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라의 재발견
김은희 작가
매일 아침 눈을 뜨고 발을 내딛는 삶의 터전은 때론 깊은 무감각의 영역에 속한다. 늘 거니는 길목의 익숙한 보도블록, 출퇴근길 지하철역에서 흐르는 기계적인 안내 방송, 식당 테이블마다 정갈하게 놓여 있는 수저통과 각 티슈 같은 것들 말이다. 물속을 헤엄치는 물고기가 자기가 파동을 일으키며 떠도는 물의 존재를 깨닫지 못하듯, 나 역시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의 독특한 결을 잊고 살았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내게 너무나 당연한 공기 같았고, 이 공간이 제공하는 일상의 편리와 질서는 지극히 평범한 배경음에 불과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사방에서 낯선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바다를 타고, 유튜브 화면을 넘어, 세계 유수의 언론과 각종 저널의 지면을 타고 밀려드는 수많은 외국인의 목소리였다. 그들이 말하는 한국은 내가 너무나 잘 안다고 믿었던 그곳이지만, 동시에 단 한 번도 떠올려보지 못한, 생소하고 유쾌한 입체감을 지닌 공간이었다. 그들이 던지는 찬사와 호기심 어린 시선, 그리고 집요할 정도로 정교한 문화적 분석을 접하며 얼얼한 충격을 받기도 했다. ‘아, 우리가 정말 이런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었단 말인가?’ 타자의 눈이라는 뜻밖의 렌즈를 통해, 나는 내 나라를 완전히 새로이 재발견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나를 놀라게 한 것은 그들이 포착해 낸 한국 일상의 정교한 디테일들이었다. 우리에겐 그저 지극히 당연해서 거들떠보지도 않던 소소한 풍경들이 그들의 눈에는 신기한 마법이나 고도의 문명적 특권처럼 여겨지는 모양이었다. 카페 테이블 위에 노트북과 최신형 스마트폰, 심지어 지갑까지 버젓이 올려두고 화장실에 다녀오는 풍경은 이미 ‘상호 신뢰의 국가’를 증명하는 고전적인 예시가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감탄하는 디테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집요하고 인문학적이다. 한 영국 여행 에세이스트는 한국의 카페에서 지갑이 사라지지 않는 현상에 대해 “단순히 형사 처벌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타인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는 조용한 존중과 공공 공간에서의 안전을 서로 보장하려는 고도의 그리고 무언의 사회적 계약이 작동하기 때문”이라는 거창한 해석을 내놓았다. 지갑을 두고 가도 안심할 수 있는 이유가 순식간에 인류학적 신뢰 자산으로 신분 상승하는 순간이었다.
공공 인프라에 대한 찬사도 기가 막힌다. 예컨대 한 프랑스 저널리스트는 한국 지하철역마다 환승 구간에서 찰랑이는 가야금 선율이나 승강장 안전문에 적힌 짤막한 시 구절을 두고 “기술적 효율성에 서정성을 결합한 도시미학적 배려”라는 거창한 평가를 내놓았다. 출퇴근길 찌든 피로 속에서 무심히 지나치던 환승 음악이 고도의 감성 인프라로 재해석된 셈이다. 또, 어느 독일 유튜버는 한국 KTX의 정시 도착률을 언급하며 “시간을 엄수하는 정교한 기계장치 같으면서도, 좌석마다 놓인 음료 거치대와 무료 와이파이, 그리고 짐을 머리 위 선반에 툭 얹어 놓아도 아무도 가져가지 않는 평온함은 인간에 대한 온기 어린 예의를 담고 있다”고 감탄했다.
야간 산책길을 환히 밝히는 길거리 CCTV와 가로등의 촘촘함은 외국 언론에서 ‘감시’가 아닌 ‘야간 통행의 자유’로 재해석되고, 버스 정류장의 겨울철 온열 벤치와 여름철 쿨링 포그(Cooling fog) 시스템은 공공 인프라가 시민의 체온까지 조절해 주는 관용의 표상으로 언급된다. 심지어 지극히 번잡한 도심 한복판에서 대중교통으로 불과 30분 만에 도달하는 국립공원의 웅장한 바위산과 잘 정비된 데크길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매일 스쳐 지나가던 일상의 모든 요소는 그들의 렌즈를 거치며 하나하나 ‘특별한 문화적 자산’으로 거듭나고 있다.
