번역한 시를 유난히 아끼며 지인들에게 서명해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한강 작가가 이야기했던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는가.” “죽은 자가 산 자를 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수십 년 앞서서 아흐마토바는 한국의 고전 시를 번역하며 했던 것은 아닐까. 번역이란 참 놀라운 과정이다. 오래전에 죽은 사람이 남긴 몇 줄이 전혀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에게 도착한다. 그 사람은 그 오래된 말 속에서 자기와 닮은 고통을 발견하고, 자신의 언어로 다시 살려낸다. 그리고 사람들은 다시 그 번역을 읽으며 우리는 또다시 새로운 안식을 얻는다. 번역이 가지는 놀라운 경험이 아닐까. AI가 순식간에 언어를 바꾸어주는 시대가 되었다. 그래서 오히려 아흐마토바가 보여준, 다른 사람의 오래된 슬픔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번역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 본 컨텐츠는 AI로 생성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