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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나 까먹기처럼 쉬운, 속담으로 보는 한태 문화

박경은_한국외대 태국학과 교수

“싸다고 해서 사 봤더니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어요.”

태국인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이 말을 듣고 ‘와, 이분 정말 한국 사람 다 됐네’ 하고 감탄을 금치 못했다. 비지떡이라는 게 무엇인지 한국에서 나고 자란 나조차도 언뜻 떠오르지 않는데, 떡이라는 음식이 없는 태국에서 나고 자란 분이 이러한 한국 속담을 적재적소에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모습을 목도하는 것은 언제나 신선한 놀라움을 선사한다.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를 넘어 문화를 담는 그릇이라는 말은 너무나 당연한 말이라서 식상하게까지 느껴진다. 특히 조상의 지혜와 삶의 교훈을 담고 있는 속담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를 들여다볼 수 있는 문화의 오래된 기억 저장고와 같다. 일상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속담 현들은 그 나라 사람들이 경험하며 살아가는 보통의 삶을 잘 드러내 주기에 더욱 흥미롭다.

같은 아시아 국가인 한국과 태국의 속담을 들여다보면 상당 부분 비슷한 의미와 표현을 공유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예컨대, 한국어의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태국어에서 ‘소를 잃고 울타리를 두른다’로 표현하고, ‘백문이 불여일견’은 ‘열 개의 입이 말하는 것이 하나의 눈이 보는 것만 못하다’로 표현한다. 한국어에서 ‘병 주고 약 준다’는 표현은 태국어로는 ‘머리 때리고 등 쓰다듬는다’로 표현하고, ‘손뼉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는 ‘한쪽 손으로 치는 손뼉은 소리가 안 난다’로 표현한다.

가치관을 드러내는 표현들도 공유하는 것이 상당 부분 있다. 어른에 대한 공경심을 공유하고 있는 한국과 태국에는 비슷한 의미의 속담이 있는데, 한국어에서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생긴다’(한국인은 떡을 참 좋아한다)라는 표현을 태국어에서는 ‘어른을 따라 걸으면 개가 물지 않는다’로 표현한다. 태국 사람들은 이를 두고 어른을 먼저 물기 때문에 안 물리는 것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하지만, 결국 웃어른을 공경하고 따르라는 교훈을 전달하는 속담이다.

말과 행동을 주의하도록 가르치는 것도 중요하게 여겼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라며 말조심을 가르치는 한국 사람들처럼, 태국 사람들도 ‘벽에는 귀가 있고 문에는 틈이 있다’라고 주의를 준다. 공동체에서 생활할 때에 지나치게 튀거나 적응하지 못하는 것을 경계하여 한국어에서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며 둥글둥글 살도록 가르친다면, 태국어에서는 ‘애꾸눈의 마을에 가면 한 쪽 눈을 감으라’며 상황에 맞춰 유연하게 적응하라고 가르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서양의 속담과 상통한다.

근면하게 작은 것을 모아서 큰 것을 일구는 것을 중요시하는 부분도 통한다. 한국어의 ‘티끌 모아 태산’은 태국어로 ‘마루 밑에 떨어진 잔돈 모으기’로 표현된다. 공동체와 협력을 강조하는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태국어로 ‘물은 배에 의지하고, 호랑이는 숲에 의지한다’로 표현하여 역시 서로 도와야 함을 가르친다. 정을 중요시하는 한국처럼 태국도 ‘가는 정 오는 정’을 강조하여 ‘돼지가 가니 닭이 온다’, 즉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서로 나누어 먹으며, 언제나 서로 정을 나누며 살라고 가르친다.

기회가 왔을 때는 반드시 잡으라고 가르친다. 한국어에서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라고 표현하는 것과 비슷하게 태국어에서는 ‘물이 차오르면 서둘러 물을 길어라’라고 가르친다. 하지만 자만해서는 안 된다. 사람 일은 언제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될지 모른다’라는 표현은 태국어로는 이를 ‘물이 차오르면 물고기가 개미를 잡아먹고, 물이 빠지면 개미가 물고기를 잡아먹는다’고 한다. 지나치게 오만해서도 안 되고 또 지나치게 좌절할 필요도 없는, 돌고 도는 세상만사의 이치를 가르친다. 그리하여 결국 인간은 자신이 행하고 쌓아온 대로 돌려받게 된다. 한국어의 ‘뿌린 대로 거둔다’, 또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는 말은 자신이 행한 결과를 그대로 돌려받음을 의미한다. 태국에서는 여기에 불교적 개념을 가미하여 ‘선을 행하면 선한 것을 얻고, 악을 행하면 악한 것을 얻는다’라고 표현하여, 불교적 인과응보의 사상을 투영하였다.

동양의 전통적인 가치관이 엿보이는 부분도 유사하다. 예컨대, 한국에는 이제는 통하지 않는 옛말이 되었지만, 예전에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와 같이 가부장주의적인 인식이 있었는데 태국에서도 ‘남자는 코끼리의 앞발, 여자는 코끼리의 뒷발’이라고 하여 남편의 가정 내 리더십을 강조한 적이 있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로 여겨 ‘피는 못 속인다’, ‘그 아버지에 그 아들’ 등으로 표현하듯이 태국어로는 ‘열매는 그 나무에서 멀지 않은 곳에 떨어진다’고 표현한다. 그렇기에 자식을 잘 키워내는 것은 중요한 사명 중의 하나로서 ‘고운 자식 매로 키운다’에서처럼 사랑하는 자식일수록 매를 대어 엄하게 키워야 한다는 말이 있었는데, 태국어에서도 유사하게 ‘소를 사랑하면 묶어 두고 자식을 사랑하면 때려라’라고 하여 집안에서의 자식 훈육을 중요시했다.

