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스와힐리어의 날과 샤반 로버트
박정경_한국외대 아프리카학부 교수
매년 7월 7일은 유네스코(UNESCO)가 지정한 ‘세계 스와힐리어의 날’(Siku ya Kiswahili Duniani)이다. 유네스코는 2021년 제41차 총회에서 이날을 스와힐리어의 날로 지정했고, 2024년에는 유엔 총회 역시 같은 날짜를 ‘세계 스와힐리어의 날’로 선포하였다. 이는 스와힐리어가 동아프리카 일부 지역의 언어라는 범주를 넘어, 세계적 차원에서 교육과 문화, 평화와 국제 협력을 연결하는 중요한 언어로 인정받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스와힐리어는 유엔이 공인한 최초의 아프리카 토착어이자, 세계 곳곳에 2억 명 이상의 화자를 보유하고 있다.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언어로서 스와힐리어는 이 대륙의 통합과 공통 정체성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아프리카에는 식민주의의 폐해가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언어 문제다. 아프리카의 여러 국가에서 식민 종주국의 언어, 즉 영어나 프랑스어 등이 여전히 공식어로 사용되고 있으며, 토착어가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따라서 토착어 사용을 장려하는 활동은 단순히 언어만의 문제가 아니라, 아프리카 고유의 정서와 문화유산을 보존하고, 정체성을 강화하며, 더욱 자립적인 미래를 건설하기 위한 중요한 발걸음이다.
세계 스와힐리어의 날에는 유네스코 본부를 비롯한 전 세계에서 스와힐리어 문화권의 음악, 문학, 역사 등을 조명하는 기념행사가 개최된다. 대한민국에서도 올해 7월 7일에 주한탄자니아대사관과 연세대 아프리카연구원 주관으로 연세대학교에서 본 행사가 개최되었다. 이런 자리에서 예외 없이 언급되는 문인이 샤반 로버트(Shaaban Robert, 1909~1962)다. 그는 다양한 장르의 스와힐리어 문학 작품을 발표하면서 이 언어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스와힐리어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그의 시 ‘스와힐리어’(Kiswahili)의 첫 번째 행에는 ‘어머니의 젖은 달콤하고’(Titi la mama litamu)라는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 대목은 탄자니아 사람들의 가슴에 국어로서 스와힐리어의 중요성과 문화적 가치를 강조하는 시구로 남아 있다.
식민주의의 영향으로 아프리카 토착어가 주변부로 밀려나고 있는 가운데,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 아프리카 문학은 영어나 프랑스어로 된 작품 일색이다. 그러나 동아프리카에서는 케냐와 탄자니아를 중심으로 스와힐리어 문학 창작이 활발히 이루어짐으로써, 진정한 아프리카 문학의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 샤반 로버트는 스와힐리어가 동아프리카 현대문학의 언어로 자리 잡는 데 기틀을 마련한 작가라 할 수 있다.
샤반 로버트가 활동했던 20세기 전반의 동아프리카는 식민 지배와 사회적 변화가 교차하던 시기였다. 당시 스와힐리어는 동아프리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었지만, 식민지 지배체제 속에서 영어와 같은 유럽 언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문화적 위상을 갖고 있었다. 동시에 오랜 세월 축적되어 온 스와힐리 해안 지역의 구전 전통과 이슬람 종교 시 전통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문학적 형식으로 발전할 필요가 있었다.
샤반 로버트는 바로 이 역사적 전환기에 등장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스와힐리 고전 시의 형식과 표현을 계승하면서도 소설, 수필, 전기, 자서전 등 새로운 문학 장르의 작품 창작을 시도했다. 많은 아프리카 문학 비평가가 샤반 로버트의 작품을 전통적인 스와힐리 문학 형식과 새로운 산문 문학이 만나는 과도기적이면서도 창조적인 지점으로 평가한다. 샤반은 스와힐리어가 일상적인 의사소통을 위한 언어에 머물지 않고,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사상과 철학, 사회 비판과 미적 감성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문학 언어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샤반 로버트의 작품 세계를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는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적 정의이다. 그의 문학에는 자유와 평등, 교육, 도덕, 인간관계, 사회적 책임 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나타난다. 특히 식민지 사회의 현실 속에서 개인이 어떻게 자신의 존엄성을 지키고 더 나은 사회를 만들어갈 수 있느냐 하는 질문은 그의 작품 곳곳에서 발견된다.
예컨대 그의 소설 ‘쿠사디키카’(Kusadikika, 1951)는 가상의 국가를 배경으로 한 우화적 작품이다. 작가는 현실의 사회와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우화와 풍자를 통해 제시하면서, 정의와 자유, 권력과 책임의 문제를 독자들에게 생각하게 한다. 또한 ‘모든 행위자들의 날’(Siku ya Watenzi Wote, 1968)은 독립을 전후한 시기 탄자니아의 수도 다르에스살람의 번화가와 빈민가에 대한 묘사, 악행을 일삼는 부유층과 가난에 허덕이는 저소득층 인물 설정을 통해 신생 독립국 도시가 직면한 탐욕, 빈부 격차, 여성 억압 같은 모순된 현상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작품에서 독자는 인간의 삶과 현실에 대한 샤반의 철학과 마주하게 된다. 그가 활동하던 시대에 서구의 제도와 문물의 유입은 동아프리카에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고, 이 과정에서 다양한 사회 문제가 나타났다. 작가는 소설을 통해 이 세상의 혼란과 고통을 극복할 희망을 드러내면서, 도덕적·종교적 관념에 기반한 이상적인 사회의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샤반 로버트의 문학적 의미는 단순히 뛰어난 작품을 남겼다는 데 있지 않다. 그의 작품 세계에는 전통과 현대, 아프리카와 세계, 개인의 삶과 사회적 가치, 언어와 인간의 존엄성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세계 스와힐리어의 날을 맞아 우리가 샤반 로버트를 다시 읽어야 하는 이유는 결국 그의 문학이 보여주는 ‘언어의 힘’에 있다. 언어는 단순히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가 아니다. 언어에는 한 사회의 역사와 기억, 가치관과 세계관이 담겨 있다. 한 언어로 문학을 창조한다는 것은 그 언어가 가진 세계를 보존하고 확장하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