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프랑스 외교 수립 140주년, 격상된 우호 관계 –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 관계
최미경_이화여대 통번역대학원 한불전공 교수
183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이 조선대목구를 설정하고 파리외방전교회(Les missions étrangères de Paris)의 신부들을 파견하여 조선에서 포교를 시작하면서 1839년 기해박해, 1866년 병인박해가 발생하자 프랑스군이 강화도에 함대를 파견하면서 병인양요가 발생한다. 이렇게 시작된 조선과 프랑스의 공식적인 만남은 1866 불평등 조약인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로 결론이 난다. 조불수호통상조약은 프랑스어본과 한문을 정본으로 하며,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프랑스인 선교사의 조선 내 통행을 허가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조약 체결 후, 코스트 신부가 설계하고 1898년 축성된 명동성당 역시 통상조약의 결과물이다.
조선이 식민지가 된 후에 프랑스는 상하이 조차지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자리 잡는 것을 허용하였다. 프랑스 파리에는 유학 후 프랑스어 구사가 유창했던 독립운동가이며 언론인인 서영해가 ‘고려통신사 출판부’를 설립, 일제강점기 유럽에서 한국의 독립과 문화를 알려왔다.
한프 관계에서 본격적인 협력은 한국전에 프랑스가 파병을 한 것이다. 60세의 몽클라르 중장이 3,400명의 지상군을 이끌고 스스로 중령으로 계급 강등하여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여 중공군의 공세를 막아낸 지평리 전투(1951년)를 비롯해 원주 쌍터널 전투, 단장의 능선 전투, 화살머리 고지 전투 등에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1960-1990년대까지는 대한민국이 독재국가였던 시절, 실존주의 문학 등 프랑스의 문학작품들이나 공쿠르상 수상작들은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자유, 인간의 존엄, 낭만적인 주제들을 다루었고 번역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
본격적인 산업 교류는 미국의 원자력발전소와의 차별화를 위해, 프랑스가 건설, 1988년 상업 운전을 시작한 울진 원자력 발전소 1, 2기로 시작된다고 할 수 있다. 고속철 사업은 1993년 치열한 경쟁 끝에 프랑스가 선정되어 1994년 6월 14일에 체결되었으며, 이 계약의 핵심은 단순한 차량 구매가 아닌 기술 이전과 국내 생산 조건 확보였다. KTX 차량과 신호체계, 기술 이전 단계에서 학생 신분으로 통역을 시작했던 사람으로 한불 수교 130주년을 거쳐 140주년에 격상된 양국 관계를 보면서 다양한 분야에서 동등한 또는 보완적인 협력관계에 이른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2026년 9월 8일 엘리제궁에서 있었던 양국 정상회담에 오찬 및 확대회담, 공동 언론 발표, 만찬의 동시통역으로 현장에서 두 정상이 법치국가, 민주국가의 수장으로 호르무즈 해협, 러-우크라이나전과 한반도의 평화를 논의하는 글로벌 전략적 동반자임을 확인할 수 있는 영광된 시간을 보냈다. 1990년대~2000년대 한불 관계의 주요 의제는 외규장각 도서의 반환과 고속철 건설이었다면, 2026년 양 정상이 발표한 공동 언론 발표를 보면 국방•방산•AI•양자•우주•원자력•바이오 등 첨단산업을 망라하고 있다. 또 마크롱 대통령의 제안에 따라 뤼미에르 서밋을 공동 주재하면서 소프트 파워 강국인 양국의 위상을 빛내기도 했다.
한국과 프랑스 관계는 2000년 이후 회담과 교류의 의제들을 볼 때 더욱 평등하고 보완적이며 점점 더 공동 협력의 길로 발전해가고 있다. 처음 통역을 시작할 때 의례적으로 선진국인 프랑스가 우리에게 모델이었고 선진 교육, 문화, 기술을 참조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했다면, 이제 교육, 문화, 첨단 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양국은 동등한 협력국으로 세계평화와 국제적 질서를 논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2000년 아셈회의부터, 사르코지 대통령, 에로 총리, 피용 총리, 올랑드 대통령, 마크롱 대통령과의 회담, 경제인연합회, 포럼 등에서 통역의 역할을 하면서 협력이 점점 더 구체화되고 공고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성숙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시장경제의 질서를 존중하며, 미래세대의 교육에 중요성을 부여하는 양국은 국제사회 속의 전략적 동반자로서 더욱 평화로운 세상, 탈탄소의 사회로의 전환을 꾀하기 위해 더 자주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