평가의 양적 증가뿐만 아니라 그 ‘질적인 깊이’마저 비약적으로 달라졌다. 예전의 외국인들이 한국을 바라볼 때의 시선이 K-팝이나 K-드라마, 혹은 ‘매운 김치 Challenge’ 같은 일차원적인 호기심이나 단편적인 인상에 머물렀다면, 요즈음 그들이 나누는 담론은 자못 인류학적이고 깊다. 특히 목욕탕과 찜질방을 향한 외국인들의 분석은 거의 사회학 보고서 수준이다. 단순히 ‘황토방에서 땀을 빼고 식혜와 맥반석 달걀을 먹는 이색 경험’을 넘어서, 그들은 ‘남녀노소 누구나 사회적 계급장을 떼고 동일한 옷(혹은 맨몸)을 입은 채 평등하게 휴식을 취하는 한국형 민주주의 유토피아’라는 철학적 담론을 제시한다. 때를 밀어주는 세신사(洗身師) 문화에 대해서는 “피부 표면의 노폐물뿐만 아니라 스트레스와 과거의 잡념까지 깎아내는 정교하며 유기적인 케어 서비스”라는 거창하고 도파민 터지는 해석까지 붙는다. 묵은 때를 밀며 윽윽 소리를 내던 소박한 목욕탕이 순식간에 정신분석학적 치유의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식탁 위 반찬 문화에 대한 해석 역시 남달랐다. 식당에 들어서면 메인 요리가 나오기도 전에 아무런 대가 없이 깔리는 다채로운 반찬들을 보며, 그들은 단순히 ‘공짜 서비스’라는 사실에 놀라는 것을 넘어 한국 사회 특유의 ‘정을 나누는 정서’와 ‘공동체적 나눔의 유산’을 읽어낸다. 해외의 음식 비평가들은 “한국의 식당에서는 식사가 개인의 단독 소유가 아닌, 공유된 밥상의 형태로 시작된다”라며, 계절마다 바뀌는 제철 나물과 집집마다 다른 장맛의 깊이를 조명한다. 정작 한국인인 나조차도 무심코 지나쳤던 풍성한 문화적 맥락과 밥상 위의 철학을 그들의 언어를 통해 되짚어보게 되는 것이다.
공중보건과 의료 서비스에 대한 외신들의 조명도 흥미롭다. 몇 년 전 한 미국 언론인이 한국의 병원 방문 경험을 쓰면서 “예약 없이 찾아가도 10분 만에 전문의를 만나고, 정교한 진료와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나오기까지 30분이 채 걸리지 않으며, 심지어 비용마저 믿을 수 없이 합리적인 곳”이라며 한국의 의료 인프라를 ‘현대 문명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고도화된 효율성의 결정체’로 극찬했다. 우리가 아플 때 너무나 당연히 찾아가던 동네 의원이 그들에게는 신화 속의 장소처럼 비친다 사실이 묘한 기분에 사로잡히게 한다.
이러한 ‘낯선 눈’들의 집합은 나에게 일종의 ‘거울 효과’를 불러일으켰다. 타인의 렌즈를 통해 나 자신과 내가 속한 사회를 되돌아보는 경험은 꽤 강렬하고 묵직하다. 그동안 우리는 앞만 보고 달리느라 우리가 일구어낸 터전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스스로 제대로 보듬어줄 겨를이 없었다. 언제나 스스로에게 엄격했고, ‘아직 부족하다’며 서구 선진국들과 비교하고 스스로를 채찍질하기에 바빴다. 치열한 속도전 속에서 부지런히 추격하느라 우리가 이미 구축해 놓은 정교하고 촘촘한 삶의 결들을 되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를 바라보는 바깥의 깊이 있는 평가들은 맹목적인 국뽕이나 국수주의적 자부심을 넘어, 우리 삶을 스스로 고찰하게 만드는 성숙한 계기를 마련해주고 있다. 무심히 누리던 이 일상이 사실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와 정교한 시스템, 그리고 서로에 대한 온기와 타인에 대한 깊은 신뢰로 유지되고 있는지를 깨닫게 해준 것이다. 낯선 이들의 시선은 우리에게 “당신들이 누리고 있는 이 평범함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세계 어디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 가치 있는 것”이라고 일깨워준다.
여행이란 무엇일까. 많은 이들이 비행기표를 끊고 멀리 떨어진 타국으로 떠나는 것만을 여행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프랑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는 “진정한 탐험은 새로운 풍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갖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요즈음 내가 접하는 외국인들의 이야기는 나에게 가장 역동적인 여행의 기회를 제공해 준다. 멀리 떠나지 않고도, 매일 걷던 집 앞 산책로와 단골 식당의 풍경을 완전히 새로운 감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렌즈를 통해 내 삶의 터전이 매일 새로운 여행지로 변모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는 이제 타인의 시선을 빌려 비로소 내 나라를 제대로 바라보는 역설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늘 곁에 있어 무뎌졌던 일상의 가치들이, 낯선 이들의 찬사와 정교한 언어를 통해 하나씩 빛을 발하며 돌아온다. 오늘 밤, 나지막한 언덕길에 서서 불빛으로 물든 도심의 풍경을 다시 바라본다. 늘 마주하던 아파트 단지의 불빛, 조용히 흘러가는 강물, 버스 정류장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정결한 모습이 새롭게 와 닿는다. 익숙했던 모든 것들이 새롭게 와 닿는 이 순간, 나는 내가 뿌리내리고 사는 이 삶의 터전을 다시 한번 깊이 사랑하게 된다. 타인의 시선이 선물해 준, 이 아름다운 재발견 덕분에, 나의 일상은 이전보다 훨씬 더 풍요롭고 묵직한 의미로 가득 차오르고 있다.
※ 본 컨텐츠는 AI로 생성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