속담의 재미 중 하나는 같은 개념을 문화와 사회에 따라 다른 소재를 사용해서 표현하는 점이다. 한국과 태국의 속담도 두 나라의 지형, 기후, 동물, 식물, 식문화 등의 차이에 의해서 같은 개념을 다른 소재를 사용해서 나타내는 것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예컨대 상황이 갈수록 어려워질 때, 산이 많은 한국에서는 ‘산 넘어 산’이라고 표현하거나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 ‘노루 피하니 범 만난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데, 태국어에서도 이와 비슷하지만 동물이 악어로 바뀌어서 ‘호랑이를 피하니 악어를 만난다’라고 표현한다. 호랑이보다 악어가 더 무서운 존재인 것이다. 한국은 지형적으로는 산이, 동물로는 소, 닭, 개, 토끼, 범(호랑이) 등이 자주 등장한다면, 태국은 지형적으로는 주로 강이, 동물로는 물소, 호랑이, 물고기, 악어, 코끼리 등이 단골손님들이다.

한국어의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를 태국어로는 ‘두 손에 물고기를 잡는다’로 표현하고, ‘뱁새가 황새 좇아가다가 가랑이 찢어진다’는 태국어로는 ‘코끼리를 따라서 똥을 싼다’로 표현한다. (태국인은 코끼리를 참 좋아한다) ‘닭 잡는 데 소 잡는 칼 쓴다’는 ‘코끼리 타고 메뚜기 잡기’로 표현하고,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는 ‘코끼리가 죽었는데 연잎으로 가린다’라고 표현한다. 우둔함의 대명사로 한국 속담에서 자주 인용되는 소는 태국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는 물소로 대체되어 ‘소귀에 경 읽기’는 태국어에서는‘물소에게 해금 연주 들려주기’로 표현된다. 자기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갖춘 사람 앞에서 잘난 체하거나 아는 척하는 행동을 ‘번데기 앞에서 주름 잡는다’ 또는 ‘공자 앞에서 문자 쓴다’라고 하는데 태국어로는 이를 ‘악어에게 헤엄 가르친다’로 표현한다. 수영에 통달한 악어에게 헤엄을 가르치다니, 가당치도 않은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동물뿐만 아니라 먹거리나 식물도 주요한 속담의 소재가 된다. 들인 공에 비해서 얻는 게 적을 때 한국에서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고 표현하는데, 태국어에서는 이를 ‘고추 양념을 강물에 푼다’라고 표현한다. 힘들여 만든 고추 양념을 강물에 풀어버리면 그야말로 헛수고가 아닐 수 없다. 한국말의 ‘우물 안 개구리’는 태국어로 가면 ‘코코넛 껍질 속의 개구리’로 변신한다. 코코넛 껍질 속에만 갇혀 살았던 개구리라면 얼마나 시야가 좁을지, 우물이 대궐처럼 느껴질 정도다. 남의 것을 부러워할 때 한국어에서는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하는데 태국어에서는 이를 ‘안에 있는 사람은 나가고 싶어 하고, 밖에 있는 사람은 들어오고 싶어 한다’고 좀 더 직설적으로 표현한다.

어떤 일이 아주 쉽다고 표현할 때 한국어는 ‘식은 죽 먹기’ 또는 ‘누워서 떡 먹기’ (다시 한번 말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떡을 참 좋아한다)라고 하는데 태국 사람들은 ‘바나나 까서 입에 넣기’라고 한다. 줄여서 ‘바나나 바나나’라고만 해도 너무나 쉽다는 의미가 완성된다. 열대과일 중에서 가장 먹기 쉬운 과일이 바로 바나나가 아닐까. 딱딱한 껍질을 도끼로 까야 하는 두리안이나 딱딱한 껍질 속에 숨어있는 람부탄, 망고스틴, 아니면 칼로 껍질을 까야 하는 파파야나 망고, 심지어는 적어도 물로 씻어 먹어야 하는 것이 과일이다. 그런데 바나나는 씻을 필요도 없고 도구도 필요 없이 그냥 손으로 쓱쓱 껍질을 벗기기만 하면 바로 입으로 직행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가장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다.

일 년 중 가장 풍요로워서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라’고 하는 추석이다. 태국어에서 풍요를 의미하는 속담에는 태국인들의 주식인 쌀과 생선이 들어있다. 쑤코타이 시대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람캄행대왕의 금석문에 적혀 있는 ‘물에는 물고기가 있고, 논에는 벼가 있다’라는 문장은 쑤코타이 시대의 풍요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동시에 태국인들이 생각하는 풍요의 정의를 드러낸다. 밥과 생선이 있는 삶은, 먹고 사는 걱정이 없는 풍요로운 삶이다.

속담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이 짧은 몇 마디만으로 오랜 세월 이어져 온 그 나라 사람들의 경험과 지혜와 풍속을 투영해 준다. 민중의 풍자와 해학이 담겨 있는 속담은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역사이자 정체성이 농축된 것이다. 속담을 거리낌없이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그 문화를 온전히 체득한 사람만의 특권이다. ‘싼 게 비지떡’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사람이 한국 사람이 아니면 누가 한국 사람이겠는가.

※ 본 컨텐츠는 AI로 생성한 이미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